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삐딱하게

  •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 해석, 버렸다고 말하는 2개의 얼굴

    지드래곤 삐딱하게 지드래곤 정규 2집 《COUP D'ETAT》 앨범 커버. 강렬한 붉은 배경 위에 검은 물감으로 거칠게 그려진 원형 심벌이 화면 중앙을 채우고 있다. 평화의 상징인 피스마크에서 왼쪽 아래 획 하나가 빠진 형태로, 지드래곤의 상징인 PEACEMINUSONE을 나타낸다. 하단에는 굵은 검은 글씨로 'COUP D'ETAT'가 새겨져 있으며, 손으로 칠한 듯한 붓 자국이 전복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지드래곤 《COUP D’ETAT》 (2013) 앨범 커버 ⓒYG엔터테인먼트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오래 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2.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곡이 있습니다
    3.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는 그 덮개에 관한 곡입니다
    4. 정말 하고 싶었던 말
    5.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 ‘니가 뭔데’
    6.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기
    7.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어두운 방 안에 놓인 낡은 나무 선반을 담은 정물 사진. 엎어진 채 놓인 헌 문고본과 색이 바랜 작은 인형, 차곡히 쌓인 카세트테이프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로는 고운 먼지가 눈에 보일 만큼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선반 한쪽에는 무언가를 최근에 들어낸 듯 먼지가 없는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다.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오후 빛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를 비추며 오래 손대지 않은 시간을 드러낸다.

    오래 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들어도 좋고, 오랜만에 들어도 좋습니다. 오래 봐도 좋고, 오랜만에 봐도 좋습니다.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효율만 따진다면 하나에 그렇게 오래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더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이 계속 나오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다 아는 것을 굳이 다시 꺼냅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압니다

    그리고 그런 최애는 시간이 흘러도 머리가 아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압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잊힙니다. 시험 전날 외운 것들이 그렇고, 한때 열심히 검색해 알아낸 정보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었는데 첫 소절만으로 온몸이 반응하는 경험. 그건 기억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무엇입니다.

    책의 한 문장이나 노래 가사, 혹은 친구, 인형, 어떤 장소 같은 것들은 잊은 것처럼 보여도 전혀 잊은 게 아닙니다. 그냥 먼지가 쌓인 채로 방 속 어딘가에 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먼지는 사라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먼지’라는 상태가 흥미롭습니다.

    먼지가 쌓였다는 건 오래 손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방치이고 무관심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것은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필요 없었다면 진작 내다 버렸을 테니까요.

    그러니 먼지는 사라짐의 증거가 아니라 남겨둠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먼지를 덮개처럼 사용합니다. 아직 못 버렸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조차 감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곡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밝혀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두 곡은 저의 최애곡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던 노래이자, 지금까지도 최고로 꼽는 곡들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몇 번을 들었는지 세어본 적도 없고, 이제는 첫 소절이 나오기 전의 정적만으로도 무슨 곡인지 압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는 것’의 자리에, 저에게는 정확히 이 두 곡이 놓여 있습니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시기도 물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음악이 계속 나왔고, 취향도 조금씩 옮겨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년 만에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저는 이 곡들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사도, 박자도, 심지어 어느 지점에서 숨을 쉬는지까지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먼지가 쌓여 있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평론이면서 동시에 제 방을 한 번 열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는 그 먼지에 관한 곡입니다

    그중 첫 번째 곡인 ‘삐딱하게’는 정확히 그 먼지에 관한 곡입니다. 이 곡은 시작부터 단호합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결국 너는 변했다고, 이유도 진심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오늘 밤은 삐딱하게 있겠다고 선언합니다.

    곡의 구조도 그 태도를 그대로 옮깁니다. 테디와 지드래곤이 함께 만든 이 곡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직설적인 가사가 돋보이며, 마이너한 분위기로 시작해 밝고 경쾌한 머니코드의 후렴구로 바뀝니다.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신나는 코드로 노래하는 셈입니다.

    저는 이 전환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실제로 이렇습니다. 억지로 톤을 올리고, 일부러 밝게 웃습니다.

    침을 뱉는 사람의 속마음

    벌스로 들어가면 그 위장이 더 선명해집니다.

    화자는 버럭버럭 소리치고, 다른 연인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동네 양아치처럼 다리를 일부러 절며 걷습니다. 짙은 아이라인을 긋고 스프레이를 한 통 다 쓰고 가죽 재킷을 걸친 채 인상을 씁니다. 앞으로 더 비뚤어지겠다고, 네가 미안해지도록 하늘에다 침을 뱉겠다고 합니다.

