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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연 만약에 가사 해석, 차이와 다름 사이의 2가지 마음

    태연 만약에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차이를 둔다’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연 만약에 KBS 드라마 「쾌도 홍길동」 OST 앨범 커버. 짙푸른 밤하늘 아래 기와지붕이 끝없이 이어진 옛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오른쪽 위에는 크고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다. 한 인물이 기와지붕 위에 걸터앉아 긴 막대를 비스듬히 기댄 채 달 쪽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 위에는 붓으로 거칠게 쓴 듯한 흰 글씨의 '홍길동' 제목과 붉은 인장 모양의 한자가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에 영문으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라 적혀 있다.

    목차

    1. 차이를 둔다는 말
    2. 태연 만약에 가사는 다가가지 못한 사람의 노래입니다
    3.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
    4. 진성과 가성 사이를 오가는 목소리
    5. 차이에서 다름으로
    6. 바라보기만 했던 노래가 남긴 것
    7. 태연 만약에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옅은 리넨 천 위에 오래된 나무 자 하나가 가로놓여 있고, 똑같이 생긴 작은 돌 두 개가 자의 서로 다른 눈금 위에 놓인 정물 사진. 하나는 영점 가까이에, 다른 하나는 자의 끝 쪽 멀리에 자리한다. 왼편 창에서 들어온 부드러운 빛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오래 써서 흐려진 눈금이 남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는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차이를 둔다는 말

    차이를 둔다.

    자주 떠오르는 말이지만, 동시에 떠오르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이 자주 떠오르는 이유는, 사람이, 아니 정확히는 제가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경 쓴다는 것의 정체

    여기서 신경을 쓴다는 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조금은 이상한 걱정과는 다릅니다.

    그보다는 약간의 경쟁심에 가깝습니다. 저 사람은 저만큼 했는데 나는 왜 여기까지일까.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해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남과 나 사이에 눈금을 긋고, 그 거리를 재는 일. 그것이 제가 말하는 차이를 둔다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이유

    그런데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그 생각 자체가 저를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잴 때마다 저는 늘 모자란 쪽에 서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견주는 그 사람은, 정작 저에 대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입니다. 현실에 가까운 목소리가 그렇게 말합니다.

    저 혼자 경주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상대는 출발선에 서 있는지도 모르는 경주를.

    그럼에도 반복된다

    그럼에도 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직 그 반복에서 벗어나는 법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태연 만약에 가사는 다가가지 못한 사람의 노래입니다

    이 곡은 2008년 KBS 2TV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OST로 발표되었습니다. 송재원이 작사하고 김준범과 이창희가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정법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내가 다가간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없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만약에 네가 간다면, 네가 떠나간다면, 너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자꾸 겁이 난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네가 온다면, 네가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다가가는 경우도, 떠나는 경우도, 다가오는 경우도 모두 상상만 할 뿐입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후렴에서 화자는 자신이 왜 움직이지 못하는지 털어놓습니다.

    바보 같아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건, 아마도 외면할지도 모를 네 마음과, 그래서 더 멀어질 사이가 될까 봐서라고.

    저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앞서 저는 제가 견주는 그 사람이 정작 저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라는 목소리가 있다고 썼습니다. 이 곡의 화자가 두려워하는 것도 정확히 같습니다. 외면당하는 것, 상대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

    그래서 화자는 거리를 잽니다. 다가가면 어떨까, 멀어지면 어떨까. 그리고 그 계산이 끝나지 않으니 결국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것이 차이를 두는 마음의 결말입니다. 거리를 재는 사람은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합니다.

    가정에 갇히는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빅뱅 ‘IF YOU’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

    2절의 후렴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정말 바보 같아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과 슬픈 나날들이 두려워서인가 보다고.

    화자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관계의 끝을 먼저 떠올립니다. 만나기도 전에 헤어질 날을 걱정합니다.

    저는 이것이 비교하는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나를 견주는 사람은, 늘 결과를 먼저 봅니다. 저 사람이 이미 도착한 자리와 내가 아직 서 있는 자리. 그 차이를 확인하고 나면, 출발할 의욕조차 사라집니다. 어차피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결론이 먼저 나와 있으니까요.

