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성에는 궤도가 있다
행성에는 저마다 고유한 궤도가 있다. 그 궤도를 따라 일정한 주기마다 회전하며,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원래 자기들이 해오던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에게도 그런 궤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궤도의 이름이 꿈이든, 운명이든, 환경이든, 무엇이 됐든 간에 우리 각자에게는 궤도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궤도에 자신을 맞추려고, 그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찾고 노력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탓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참 많은 탓을 한다. 집안에 돈이 없다고, 나에겐 능력이나 재능이 없다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이 사회가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그런 탓들은 대개 자아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이다. 우리가 성장하는 데는 하등 필요 없고, 오히려 해서는 안 되는 생각과 말들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탓의 상당수는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냥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냥 살았으면 한다. 내게 주어진 환경과 운명을 따르면서, 동시에 그 운명과 환경을 이겨내려 애쓰면서. 행복하든 불행하든, 어떻게든 그냥 살아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탓하는 데 쓰는 힘을 살아가는 데 쓰는 것. 주어진 궤도를 부정하는 대신 그 궤도 위에서 최선을 다해 도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의 태도다. 그런데 삶에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안정적이던 궤도가 한순간에 깨져버리는 순간. 바로 상실이다.
궤도가 깨진 자리, ‘기억을 걷는 시간’
넬(NELL)의 ‘기억을 걷는 시간’은 그렇게 궤도가 깨져버린 사람의 노래다.
이 곡은 넬의 정규 4집 《Separation Anxiety》의 타이틀곡으로 2008년 발매되었고,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를 오가며 조금씩 알려지던 밴드를 단숨에 메이저 록밴드로 발돋움시킨 기념비적인 곡이다. 김종완이 쓴 이 노래는,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 가장 조용하고 사무치는 상실의 정서를 담고 있다.
곡의 화자는 누군가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아직도 그의 소리를 듣고, 손길을 느끼고, 오늘도 그의 흔적 안에서, 그의 시간 안에서 살았다고 고백한다. 떠난 사람이 남긴 자리를, 화자는 여전히 궤도처럼 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 네가 있다
이 곡이 그려내는 상실의 방식은 특별하다. 슬픔을 직접 토로하는 대신, 세상 모든 사물에 그 사람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저녁의 공기 속에도 그 사람이 있다.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위에도, 무심코 집어 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비추는 거울 속에도, 귓가에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화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그 사람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실이 만들어낸 새로운 궤도다. 떠난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 전체가 그의 흔적으로 재편된 궤도. 화자는 이제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 어디를 보아도, 무엇을 만져도, 결국 그 사람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내일도 오늘과 같겠죠
가장 마음을 무너뜨리는 대목은, 화자가 이 고통스러운 궤도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내일도 그를 보겠지, 내일도 그를 듣겠지, 내일도 모든 게 오늘 하루와 똑같겠지. 행성이 매일 같은 궤도를 도는 것처럼, 화자의 하루하루도 그 사람의 기억을 도는 일로 채워진다. 여기엔 격렬한 절규가 없다. 오히려 반복될 슬픔을 이미 알고 체념한, 조용한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앞서 내가 말한 ‘그냥 살자’는 태도가, 뜻밖에도 이 지점에서 겹쳐진다. 화자는 자신의 불행을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는다. 운명을 원망하지도, 떠난 이를 붙잡고 매달리지도 않는다. 다만 그 상실을 자신의 새로운 궤도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그냥 살아간다. 어쩌면 이것이 상실을 견디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떡하죠 이젠, 그대는 지웠을 텐데
그럼에도 이 담담함 아래에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흐른다.
화자는 묻는다. 당신도 나와 같으냐고.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대는 이미 나를 지웠을 텐데, 하고. 여기에 이 곡의 가장 깊은 슬픔이 있다. 상실의 궤도는 결코 대칭이 아니라는 것. 한 사람은 여전히 모든 것에서 상대를 보는데, 다른 한 사람은 이미 그 궤도를 떠났다. 홀로 남아 도는 궤도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어떡하죠 이젠’이라는 물음이 반복될 때, 그것은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내뱉을 수밖에 없는, 궤도에 갇힌 자의 독백이다. 그리움의 문을 열고 그 사람의 기억이 자꾸만 자신을 찾아와,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진다는 고백은, 그 궤도가 얼마나 벗어나기 힘든 것인지를 아프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노래를 부른다는 것
‘기억을 걷는 시간’이 위대한 이유는, 이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끝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가 보인다고 화자는 말한다. 상실의 궤도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살아 있고, 느끼고, 그리고 노래한다. 후반부에 오래도록 이어지는 ‘랄라라’의 허밍은, 더 이상 말이 되지 못하는 감정이 그저 소리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리움이, 멜로디가 되어 계속 궤도를 도는 것이다.
결국 이 곡은 앞서 내가 말한 ‘그냥 살자’는 태도의 가장 절절한 실천처럼 들린다.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고, 그 아픔을 자신의 궤도로 받아들이며, 행복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가는 것. 매일 같은 슬픔을 돌지언정 그 궤도를 끝까지 도는 것.
행성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도는 일이 실은 가장 큰 안정이자 생존이듯, 화자가 그 사람의 기억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일 역시 무너지지 않기 위한 그만의 방식일 것이다. 그러니 ‘기억을 걷는 시간’은 이별 노래이면서, 동시에 상실이라는 궤도 위에서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사람을 위한 조용한 응원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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