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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DOC와 춤을 가사 해석, 당연함을 의심하는 2가지 눈

    DOC와 춤을 DJ DOC 4집 앨범 커버. 흰 배경 위에 세 명의 멤버가 낮은 자세로 모여 있는 사진이 흑백에 가까운 톤으로 담겨 있다. 한 명은 바닥에 엎드리듯 기대고, 나머지 둘은 무릎을 굽힌 채 앞을 보고 있으며 모두 헐렁한 검은 옷과 모자,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상단에는 굵은 검은 글씨로 'DJ·DOC'가 크게 배치되고, 그 아래에 붉은 'ALBUM'과 '4th'가 겹쳐 놓여 있다.

    DJ DOC와 춤을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아무도 믿지 마라, 너 자신만을 믿어라
    2. DJ DOC와 춤을 가사는 당연함을 겨눕니다
    3. 10년 뒤에 벌어진 일
    4. 뒤통수가 예뻐야만 밀어야 하나
    5. 신중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6. 금지곡이 타이틀이 된 사연
    7. DJ DOC와 춤을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아무도 믿지 마라, 너 자신만을 믿어라

    배신이라는 말 뒤에 남는 씁쓸한 문장입니다. 대개 피해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말이자, 교훈처럼 전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좀처럼 확 와닿지는 않는 말입니다. 뼈를 때리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계속 다른 사람을 믿지 않게 되다 보면 결국에는 홀로 남겨지게 되니까요.

    이 말의 진짜 의미

    저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깨어 있는 눈으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참사는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됩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원래 이랬어, 다음에 고치면 되겠지 하는 마음 말입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당연해 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눈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 혹은 다른 방안이나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면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감수해야 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되레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눈에는 신중함이 충분히 들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두운 탁자 위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본 정물 사진. 똑같은 나무 젓가락 여러 쌍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란히 평행하게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쌍만이 엇갈린 채 비스듬히 놓여 있다. 위에서 고르게 내려오는 부드러운 빛 덕분에 짙은 그림자는 생기지 않는다. 똑같아 보이는 배열 속에서도 젓가락마다 나뭇결은 조금씩 다르게 드러난다. 규칙과 예외가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인 이미지다.

    DJ DOC와 춤을 가사는 당연함을 겨눕니다

    1997년 4월 1일 발매된 DJ DOC 4집의 타이틀곡인 이 곡은, 정확히 그 ‘당연함’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곡은 아주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밥을 먹느냐고.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은 잘 먹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밥 먹을 때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옆집 아저씨는 젓가락질을 보고 뭐라고 합니다.

    저는 이 도입이 대단히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젓가락질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묻습니다. 그게 왜 지켜져야 하느냐고. 밥을 먹는다는 목적이 달성되는데 방식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눈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청바지와 반바지

    그리고 후렴에서 그 질문은 사회로 확장됩니다.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서 괜찮을 텐데.

    이 두 문장은 1990년대 당시 아주 구체적인 현실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복이 재도입되었는데, 이 교복이 단정함이라는 겉보기에만 치중하고 실용성은 뒤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장 규제도 함께 까다로워지면서 학생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무더운 국가들의 교복은 참고 사례에 포함되지 않았고, 반바지를 정장처럼 입는 것은 남사스럽다는 것이 당시 학교 임원진과 고령층의 주된 의견이었습니다. 거기에 원가 절감까지 더해지면서 교복의 편의성은 뒤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사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규칙 하나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한여름 텅 빈 학교 복도를 담은 사진. 높은 창으로 햇빛이 강하게 쏟아져 들어와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위에 내려앉고, 공기 중에는 옅은 아지랑이가 어른거린다. 벽에 걸린 고리에는 똑같이 생긴 짙은 색 교복 재킷들이 손대지 않은 채 무겁게 늘어져 있고, 그 뒤편의 창문들은 활짝 열려 있다. 학생도 가방도 움직임도 없이, 더운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옷만이 남아 있다.

    10년 뒤에 벌어진 일

    그런데 여기서 이 곡의 진짜 힘이 드러납니다.

    곡이 대히트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반바지를 교복으로 입을 바에 차라리 교복 자율화를 다시 하는 게 낫다는 것이 당시 학교장과 임원들 다수의 관념이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6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최초로 반바지 교복이 도입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DJ DOC의 멤버 이하늘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학생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인 만큼 멋진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남겼습니다.

    이후 2010년대 초중반 폭염과 전력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남녀 공용 생활복 형식의 교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가도 괜찮을 텐데라는 구절 역시, 복장이 자율적인 회사가 늘어나면서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습니다.

    앞서 저는 당연한 것이 당연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곡은 그 말을 실제로 증명한 셈입니다.

    노래 한 곡이 곧바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노래가 오래 남아 세상에 닿는 일에 대해서는, 이전에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뒤통수가 예뻐야만 밀어야 하나

    2절에서 이 곡은 또 하나의 당연함을 꺼냅니다.

    뒤통수가 예뻐야만 머리를 미느냐고, 자신은 뒤통수가 안 예뻐도 민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 머리를 보며 사회에 불만 있느냐고 한마디씩 합니다.

    머리를 밀면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풍조를 짚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이 통쾌합니다. 옆머리로 속알머리를 감추려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약한 모습이라고, 감추지 말고 그냥 밀라고 말합니다.

    이하늘은 훗날 자신도 서른두 살 무렵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아예 밀어버렸다고 밝혔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스스로 콤플렉스를 만들기보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었다고 말이죠.

    자기 가사를 20년 뒤에 자기 몸으로 실천한 셈입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있지 ‘달라달라’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신중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 곡이 흥미로운 이유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청바지를 입자고 하면서 깔끔하기만 하면이라는 조건을 답니다. 반바지를 입자고 하면서 깔끔하고 시원하다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무조건 규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이 지키려던 목적을 다른 방식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저는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눈에는 신중함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이 곡의 가사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를 내는 대신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금지곡이 타이틀이 된 사연

    이 곡에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다른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곡이 선정적인 가사가 문제가 되어 방송 3사에서 방송 금지를 당하면서, 대신 선택된 것이 바로 이 곡이었습니다.

    규제 때문에 밀려 나온 곡이, 규제를 다시 묻는 노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곡은 청소년과 청년층은 물론 중노년층까지 아우르며 대히트를 쳤습니다. 1990년대는 세대 갈등이 한창 화두이던 시절이었는데, 이 곡은 청소년뿐 아니라 기성세대에 관한 내용까지 다루면서 전 세대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추라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추라고, 그깟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당연함을 의심하는 일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이 곡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DJ DOC와 춤을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참사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 원래 이랬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이상한 것이 맞습니다.

    그럴 때는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근거와 대안을 함께 들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감수할 각오로 말입니다.

    이 곡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젓가락질부터 교복과 머리 모양까지, 아무도 묻지 않던 것들을 물었고 20년 뒤에 그중 몇 가지는 실제로 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의 규칙을 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이브 ‘I AM’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무언가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 감각을 그냥 넘기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당연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뜻일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DOC와 춤을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당연함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DJ DOC와 춤을 가사를 ‘당연함’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안전 불감증이 시작되는 지점, 그리고 이 곡의 가사가 실제로 현실이 된 과정까지 함께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