    진성과 가성 사이를 오가는 목소리

    이 곡은 부르기 어렵기로도 유명합니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것이 높은 난이도의 이유로 꼽히며, 실제로 많은 가수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노래입니다.

    저는 이 특징이 곡의 정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성은 본래의 목소리이고, 가성은 그 위로 얇게 띄워 올린 목소리입니다. 이 곡은 그 둘 사이를 계속 넘나듭니다. 마음을 드러내려다가 다시 감추고, 감추려다가 다시 새어 나옵니다.

    앞서 저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 하지 말아야겠다고 믿고, 그것이 수없이 반복된다고 썼습니다. 이 곡의 목소리도 그렇게 오갑니다. 다가가려는 마음과 물러서려는 마음 사이를.

    그리고 이 곡의 후렴은 세 번 반복되지만, 마지막까지 결론이 바뀌지 않습니다. 화자는 끝내 다가가지 않습니다. 반복은 있지만 해결은 없습니다.

    차이에서 다름으로

    그렇다면 이 반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답이 ‘차이’라는 말을 ‘다름’이라는 말로 바꾸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라는 말에는 하나의 잣대가 숨어 있습니다. 같은 줄 위에 두 사람을 세워 놓고, 누가 앞서 있는지를 잽니다. 그래서 차이를 생각하면 늘 위아래가 생깁니다.

    반면 다름이라는 말에는 잣대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으니, 누가 앞서 있는지 잴 수가 없습니다.

    이 곡의 화자가 상대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어쩌면 상대를 자신보다 높은 곳에 세워 두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내가 다가가면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미 둘 사이에 위아래를 그어 둔 생각입니다.

    만약 그 사이를 차이가 아니라 다름으로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높고 낮음이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면, 다가가는 일이 조금은 덜 무서웠을지도 모릅니다.

    남과 나를 견주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에 대해서는 있지 ‘달라달라’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제목부터가 ‘다르다’는 노래였지요.

    바라보기만 했던 노래가 남긴 것

    흥미로운 건, 이렇게 끝내 다가가지 못한 사람의 노래가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가 닿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곡은 멜론 OST 부문에서 19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2008년 상반기 노래방 차트 1위에 오르며 2000년대를 대표하는 발라드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리고 그의 보컬 능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용기 내지 못한 사람의 고백이, 정작 가장 많은 사람이 따라 부르는 노래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위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라보기만 하는 마음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니까요. 다들 어딘가에서 거리를 재고, 다가가지 못하고, 만약에를 되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가수의 다른 곡에서 멈춰 선 시간에 대해 쓴 글은 태연 ‘Fine’을 다룬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태연 만약에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차이를 둡니다. 남과 나 사이에 눈금을 긋고 거리를 잽니다. 그 생각이 저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상대는 저를 신경조차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이 곡의 화자도 같았습니다. 다가가면 외면당할까, 멀어지면 어떻게 보낼까. 거리를 재는 동안 화자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직 저는 그 반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깨달았다고 말하기에는 이릅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있습니다. 차이를 깨닫는 데서 벗어나, 다름을 깨닫는 데로 가는 것.

    남과 나를 같은 줄 위에 세우지 않는 것. 그저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되면 거리를 재는 일도, 바라보기만 하는 일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전곡은 벅스 태연 만약에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만약에’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연 만약에 가사를 ‘차이’와 ‘다름’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남과 나를 견주는 마음이 왜 나를 갉아먹는지, 그리고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의 두려움까지 짚었습니다.

  • DJ DOC와 춤을 가사 해석, 당연함을 의심하는 2가지 눈

    DOC와 춤을 DJ DOC 4집 앨범 커버. 흰 배경 위에 세 명의 멤버가 낮은 자세로 모여 있는 사진이 흑백에 가까운 톤으로 담겨 있다. 한 명은 바닥에 엎드리듯 기대고, 나머지 둘은 무릎을 굽힌 채 앞을 보고 있으며 모두 헐렁한 검은 옷과 모자,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상단에는 굵은 검은 글씨로 'DJ·DOC'가 크게 배치되고, 그 아래에 붉은 'ALBUM'과 '4th'가 겹쳐 놓여 있다.