    이 모든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말로 상대를 잊었다면 굳이 상대가 미안해지도록 애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곧 화자는 스스로 실토합니다. 투박해진 말투와 거칠어진 눈빛이 무섭냐고 묻고는, 실은 자기가 두렵다고 말합니다. 돌아가고 싶은데 갈 데가 없고, 사랑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고. 그러니 뭘 어쩌라는 거냐고 말입니다.

    여기서 삐딱함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태도가 아니라 먼지였습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 위에 급하게 덮어둔 것 말입니다.

    가면과 진짜 얼굴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이전에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

    곡의 마지막에 이르면 덮개가 완전히 벗겨집니다.

    오늘 밤은 나를 위해 아무 말도 말아 달라고, 혼자인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오늘 밤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화자는 청합니다. 이 좋은 날, 아름다운 날에 네가 그립다고 말입니다.

    앞서 그렇게 집어치우라고 외치던 사람이 결국 도착한 자리가 이곳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구절 때문에 이 곡이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삐딱함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그저 센 척하는 노래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마지막에 스스로 무너집니다.

    곁에 있어 달라는 청이 늘 작아지는 이유는 블랙핑크 ‘STAY’를 다룬 글에서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금이 간 거울을 마주하고 선 한 사람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 거울에 난 균열이 비친 얼굴을 두 조각으로 어긋나게 갈라놓아, 왼쪽은 차갑고 날카로운 푸른빛에, 오른쪽은 어스름한 주황빛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얼굴이 마치 서로 다른 두 사람처럼 보인다. 인물의 실제 얼굴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텅 빈 벽과 가구 없는 공간이 긴장감을 더한다.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 ‘니가 뭔데’

    같은 앨범에 실린 ‘니가 뭔데’는 그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하는 곡처럼 들립니다.

    이 곡의 화자는 처음부터 위장을 포기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하나도 좋지 않다고, 왜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해놓고는, 곧바로 자꾸 화가 난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렇게 인정합니다. 구차하고 찌질하다고. 나 원래 찌질하다고 말입니다.

    ‘삐딱하게’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인상을 썼다면, 이 곡은 그 재킷을 벗어던지고 맨얼굴을 보여줍니다. 사줄 수 없었던 비싼 가방과 구두 대신 눈물 젖은 베개를 샀다는 대목이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 커플이 요즘 안 좋다더라고 일러바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서글픕니다.

    어쿠스틱이 벗겨낸 것

    두 곡의 사운드 차이도 그 대비를 뒷받침합니다.

    ‘삐딱하게’가 밴드의 힘으로 감정을 위로 밀어 올렸다면, ‘니가 뭔데’는 어쿠스틱한 스타일로 힘을 뺍니다. 펑키한 보컬의 음색과 탄탄한 밴드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미학적 미덕까지 충실히 갖추었지만, 그 안의 화자는 훨씬 무방비합니다.

    후렴의 ‘두 두 두’ 하는 흥얼거림도 그렇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그냥 소리로 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났다가 그리워했다가 다시 미워하는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얹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곡을 나란히 들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전모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먼지를 덮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그 먼지를 털어낸 얼굴입니다.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기

    두 곡이 실린 정규 2집 《COUP D’ETAT》는 2013년 9월에 발매되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정규 앨범이었고, 앨범을 둘로 나누어 파트별로 순차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미시 엘리엇과 디플로를 비롯한 해외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의 소개글입니다. 지향하는 바가 정확한 아티스트는 진화를 거듭해도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이어집니다.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고 지키면서 진화하기.

    저는 이 문장이 앞선 이야기와 정확히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라는 제목은 전복을 뜻하지만, 정작 이 앨범이 말하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앨범 아트로 쓰인 PEACEMINUSONE이라는 상징도 그렇습니다. 하나가 빠진 평화. 무언가가 결여된 채로도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 말입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결국 두 곡의 화자는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잊겠다고 선언했지만 잊지 못했고, 괜찮은 척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실패가 이 곡들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봅니다. 정말로 잊을 수 있었다면 이런 노래는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봐도 좋고 오랜만에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아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버렸다고 선언해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먼지가 쌓인 채로, 방 속 어딘가에 고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문득 오래된 무언가가 떠올랐다면, 그건 당신이 아직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삐딱하게 굴어봐도 소용없습니다. 마음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이 두 곡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전곡은 벅스 COUP D’ETAT 앨범 페이지 지드래곤 삐딱하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방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를 제 인생곡으로 다시 읽습니다. 잊은 줄 알았지만 먼지만 쌓여 있었던 것, 니가 뭔데와 나란히 본 두 개의 얼굴까지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