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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숀 Way Back Home 가사 해석, 꿈이 데려간 2개의 문

    한 인물이 물속에 반쯤 잠긴 채 옆으로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는 콘셉트 사진. 화면이 90도 회전된 구도로, 젖은 검은 머리가 수면 위로 퍼져 있고 이마와 목에는 은빛 장식이 물기와 함께 반짝인다. 푸른 조명이 물 전체를 감싸며 아래쪽에는 흔들리는 반영이 번져 있다. 현실과 물속 사이 경계에 놓인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숀 Way Back Home
    숀 《Take》 (2018) 앨범 커버

    숀 Way Back Hom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오늘 새벽에 꾼 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상징입니다
    2. 코스모스 열 겹, 그리고 역피라미드
    3. 사라진 얼굴 앞에서
    4. 제 나름의 해석
    5. 숀 Way Back Home 가사가 말하는 ‘너라는 집’
    6. 아무리 닫아도 다시 열리는 서랍
    7. 밝은 소리 위에 얹힌 그리움
    8. 숀 Way Back Hom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상징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을 두고 무의식에서 발현된 상징이 난무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낮 동안 우리가 눌러 두었던 것들이, 잠든 사이 검열을 피해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꿈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대신 그 어긋남 속에 우리가 미처 인정하지 못한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꾼 꿈이 그랬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코스모스 밭. 연분홍과 흰 꽃들이 열 겹의 동심원을 그리며 촘촘히 둘러싸고 있고, 그 정중앙에는 땅이 사각으로 열려 계단식 역피라미드가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바닥에서는 희미한 황금빛이 올라오고, 바깥쪽 원에는 옅은 안개가 걸려 있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 놓인 듯한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코스모스 열 겹, 그리고 역피라미드

    꿈속에서 저는 어떤 장소에 서 있었습니다.

    코스모스가 원을 그리며 열 겹쯤 둘러싸인 곳이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아래로 역피라미드를 그리며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그 밑에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보물과 책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곳을 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물창고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는 꿈속에서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두 분의 것이라는 사실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복도에 나란히 선 두 개의 나무 문이 동시에 열려 있는 장면. 오른쪽 문에서는 따뜻한 황금빛이 마룻바닥 위로 길게 쏟아지고, 왼쪽 문 안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만 채워져 있다. 낡은 벽지와 닳은 마루, 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가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만든다. 어느 쪽을 택하든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상징한다.

    두 개의 문, 그중 오른쪽

    주위를 둘러보니 두 개의 방문이 나타났습니다.

    두 문은 동시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저는 왜 오른쪽을 골랐을까요. 아니, 골랐다기보다는 그냥 그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꿈에서 선택은 늘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이유 없이,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이.

    사라진 얼굴 앞에서

    문 안으로 들어가니 침구 위에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동시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그분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오열하며 침구 위에 누웠습니다.

    꿈에서 우는 일은 이상합니다.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정직하게 울게 됩니다. 참을 이유도, 참을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이동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는 상태로 다시 눈을 떴을 때, 할아버지는 거울 앞에서 양복을 보고 계셨고 할머니는 머리를 빗고 계셨습니다. 두 분 다 젊으셨습니다. 그러고 꿈에서 깼습니다.

    제 나름의 해석

    추측해 보건대 제 무의식에는 그런 그리움이 남아 있고, 그것이 지금의 지침과 피곤을 타고 밖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의 방어도 함께 느슨해집니다. 평소에는 잘 눌러 두었던 것이 그럴 때 슬며시 올라옵니다.

    보물들과 코스모스는 저의 욕망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꽃과 보물처럼 좋은 것들에 둘러싸인 채로 두 분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렇다면 이 꿈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것들에 둘러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마지막 장면이 젊은 두 분이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그 모습을, 제 무의식은 굳이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본 적 없는 얼굴을 그리워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리움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직 저에게만 보였던 것

    그런데 이 꿈에는 제가 뒤늦게 알아차린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꿈속에는 저 말고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도 그곳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공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곳을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흥분한 사람은 오직 저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뒤따라오기만 했고,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도 저 혼자였습니다.

    이제 와 다시 짚어보니, 그런 형상들이 보였던 것은 제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덥다고 하면 더운 것이고 춥다고 하면 추운 것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는 그곳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물창고라고 여겼기에 흥분했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기에 그저 텅 빈 방이었을 뿐입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서 있어도,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봅니다.

    숀 Way Back Home 가사가 말하는 ‘너라는 집’

    이 꿈에서 깬 뒤 떠오른 노래가 있었습니다. 숀의 ‘Way Back Home’입니다.