    DJ DOC와 춤을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아무도 믿지 마라, 너 자신만을 믿어라
    2. DJ DOC와 춤을 가사는 당연함을 겨눕니다
    3. 10년 뒤에 벌어진 일
    4. 뒤통수가 예뻐야만 밀어야 하나
    5. 신중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6. 금지곡이 타이틀이 된 사연
    7. DJ DOC와 춤을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아무도 믿지 마라, 너 자신만을 믿어라

    배신이라는 말 뒤에 남는 씁쓸한 문장입니다. 대개 피해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말이자, 교훈처럼 전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좀처럼 확 와닿지는 않는 말입니다. 뼈를 때리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계속 다른 사람을 믿지 않게 되다 보면 결국에는 홀로 남겨지게 되니까요.

    이 말의 진짜 의미

    저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깨어 있는 눈으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참사는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됩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원래 이랬어, 다음에 고치면 되겠지 하는 마음 말입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당연해 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눈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 혹은 다른 방안이나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면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감수해야 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되레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눈에는 신중함이 충분히 들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두운 탁자 위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본 정물 사진. 똑같은 나무 젓가락 여러 쌍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란히 평행하게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쌍만이 엇갈린 채 비스듬히 놓여 있다. 위에서 고르게 내려오는 부드러운 빛 덕분에 짙은 그림자는 생기지 않는다. 똑같아 보이는 배열 속에서도 젓가락마다 나뭇결은 조금씩 다르게 드러난다. 규칙과 예외가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인 이미지다.

    DJ DOC와 춤을 가사는 당연함을 겨눕니다

    1997년 4월 1일 발매된 DJ DOC 4집의 타이틀곡인 이 곡은, 정확히 그 ‘당연함’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곡은 아주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밥을 먹느냐고.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은 잘 먹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밥 먹을 때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옆집 아저씨는 젓가락질을 보고 뭐라고 합니다.

    저는 이 도입이 대단히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젓가락질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묻습니다. 그게 왜 지켜져야 하느냐고. 밥을 먹는다는 목적이 달성되는데 방식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눈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청바지와 반바지

    그리고 후렴에서 그 질문은 사회로 확장됩니다.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서 괜찮을 텐데.

    이 두 문장은 1990년대 당시 아주 구체적인 현실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복이 재도입되었는데, 이 교복이 단정함이라는 겉보기에만 치중하고 실용성은 뒤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장 규제도 함께 까다로워지면서 학생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무더운 국가들의 교복은 참고 사례에 포함되지 않았고, 반바지를 정장처럼 입는 것은 남사스럽다는 것이 당시 학교 임원진과 고령층의 주된 의견이었습니다. 거기에 원가 절감까지 더해지면서 교복의 편의성은 뒤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사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규칙 하나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한여름 텅 빈 학교 복도를 담은 사진. 높은 창으로 햇빛이 강하게 쏟아져 들어와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위에 내려앉고, 공기 중에는 옅은 아지랑이가 어른거린다. 벽에 걸린 고리에는 똑같이 생긴 짙은 색 교복 재킷들이 손대지 않은 채 무겁게 늘어져 있고, 그 뒤편의 창문들은 활짝 열려 있다. 학생도 가방도 움직임도 없이, 더운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옷만이 남아 있다.

    10년 뒤에 벌어진 일

    그런데 여기서 이 곡의 진짜 힘이 드러납니다.

    곡이 대히트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반바지를 교복으로 입을 바에 차라리 교복 자율화를 다시 하는 게 낫다는 것이 당시 학교장과 임원들 다수의 관념이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6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최초로 반바지 교복이 도입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DJ DOC의 멤버 이하늘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학생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인 만큼 멋진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남겼습니다.

    이후 2010년대 초중반 폭염과 전력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남녀 공용 생활복 형식의 교복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가도 괜찮을 텐데라는 구절 역시, 복장이 자율적인 회사가 늘어나면서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습니다.

    앞서 저는 당연한 것이 당연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곡은 그 말을 실제로 증명한 셈입니다.

    노래 한 곡이 곧바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노래가 오래 남아 세상에 닿는 일에 대해서는, 이전에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뒤통수가 예뻐야만 밀어야 하나

    2절에서 이 곡은 또 하나의 당연함을 꺼냅니다.

