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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예린 Square 가사 해석, 받아들이기까지의 3가지 순서

    백예린 Square 백예린 정규 1집 《Every letter I sent you.》 앨범 커버. 미색 여백 안에 한 장의 사진이 액자처럼 배치되어 있다. 사진 속에는 볕이 드는 방 안에서 한 인물이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벽 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 천장에는 장식 조명이 매달려 있고, 얇은 커튼과 화분, 흐트러진 침구가 보인다. 상단에는 필기체로 앨범명과 아티스트명이 적혀 있다.

    백예린 Squar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이해’와 ‘해석’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2.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백예린 Square 가사는 해석을 거부합니다
    4. 화자가 원하는 건 해석이 아닙니다
    5.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는 초대
    6.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
    7. 주소 없이 부친 편지들
    8. 백예린 Squar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창으로 들어온 부드러운 빛을 향해 들어 올린 촘촘한 금속 격자망을 담은 접사 사진. 미세한 먼지와 빛 알갱이들이 사각형 틈을 통과하고 있으며, 일부는 철선에 걸려 머물고 일부는 그대로 빠져나간다. 화면 가운데의 격자만 선명하게 잡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릿하게 풀어진다. 아무리 촘촘한 틀이라도 걸러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어떤 정보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배경지식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통해 해석하려 합니다.

    이건 이것이기 때문에 나쁘다. 이건 이것을 근거로 좋다. 그런 판단이 꽤 빠르게 일어납니다.

    저는 그 순서를 한번 뒤집어보고 싶습니다. 이해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받아들이자고 말입니다.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세상에서

    정보가 말 그대로 홍수처럼 밀려오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뇌는 그런 빠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인식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빨리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해서 더 많은 정보를 손에 넣게 되고, 그 정보의 양이 재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눈과 머리가 익숙해지면,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까지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해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내 멋대로 나와 다른 사람을 해석하려 드는 건 잘못된 오류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오류가 시간이 지나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한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빠른 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빠른 게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정보가 많은 사람이 이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은 ‘여유’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뇌에는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빠른 정보 처리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과부하가 진행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과부하는 식히지 않으면 더욱 악화되어, 결국 처리 속도가 느린 사람만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빠른 정보 홍수의 시대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는 것. 그것이 조금이 아닌 그 이상의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백예린 Square 가사는 해석을 거부합니다

    이 곡의 첫 문장이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합니다.

    모든 색깔과 성격들, 그 사이로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없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오래 멈추게 됩니다.

    색깔과 성격은 우리가 사람을 파악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저 사람은 밝다, 차분하다, 예민하다. 그런 항목들을 모아 한 사람의 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화자는 그 항목들 사이로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분류해도 진짜는 그 격자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제목이 ‘Square’, 그러니까 사각형이라는 점도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사각형은 무언가를 담기 위한 틀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틀 안에 담기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고도 없이 상처를 주는 사람

    이어지는 구절은 더 직접적입니다.

    너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누가 나를 털어간 것처럼 부서진 것 같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앞서 저는 내 멋대로 남을 해석하는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돌아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곡의 상처가 정확히 그런 종류입니다. 누구도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부서집니다.

    화자가 원하는 건 해석이 아닙니다

    2절 이후 이 곡은 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자신은 무적이 아니라고, 점점 약해져 가는 기억이 훨씬 많다고 화자는 고백합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래도 네가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알지 않느냐고.

    저는 이 문장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자는 상대에게 분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설명해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냐고 묻습니다.

    이해하기 전에, 생각하기 전에, 그냥 받아들이는 말. 화자가 기다리는 건 그것입니다.

    낡은 나무 책상 위에 손글씨 편지와 봉해진 봉투들이 빛바랜 리본으로 느슨하게 묶인 채 쌓여 있는 정물 사진. 어느 봉투에도 받는 이의 주소는 적혀 있지 않고, 종이는 고르지 않은 미색으로 바랬으며 모서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 있다. 왼쪽 위에서 내려온 등불 하나가 편지 더미만을 비추고, 책상의 나머지 부분은 그림자에 잠겨 있다.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는 초대

    그리고 후렴에서 그 말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같이 침대로 가자고, 이 밤을 신나게 보내자고, 누가 너에게 그런 짓을 했느냐고. 지금 잠들 수 있는 기분이 아니라면 나와서 한잔하고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고.

    저는 이 초대가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는 점이 좋습니다.

    효율을 따진다면 이 시간에 자야 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일부러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정확히 그 비효율을 제안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여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유는 시간이 남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효율을 잠시 포기하기로 결정할 때 생깁니다.

    그리고 이 초대에는 원인 분석이 없습니다. 누가 그랬느냐고 묻기는 하지만 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와 함께 가자고, 내가 너의 것이 되어주겠다고 말할 뿐입니다.

    혼자 삼키는 마음에 대해서는 태연 ‘Fine’을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

    마지막 벌스에서 이 관계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너는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오늘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화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동사가 ‘보다’와 ‘알다’입니다. ‘해석하다’가 아닙니다.

    본다는 것은 판단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고, 안다는 것은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화자에게 그 사람이 특별한 이유는 자신을 잘 분석해서가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마지막으로 청합니다. 나를 위로해달라고, 내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달라고.

    주소 없이 부친 편지들

    이 곡이 실린 앨범도 같은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예린은 이 앨범을 두고 열아홉부터 스물셋까지의 생각과 고민, 추억이 담겨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확한 주소가 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마음을 곡에 담아 부치곤 했는데, 이제야 정말로 보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입니다.

    주소 없이 부친 편지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주소 없는 편지는 쓸 이유가 없습니다. 도착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써 모은 것이 결국 하나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빠르게 처리하고 즉시 답을 얻는 시대에, 몇 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모아 내놓는다는 것. 저는 이것이야말로 여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 건네는 마음에 대해서는 아이유 ‘밤편지’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백예린 Squar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습관을 사람에게까지 적용합니다. 빠를수록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뇌에는 한계가 있고, 과부하는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해석해서 만든 결론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오류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순서를 한번 바꿔보면 좋겠습니다. 이해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원인을 분석해주는 대신, 그냥 나와서 한잔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것. 이 곡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보다 멀리 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전곡은 벅스 백예린 Square (2017)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순서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