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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홍원 ‘사계’ – 책임을 진다는 것, 그리고 한 번의 기회에 대하여

    흩어진 걸음의 실루엣들이 검은 줄무늬 사이를 지난다. 앞으로 세 걸음, 뒤로 두 걸음, 결국 한 발짝 나아가는 그 더딘 전진이, 제목 《오보에》에 고스란히 접혀 있다. 나무로 된 악기이자, 자기 자신이자, 그를 둘러싼 오보(誤報)까지 끌어안은 양홍원의 두 번째 정규작.
    양홍원 《오보에》 (2021) 앨범 커버

    모든 말과 행동 뒤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행동과 말 뒤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깃털처럼 가벼울 수도 있고, 매일 지구를 떠받치는 거인의 고통처럼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자신이 이미 저지른 행동과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분명 내가 한 일인데도 어쩐지 나는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속인다. 절대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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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하는 소수, 그리고 등을 돌리는 대중

    그럼에도 소수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 깊이 반성하고, 사과한다. 그러나 대중은 종종 그들에게서 눈을 돌린다. ‘뭐, 그래봤자 똑같지’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잘못은 잘못이다. 잘못된 일이라면 마땅히 비난받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이라면, 그 상처를 받은 사람의 시간과 아픔이 가장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 그 사실은 어떤 반성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모든 전제가 지켜진 위에서라면, 한 번쯤은 다시 볼 여지를 남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분명히 죗값을 치르고, 그 이후에 보여주는 모습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면. 딱 한 번쯤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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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세 걸음, 뒤로 두 걸음

    ‘사계’가 실린 양홍원의 정규 2집 ‘오보에’는 그 자체로 이런 이야기를 품은 앨범이다. 영문 제목인 ‘3 STEPS FORWARD, 2 STEPS BACK’, 즉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갔다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난다는 말은 곧 ‘잘못된 걸음’을 뜻하기도 한다. 제목 ‘오보에’가 잘못된 정보를 뜻하는 ‘오보’와 겹쳐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늘 세 걸음 나아가고 두 걸음 물러서며 산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잘못된 걸음을 딛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럼에도 결국 한 걸음은 앞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 앨범은 완벽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나아가는 사람의 기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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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홍원을 향한 시선이 바뀐 순간

    래퍼 중에 양홍원이라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썩 좋게 보지 않았다. 학교폭력 논란 때문이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려, 그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그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그가 올린 육아 콘텐츠를 보고 난 뒤였다. 영상 속 그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이 적어도 ‘책임’ 하나만큼은 지려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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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일곱,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

    알려진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 한 아이의 부모라고 하기엔 분명 어린 나이다. 그럼에도 영상 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영락없이 한 아이를 책임지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음악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에, 그 무게까지 함께 짊어지고 산다는 것. 어떻게 보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회피가 가장 쉬운 선택인 순간에, 그는 도망치는 대신 짊어지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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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가 말하는 책임과 시간

    그런 시선으로 다시 들은 ‘사계’는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이 곡에서 그는 어긋나고 꿰매어도 자꾸만 따가운 관계, 제자리를 맴도는 시계 같은 시간, 그럼에도 미워하기보다 먼저 안아버리는 마음을 담담히 그려낸다.

    특히 인상적인 건, 단 1초라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겠다며 아이처럼 자신이 먼저 끌어안겠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미움을 붙들고 있는 대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 역시 관계에 대한 책임의 한 형태다. 희생을 ‘기록이라는 핑계’로 적어 내려간다는 자조 섞인 고백에서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이기심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감당하려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이 보인다.

    돌아오는 것은 오직 사계뿐이라는 후렴은, 결국 시간은 계절처럼 정직하게 흐를 뿐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이 곡은 답을 내리는 대신,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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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는 말이 아니라 시간으로 증명된다

    나는 여전히 잘못은 잘못이라고 믿는다. 그 상처를 가볍게 여길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함부로 닫아버리고 싶지 않다.

    변화는 사과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그 이후에 쌓이는 시간으로 증명된다. 세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물러서더라도, 그 한 걸음의 차이가 매일 쌓이면 사람은 분명 다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양홍원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와 ‘사계’라는 곡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진짜 책임이란 도망치지 않고 매일의 시간을 견디며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긴 증명을 지켜보는 일 역시, 어쩌면 우리 몫의 책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