    뒤통수가 예뻐야만 머리를 미느냐고, 자신은 뒤통수가 안 예뻐도 민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 머리를 보며 사회에 불만 있느냐고 한마디씩 합니다.

    머리를 밀면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풍조를 짚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이 통쾌합니다. 옆머리로 속알머리를 감추려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약한 모습이라고, 감추지 말고 그냥 밀라고 말합니다.

    이하늘은 훗날 자신도 서른두 살 무렵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아예 밀어버렸다고 밝혔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스스로 콤플렉스를 만들기보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었다고 말이죠.

    자기 가사를 20년 뒤에 자기 몸으로 실천한 셈입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있지 ‘달라달라’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신중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 곡이 흥미로운 이유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청바지를 입자고 하면서 깔끔하기만 하면이라는 조건을 답니다. 반바지를 입자고 하면서 깔끔하고 시원하다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무조건 규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이 지키려던 목적을 다른 방식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저는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눈에는 신중함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이 곡의 가사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를 내는 대신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금지곡이 타이틀이 된 사연

    이 곡에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다른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곡이 선정적인 가사가 문제가 되어 방송 3사에서 방송 금지를 당하면서, 대신 선택된 것이 바로 이 곡이었습니다.

    규제 때문에 밀려 나온 곡이, 규제를 다시 묻는 노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곡은 청소년과 청년층은 물론 중노년층까지 아우르며 대히트를 쳤습니다. 1990년대는 세대 갈등이 한창 화두이던 시절이었는데, 이 곡은 청소년뿐 아니라 기성세대에 관한 내용까지 다루면서 전 세대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추라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추라고, 그깟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당연함을 의심하는 일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이 곡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DJ DOC와 춤을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참사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 원래 이랬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이상한 것이 맞습니다.

    그럴 때는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근거와 대안을 함께 들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감수할 각오로 말입니다.

    이 곡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젓가락질부터 교복과 머리 모양까지, 아무도 묻지 않던 것들을 물었고 20년 뒤에 그중 몇 가지는 실제로 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의 규칙을 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이브 ‘I AM’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무언가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 감각을 그냥 넘기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당연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뜻일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DOC와 춤을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당연함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DJ DOC와 춤을 가사를 ‘당연함’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안전 불감증이 시작되는 지점, 그리고 이 곡의 가사가 실제로 현실이 된 과정까지 함께 짚었습니다.

  •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 해석, 마법 같은 2가지 마술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윤도현 1집 앨범 커버. 미색 바탕 위에 색연필로 그린 듯한 드로잉으로, 한 인물이 고개를 숙인 채 손을 얼굴 가까이 올리고 있는 옆모습이 담겨 있다. 주황과 갈색 계열의 거친 선으로 윤곽만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배경에는 색을 거의 쓰지 않았다. 오른쪽에는 세로쓰기로 '윤도현 1'과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적혀 있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마술과 마법의 차이부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마술은 일어나고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2.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에도 그런 마술이 있습니다
    3. 이 곡이 겪은 실제 마술
    4. 카논이라는 오래된 코드 위에서
    5. 세대를 건너간 노래
    6.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7.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눈보라가 막 지나가는 설원 한가운데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는 장면. 잎이 모두 떨어진 검은 가지에는 얼음이 서려 있고, 줄기는 살짝 기울었지만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닥에서는 아직 바람이 고운 눈가루를 낮게 쓸어 나른다. 뒤편 하늘은 옅은 잿빛이지만 지평선 근처부터 조금씩 개기 시작했다. 울타리도 건물도 다른 나무도 없이, 오직 이 한 그루뿐이다.

    마술은 일어나고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술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마법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눈속임이라는 게 마술이라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것,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마법입니다.

    그래서 최현우는 마술사고 해리 포터는 마법사입니다.

    저는 마법 같은 마술을 하고 싶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겠지만, 저는 마법 같은 마술을 하고 싶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걸 단순한 눈속임으로 만들어내는 것. 말이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도록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흔히 부정 탄다는 말이 있듯,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하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충분히 존재합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것을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말이 씨가 된다고 합니다.

