
모든 말과 행동 뒤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행동과 말 뒤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깃털처럼 가벼울 수도 있고, 매일 지구를 떠받치는 거인의 고통처럼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자신이 이미 저지른 행동과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분명 내가 한 일인데도 어쩐지 나는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속인다. 절대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정하는 소수, 그리고 등을 돌리는 대중
그럼에도 소수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 깊이 반성하고, 사과한다. 그러나 대중은 종종 그들에게서 눈을 돌린다. ‘뭐, 그래봤자 똑같지’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잘못은 잘못이다. 잘못된 일이라면 마땅히 비난받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이라면, 그 상처를 받은 사람의 시간과 아픔이 가장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 그 사실은 어떤 반성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모든 전제가 지켜진 위에서라면, 한 번쯤은 다시 볼 여지를 남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분명히 죗값을 치르고, 그 이후에 보여주는 모습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면. 딱 한 번쯤은 말이다.
앞으로 세 걸음, 뒤로 두 걸음
‘사계’가 실린 양홍원의 정규 2집 ‘오보에’는 그 자체로 이런 이야기를 품은 앨범이다. 영문 제목인 ‘3 STEPS FORWARD, 2 STEPS BACK’, 즉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갔다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난다는 말은 곧 ‘잘못된 걸음’을 뜻하기도 한다. 제목 ‘오보에’가 잘못된 정보를 뜻하는 ‘오보’와 겹쳐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늘 세 걸음 나아가고 두 걸음 물러서며 산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잘못된 걸음을 딛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럼에도 결국 한 걸음은 앞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 앨범은 완벽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나아가는 사람의 기록인 셈이다.
양홍원을 향한 시선이 바뀐 순간
래퍼 중에 양홍원이라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썩 좋게 보지 않았다. 학교폭력 논란 때문이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려, 그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그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그가 올린 육아 콘텐츠를 보고 난 뒤였다. 영상 속 그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이 적어도 ‘책임’ 하나만큼은 지려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물일곱,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
알려진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 한 아이의 부모라고 하기엔 분명 어린 나이다. 그럼에도 영상 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영락없이 한 아이를 책임지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음악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에, 그 무게까지 함께 짊어지고 산다는 것. 어떻게 보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회피가 가장 쉬운 선택인 순간에, 그는 도망치는 대신 짊어지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사계’가 말하는 책임과 시간
그런 시선으로 다시 들은 ‘사계’는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이 곡에서 그는 어긋나고 꿰매어도 자꾸만 따가운 관계, 제자리를 맴도는 시계 같은 시간, 그럼에도 미워하기보다 먼저 안아버리는 마음을 담담히 그려낸다.
특히 인상적인 건, 단 1초라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겠다며 아이처럼 자신이 먼저 끌어안겠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미움을 붙들고 있는 대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 역시 관계에 대한 책임의 한 형태다. 희생을 ‘기록이라는 핑계’로 적어 내려간다는 자조 섞인 고백에서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이기심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감당하려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이 보인다.
돌아오는 것은 오직 사계뿐이라는 후렴은, 결국 시간은 계절처럼 정직하게 흐를 뿐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이 곡은 답을 내리는 대신,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기록해둔다.
변화는 말이 아니라 시간으로 증명된다
나는 여전히 잘못은 잘못이라고 믿는다. 그 상처를 가볍게 여길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함부로 닫아버리고 싶지 않다.
변화는 사과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그 이후에 쌓이는 시간으로 증명된다. 세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물러서더라도, 그 한 걸음의 차이가 매일 쌓이면 사람은 분명 다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양홍원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와 ‘사계’라는 곡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진짜 책임이란 도망치지 않고 매일의 시간을 견디며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긴 증명을 지켜보는 일 역시, 어쩌면 우리 몫의 책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