    2018년 6월 27일 발표된 이 곡은 그의 EP 앨범 《Take》의 첫 번째 트랙으로, 2010년대 후반 유행하던 트로피컬 하우스를 차용한 일렉트로닉 트랙입니다. 발매 직후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하며 국내 주요 음원 차트를 석권했고, 이후 해외 프로듀서와 협업한 글로벌 버전과 일본어 버전까지 나올 만큼 오래 사랑받았습니다.

    이 곡의 후렴은 이렇게 말합니다. 멈춘 시간 속에 잠든 너를 찾아가겠다고. 아무리 막아도 결국 너의 곁이라고.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는 돌아가겠다고. 너라는 집으로.

    그래서 이 곡이 말하는 ‘너라는 집’도 제 꿈의 그 공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들 눈에는 그저 한 사람일 뿐인 대상이, 화자에게만은 돌아가야 할 유일한 장소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텅 빈 방이고, 저에게만 보물창고인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닫아도 다시 열리는 서랍

    이 곡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는 서랍입니다.

    화자는 아무리 힘껏 닫아도 다시 열리는 서랍 같다고 말합니다. 하늘로 높이 날려 보냈는데도 자꾸 되돌아온다고. 힘들게 삼킨 이별도 다 그대로라고.

    수없이 떠난 길 위에서 결국 너를 발견하고, 비우려 했던 마음이 또 너로 차오르고, 발걸음의 끝마다 네가 부딪힌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곡이 그리는 그리움의 성질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붙잡아 두는 감정이 아니라, 밀어내도 자꾸 돌아오는 감정입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작동 방식이 딱 이렇지 않을까요. 눌러 둘수록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는 것. 제가 그 꿈을 꾸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듯, 이 곡의 화자도 그리워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서랍이 다시 열린 것입니다.

    떠난 사람의 흔적 안에서 하루를 반복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조용히 잠든 방을 열어

    2절의 한 대목은 특히 이 꿈과 겹쳐 읽힙니다. 조용히 잠든 방을 열어 기억을 꺼내 든다는 구절입니다.

    방을 엽니다. 그 안에는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부서진 시간 위에서 그 사람은 선명히 떠오릅니다.

    꿈속에서 제가 두 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갔던 장면과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다가가자 사라졌던 것처럼, 이 곡의 화자도 결국 그 사람을 붙잡지는 못합니다. 길 잃은 마음속에 그를 가둔 채 살아간다고 고백할 뿐입니다.

    여기서도 방을 여는 것은 화자 혼자입니다. 옆에서 누가 같이 열어줄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빛이 다 꺼진 이곳에서 나를 안아 달라는 브리지의 문장이 부탁이라기보다 혼잣말처럼 들리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 사라진 세계를 잠시 되살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니 ‘twin’을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밝은 소리 위에 얹힌 그리움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사운드와 정서의 간극에 있습니다.

    트로피컬 하우스는 본래 여름과 휴양지의 장르입니다. 밝고 가볍고 몸을 흔들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얹힌 가사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어긋남이 오히려 이 곡을 오래 살아남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슬픈 소리로 부르면 슬픔은 거기서 끝납니다. 그러나 밝은 소리 위에 얹으면, 듣는 사람이 그 간극을 자기 것으로 채워 넣게 됩니다.

    이것 역시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와 같은 원리입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누군가는 신나는 여름 노래로, 누군가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이 곡은 발표 이후 수억 회의 재생을 기록했고 각종 챌린지와 매시업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는데, 그 밝은 소비 방식과 뭉클함이 공존한다는 점이 이 곡의 진짜 힘입니다.

    덧붙이자면, 한때 이 곡이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위한 추모곡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아티스트 본인이 방송에 나와 사실무근이라고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오해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을 이 곡에 얹어 들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숀 Way Back Hom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눈을 감으면 소리 없이 밀려와 이 마음 위로 또 한 겹 쌓여간다고.

    한 겹씩 쌓여가는 마음. 제 꿈속에서 코스모스가 열 겹으로 둘러싸고 있던 그 원과 겹쳐 보이는 표현입니다.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겹겹이 쌓여 하나의 원을 만들고, 그 한가운데에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무언가가 놓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압니다.

    세상을 뒤집어서라도 찾겠다는 말, 모든 걸 잃어도 너 하나면 된다는 말. 남이 들으면 과장으로 들릴 이 문장들이 화자에게는 사실 그대로일 것입니다. 저 역시 새벽의 꿈속에서 아무도 따라 들어오지 않은 그 계단을 혼자 내려갔습니다.

    빛이 모두 꺼진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는 지드래곤 ‘무제’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빈 방으로 보이는 곳이 저에게만은 보물창고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그곳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새벽의 그 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전곡은 벅스 숀 Way Back Hom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공간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