    모든 일이 다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만, 또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런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한번 해보려고는 합니다. 마법 같은 마술을 말이죠.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이유 ‘Love poem’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늦가을 한적한 거리에 자리한 작은 우체국을 담은 사진. 낮고 소박한 건물 입구 옆에 낡은 붉은색 우체통이 홀로 서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보도에는 노란 은행잎이 두껍게 쌓여 있으며 몇 장은 아직 공중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중이다. 낮게 깔린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 우체통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놓아, 하루가 거의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에도 그런 마술이 있습니다

    이 곡의 후렴은 하나의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처럼,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는 일. 저 혼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일. 저는 이것이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따지면 모든 것은 닳고 흩어집니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가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를 묻습니다.

    기다림이라는 눈속임

    그리고 이 질문은 아주 사소한 장면 위에 놓여 있습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이 이 곡에서 화자가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처럼 저 멀리 가는 걸 바라봅니다. 그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이 저물도록 몰랐다고 합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시간 동안 하루가 통째로 지나갑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에 잡히는 트릭도 없고 특별한 장치도 없는데, 시간이 사라져버리니까요.

    이 곡이 겪은 실제 마술

    그런데 이 곡의 이력을 보면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곡은 1994년 12월 발표된 윤도현 1집에 실렸습니다. 원곡은 그가 솔로 데뷔 전 몸담았던 파주의 포크록 밴드 종이연의 동명 곡으로, 멤버 김현성이 작사하고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곡 버전은 지금 음원으로 들을 수 없습니다. 음반을 따로 구해야만 들을 수 있는 곡이 되었습니다.

    한 밴드가 사라지고 그들의 음반도 구하기 어려워졌는데, 그중 한 곡만이 살아남아 30년 넘게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저는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이 곡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곡 자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김광석이 일주일 늦었던 일

    또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김현성이 이 곡을 윤도현에게 준 일주일 뒤, 김광석이 이 곡을 부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기가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광석은 아끼던 후배에게 이미 곡이 갔다는 걸 모르고 물어봤다가,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듬해 한 신문 인터뷰에서 신인 가수 윤도현의 이 곡을 추천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차이로 이 곡의 주인이 갈렸다는 것. 그리고 곡을 놓친 사람이 오히려 그 곡을 세상에 추천했다는 것.

    저는 이런 일이 말이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카논이라는 오래된 코드 위에서

    이 곡의 만듦새에도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 곡은 파헬벨이 작곡한 카논의 반복되는 코드를 바탕으로 멜로디가 변주되는 오스티나토 양식의 곡입니다. 그리고 멜로디가 단순하지만 중첩되어, 돌림노래를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코드 진행 위에, 1990년대의 한국어 가사가 얹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 한 번 놀라운 일을 만듭니다. 카논의 코드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곡의 토대가 되어 계속 살아 있으니까요.

    오래된 것 위에 새로운 것을 얹으면, 그 새로운 것도 오래 남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는 일에도 나름의 방법이 있는 셈입니다. 마법이 아니라 마술인 것이죠.

    세대를 건너간 노래

    이 곡은 발매 당시에도 아는 사람은 아는 곡이었고, 2002년에 역주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방탄소년단의 진이 이 곡을 커버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면서, 해외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오에스티로 배우 김대명이 리메이크했습니다.

    심지어 수능특강 현대문학 지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노래가 2018년에 아이돌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고, 2021년에 드라마에 실리고, 교재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하고 물었던 노래가, 실제로 30년을 살아남은 것입니다. 멈춰 선 시간의 감각에 대해서는 태연 ‘Fine’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는 이 곡이 던지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실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이 곡도 혼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니까요. 곡을 쓴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불러준 사람이 있었고, 놓쳤지만 추천해준 사람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 다시 부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여름 소나기를 버틴 꽃도 뿌리를 내릴 흙이 있었기에 버텼고, 눈보라에 우뚝 선 나무도 곁의 다른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 홀로 선다는 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조건인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으려면 그것을 계속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노래로 이어지며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를 다룬 글에서 다뤘습니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저절로 영원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술은 일어납니다. 누군가 곡을 쓰고, 누군가 그것을 부르고, 세월이 흘러 또 누군가 그것을 다시 꺼내는 일. 그렇게 이어 붙이다 보면 3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생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그래서 맞는 말일 것입니다. 씨앗은 저절로 자라지 않지만, 심어두면 언젠가 싹이 트니까요.

