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빈지노

  •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 해석, 2개의 깨어있음에 대하여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 빈지노 첫 EP 《2 4 : 2 6》 앨범 커버. 거친 붓질로 그려진 회화 스타일의 그림으로, 화면 한가운데 낙타 한 마리가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황토빛 사막이 두터운 물감의 결로 표현되어 있고, 낙타의 얼굴에는 분홍과 노랑의 붓 자국이 자유롭게 얹혀 있다.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흰 숫자 '24'와 '26'이 배치되어 있다.
    빈지노 《2 4 : 2 6》 (2012) 앨범 커버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순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머릿속이 백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2.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겼다는 소식
    3.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4. 두 개의 깨어있음
    5. 담담한 어투로 그려낸 청춘
    6.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나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는 정물 사진. 한쪽 모서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 있고, 그 옆에는 뚜껑이 닫힌 펜 하나가 손대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왼편 창에서 들어온 부드러운 아침 빛이 텅 빈 지면 위로 길고 완만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종이의 결이 세밀하게 드러나며, 그 위에는 단 하나의 글자도 자국도 없다.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서두르지 않고 그저 비워둔 채 머무는 시간을 담아낸 이미지다.

    머릿속이 백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머릿속이 백지 같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인 것 같습니다. 뭔가를 그려놓고 싶기도 하고 적어놓고 싶기도 하고 채워놓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지 상태에서는 그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굳이 그 백지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있어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백지는 사라집니다

    그렇게 두면 어느 순간 백지는 사라지고, 다시금 저의 생각들이 돌아옵니다.

    저는 그런 시간들이 마냥 좋습니다. 뭔가 깨어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멈추고 다시 시작되고 또다시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그 시간 속에서, 제가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 저는 현대인도 그 상태를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채우기만 해왔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겼다는 소식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 바둑계에서 또 한 번의 신화가 쓰였습니다.

    인공지능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이겼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 카타고를 상대로 최종 2승 1패를 거둔 것입니다. 1국에서 패한 뒤 2국과 3국을 연달아 따내며 뒤집은 결과였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인공지능을 모르는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빠르게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인공지능을 두 번 이겼다는 것은,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시대가 오리라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완벽한 것이 오히려 약점이라는 말

    흥미로운 것은 승자의 말이었습니다. 신진서 9단은 대국을 마친 뒤 인공지능은 완벽한 것이 오히려 약점 같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승부수와 묘수를 던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완벽함이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즉 대중이 파고들어야 할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백지 상태가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인공지능은 무한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명령을 넣어주는 대로 끝없이 연산합니다. 그런 인공지능은 백지 상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비움의 삶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얻을 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멈춰본 적이 없는 존재는 무엇을 멈춰야 할지도 모릅니다.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문득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빈지노의 ‘Always Awake’입니다.

    이 곡은 잠들지 말라고 말합니다. 서울시가 잠든 시간에 오히려 심장이 긴박해진다고, 살아 있음을 느낄 때면 산송장처럼 눕기 싫다고 합니다. 취침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눈이 푹 패이고 몰골이 초췌해져도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멈추라는 제 이야기와 정반대입니다. 이 곡의 화자는 백지가 될 시간을 한사코 거부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곡이 제 생각과 충돌한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은 것을 다른 방향에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이 꺼진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본 사진. 창 너머로는 아직 어둠에 잠긴 도시가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불이 켜진 창들만이 흩어져 있다. 하늘은 새벽 특유의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으며, 창턱에는 반쯤 비운 커피잔이 놓여 옅은 김을 피워 올린다. 방 안의 가구들은 형체만 남은 실루엣으로 물러나 있고, 멀리 가로등 불빛 하나가 따뜻한 색으로 번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의 자리를 보여준다.

    두 개의 깨어있음

    앞서 저는 백지 상태에서 깨어 있는 느낌이 든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의 제목은 ‘언제나 깨어 있다’입니다.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이 곡의 깨어있음은 채움이고, 저의 깨어있음은 비움입니다.

    그러나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둘 다 자동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이 곡의 화자는 잠든 자에게는 내일이 오지만 자신은 내일을 먼저 본다고 말합니다. 시간에 뒤처지거나 같이 뛰거나 둘 중 하나라면 신발을 신겠다고 합니다. 커피 한 잔을 비우고 심박수를 올린 뒤, 한숨을 쉼표처럼 찍고 다시 한밤중에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건 시간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제가 백지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 역시, 억지로 무언가를 채워 넣으라는 세상의 요구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은 잠들지도 않지만, 스스로 깨어 있기로 선택하지도 않습니다. 명령이 오면 연산하고 없으면 멈출 뿐입니다. 반면 인간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새벽까지 깨어 있기를 택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있기를 택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궤도를 정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아이브 ‘I AM’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담담한 어투로 그려낸 청춘

    이 곡의 만듦새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Always Awake’는 2011년 재지팩트 시절 싱글로 처음 나왔고, 일리네어 레코즈 결성 이후 2012년 7월 3일 발매된 첫 EP 《2 4 : 2 6》에 보너스 트랙으로 실렸습니다. 앨범명은 그가 래퍼로 활동하기 시작한 스물넷에서 스물여섯 사이를 뜻합니다.

    빈지노는 이 곡을 쓸 때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책의 문체처럼 담담한 어투로도 상황이 잘 그려지는 가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곡의 화법이 그렇습니다. 거창하게 외치지 않습니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며 몰골이 초췌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태도는 자랑에 가깝지 않고 오히려 무심합니다. 자신의 청춘을 14캐럿 금에 비유하면서도, 단지 조금 더 어리다는 게 억울하긴 하다고 슬쩍 덧붙입니다.

    그 담담함이 이 곡을 오래 살아남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주어 외친 청춘 예찬은 금방 촌스러워지지만, 담담하게 적어둔 새벽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습니다.

    낙타 한 마리

    앨범 재킷에는 낙타가 그려져 있습니다. 빈지노 본인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낙타는 사막을 건너는 동물입니다. 물이 없는 곳을 오래 걷기 위해 미리 채워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씁니다.

    저는 이 상징이 앞선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봅니다. 무한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운 것을 아껴 쓰며 건너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비워지는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

    인공지능에게는 사막이 없습니다. 건너야 할 거리도, 아껴 써야 할 물도 없습니다. 그래서 낙타가 될 수도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시간을 다 쓴 사람의 이야기는 빅뱅 ‘LAST DANCE’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 벌스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꿈속에서 헤맬 바에는 어서 잠에서 깨기를 바란다고. 인생은 딱 한 번이고,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자신이 기억할 만한 것은 잠에서 깬 자신일 것 같다고.

    그림쟁이는 그림자까지 그리고, 음악을 한다면 끝까지 들으라는 대목에서 이 곡의 태도가 분명해집니다. 어중간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비우는 일도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백지가 되었을 때 서둘러 무언가를 채워 넣는 대신, 그 텅 빈 상태를 끝까지 견뎌보는 것 말입니다.

    생각이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그 반복 속에서 저는 제가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인공지능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시간입니다.

    시선과 소음에서 잠시 물러나는 일에 대해서는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머릿속이 백지 같다면,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텅 빈 시간 역시 당신이 깨어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빈지노 Always Awak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깨어있음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