    그러니 저는 계속 마법 같은 마술을 해보려 합니다. 말이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일 말입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 서서 하루가 저물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어쩌면 그런 마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전곡은 벅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마술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를 마술과 마법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곡이 30년을 살아남은 이유까지 함께 짚었습니다.

    (*본 내용은 나무위키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내용)

  •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 해석, 착각의 방에 갇힌 2가지 마음

    슈프림팀과 영준의 합작 앨범 《Ames Room》 커버. 청록빛 배경 위에 콜라주 기법으로 구성된 일러스트로, 한 여성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배경에는 검은 물방울들이 흩날리고, 좌우에는 선으로 그려진 입체 도형과 삼각형 조각들이 배치되어 있다. 하단에는 흰 글씨로 앨범명과 참여 아티스트명이 적혀 있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2. 착각의 방이라는 이름
    3. 자격조차 없었다는 고백
    4.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일상
    5. 같은 방에 서 있어도 다르게 보입니다
    6. 그럴 땐 누가 날 안아줄지
    7. 그럼에도 우리를 지탱하는 것
    8.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나와 너가 서로의 전부라고 느껴질 때 이런 말이 나온다면, 아마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거나 서로를 채워주는 동료 혹은 친구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는 자신들의 관계가 평생, 평생까지는 아니어도 기약 없는 시간이 흐르도록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계도 결국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결국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그저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한마디 말과 조금의 행동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의 말은 튕겨 나가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은 그대로 꽂히니까요.

    그러니 저는 그런 관계를 너무 맹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언젠가는 죽는 사람이고, 하나의 실수로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 있는 것이 관계입니다. 그러니 오래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저 지금 이 관계가 좋다면 좋은 것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평범한 직사각형 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닥과 천장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착시 구조의 빈 실내를 담은 사진. 안쪽 한 모서리는 훨씬 높고 멀리 있어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 좌우 구석에는 똑같은 크기의 나무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데, 그 왜곡 때문에 한쪽은 크고 다른 쪽은 훨씬 작아 보인다. 높은 창에서 들어온 차가운 빛이 밋밋한 회벽을 비춘다.

    착각의 방이라는 이름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를 앨범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 있습니다.

    슈프림팀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영준, 작곡가 김건우가 함께 만든 합작 앨범 《Ames Room》입니다. 2010년 10월 발매되었고, 타이틀곡이 ‘그땐 그땐 그땐’입니다.

    에임스 방은 착시를 일으키는 방의 이름입니다. 실제로는 비뚤어진 사다리꼴인데 정면에서 보면 평범한 직사각형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왼쪽에 서면 거인처럼, 오른쪽에 서면 난쟁이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앨범 소개는 그 이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의 영속성을 믿는 착각의 방에 갇혀, 끝없는 행복과 고통의 연결 고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앞서 제가 관계를 맹신하지 말자고 했던 이야기가, 이 앨범에서는 ‘착각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리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영원히로 시작해 왜로 끝나는 사랑

    앨범 소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영원히라는 말로 시작해 왜로 허무하게 끝나기만 하는 우리의 사랑이라고, 어느덧 그땐 그땐으로 기억되지만 아직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사랑의 추억과 후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원히로 시작해서 왜로 끝나고, 결국 그땐으로 기억되는 것. 저는 이 세 단어의 배열이 관계의 생애를 정확히 압축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앨범에는 ‘왜’와 ‘그땐 그땐 그땐’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앨범의 수록 순서와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서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배치한 셈인데, 그것이 이별한 사람의 시간 감각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끝난 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회상하지 않으니까요.

    자격조차 없었다는 고백

    1절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그 지겨운 말로 억지로 상대를 붙잡았다고, 그런 순간을 모면하는 법까지 연기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오히려 차분하게 떠났다고 합니다.

    저는 이 ‘차분하게’라는 부사가 이 곡에서 가장 아픈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화를 낸다는 건 아직 기대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차분하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났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고백은 더 정직합니다. 그때는 지쳐 있었고, 상대를 안아줄 자격조차 없었다고. 사랑보다 안정감이 더 커서 마음만 아슬하게 걸쳐 있었을 뿐이라고.

    여기서 착각의 방이 드러납니다. 관계가 이미 사랑이 아니라 안정감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화자는 그것을 관계가 계속될 근거로 여겼던 것입니다.

    상처가 되기 싫었다는 말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아름다운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 싫었고, 나쁜 놈으로 남기 싫었다고.

    이 말은 다정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자기 보호에 가깝습니다.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앨범 소개에도 비슷한 지적이 있습니다. 누구의 탓도 아닌 이기적인 내 욕심에 의한 결말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오늘도 스스로를 마치 피해자인 양 자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결국 되돌릴 방법 하나 생각해내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는 마지막 문장이 뼈아프게 남습니다.

    관계에서 가면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을 위한 침대이지만 한쪽에서만 잠을 잔 흔적이 남은 장면. 왼편은 이불과 시트가 흐트러져 있고 오른편은 손대지 않은 듯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다. 화면 밖 창에서 들어온 옅은 아침 빛이 침구 위로 비스듬히 떨어진다. 협탁에는 머그컵 하나와, 또 하나의 컵이 놓여 있던 자리에 남은 둥근 자국만 보인다. 나머지는 여느 때처럼 평범하고 단정하다.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일상

    2절은 이별 이후의 시간을 다룹니다.

    깨끗이 잊는 법과 상처가 다 아문 척하는 법을 배우고, 이제는 새로운 만남을 시작해도 되는 때라고 말은 하지만 마음이 같지 않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어차피 사랑이란 게 애들 장난 같은 거라 말하며 자신을 억지로 위로한다고, 그리고 이 꼴에는 그런 구차함도 필요하다고 인정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다음입니다. 똑같은 곳에서 일하고 똑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지내지만, 딱 한 가지가 다르다고 합니다.

    일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 안이 텅 비어버린 상태. 그래서 화자는 그 빈자리를 채울 변명거리나 몰두할 일을 찾습니다.

    앨범 소개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과거의 일시적 어려움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같은 방에 서 있어도 다르게 보입니다

    여기서 착각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에임스 방의 착시가 무서운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착시 속에 있다는 걸 절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보는 각도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니까요.

    한 사람은 그 관계를 영원이라고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끝났다고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사랑이라 불렀고, 다른 한 사람은 안정감이라 불렀습니다. 같은 관계인데 서 있는 자리가 달랐던 것입니다.

    앞서 저는 관계를 맹신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맹신이란 결국 자기가 보고 있는 각도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는 일이니까요.

    그럴 땐 누가 날 안아줄지

    브리지에서 이 곡은 가장 솔직해집니다.

    내가 똑바로 서 있지 못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 그럴 땐 누가 날 안아줄지 모르겠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이 문장이 반복될 때, 이 곡이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화자가 아쉬워하는 건 사랑 그 자체라기보다, 무너져도 받아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합니다. 견뎌내는 것도, 지우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변한 게 하나 없다고. 이 문장이 계속 반복되며 곡이 끝납니다.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 앞에 선 사람의 결론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의 마음에 대해서는 빅뱅 ‘IF YOU’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지탱하는 것

    그런데 앨범 소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붙여둡니다.

    혼란과 슬픔이 가득한 공간 안에서 결국 우리를 지탱해 주는 희망은 역시 사랑일 것이라고.

    저는 이 문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의 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 방을 나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관계를 맹신하지 말자는 말은 사랑하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할 거라는 전제 없이도 지금을 충분히 아낄 수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이 곡은 발매 후 각종 시상식의 힙합 부문을 휩쓸며 이들의 전성기를 알렸습니다. 연간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올랐고, 지금까지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곡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뒤 이 팀은 해체했습니다. 각자의 길을 걸으며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함께였던 시기는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굳이 안타깝게만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곡의 메시지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나가던 시기에 만든 곡의 제목이 ‘그땐’이었다는 사실.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이미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맹신하는 대신, 지금 이 관계가 좋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려는 마음에 대해서는 빅뱅 ‘LAST DANCE’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언젠가 ‘그땐’이 되어버릴 시간이라면, 지금 한마디를 조금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다정한 편이 낫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되돌릴 방법을 생각하면 이미 늦으니까요.

    전곡은 벅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그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를 관계의 유한함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사이가 무너지는 이유, 그리고 앨범이 말하는 착각의 방이 무엇인지 짚었습니다.

  • 백예린 Square 가사 해석, 받아들이기까지의 3가지 순서

    백예린 Square 백예린 정규 1집 《Every letter I sent you.》 앨범 커버. 미색 여백 안에 한 장의 사진이 액자처럼 배치되어 있다. 사진 속에는 볕이 드는 방 안에서 한 인물이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벽 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 천장에는 장식 조명이 매달려 있고, 얇은 커튼과 화분, 흐트러진 침구가 보인다. 상단에는 필기체로 앨범명과 아티스트명이 적혀 있다.

    백예린 Squar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이해’와 ‘해석’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2.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백예린 Square 가사는 해석을 거부합니다
    4. 화자가 원하는 건 해석이 아닙니다
    5.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는 초대
    6.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
    7. 주소 없이 부친 편지들
    8. 백예린 Squar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창으로 들어온 부드러운 빛을 향해 들어 올린 촘촘한 금속 격자망을 담은 접사 사진. 미세한 먼지와 빛 알갱이들이 사각형 틈을 통과하고 있으며, 일부는 철선에 걸려 머물고 일부는 그대로 빠져나간다. 화면 가운데의 격자만 선명하게 잡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릿하게 풀어진다. 아무리 촘촘한 틀이라도 걸러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어떤 정보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배경지식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통해 해석하려 합니다.

    이건 이것이기 때문에 나쁘다. 이건 이것을 근거로 좋다. 그런 판단이 꽤 빠르게 일어납니다.

    저는 그 순서를 한번 뒤집어보고 싶습니다. 이해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받아들이자고 말입니다.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세상에서

    정보가 말 그대로 홍수처럼 밀려오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뇌는 그런 빠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인식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빨리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해서 더 많은 정보를 손에 넣게 되고, 그 정보의 양이 재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눈과 머리가 익숙해지면,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까지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기.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해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내 멋대로 나와 다른 사람을 해석하려 드는 건 잘못된 오류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오류가 시간이 지나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한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빠른 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빠른 게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정보가 많은 사람이 이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은 ‘여유’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뇌에는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빠른 정보 처리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과부하가 진행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과부하는 식히지 않으면 더욱 악화되어, 결국 처리 속도가 느린 사람만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빠른 정보 홍수의 시대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는 것. 그것이 조금이 아닌 그 이상의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백예린 Square 가사는 해석을 거부합니다

    이 곡의 첫 문장이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합니다.

    모든 색깔과 성격들, 그 사이로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없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오래 멈추게 됩니다.

    색깔과 성격은 우리가 사람을 파악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저 사람은 밝다, 차분하다, 예민하다. 그런 항목들을 모아 한 사람의 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화자는 그 항목들 사이로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분류해도 진짜는 그 격자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제목이 ‘Square’, 그러니까 사각형이라는 점도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사각형은 무언가를 담기 위한 틀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틀 안에 담기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고도 없이 상처를 주는 사람

    이어지는 구절은 더 직접적입니다.

    너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누가 나를 털어간 것처럼 부서진 것 같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앞서 저는 내 멋대로 남을 해석하는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돌아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곡의 상처가 정확히 그런 종류입니다. 누구도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부서집니다.

    화자가 원하는 건 해석이 아닙니다

    2절 이후 이 곡은 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자신은 무적이 아니라고, 점점 약해져 가는 기억이 훨씬 많다고 화자는 고백합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래도 네가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알지 않느냐고.

    저는 이 문장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자는 상대에게 분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설명해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냐고 묻습니다.

    이해하기 전에, 생각하기 전에, 그냥 받아들이는 말. 화자가 기다리는 건 그것입니다.

    낡은 나무 책상 위에 손글씨 편지와 봉해진 봉투들이 빛바랜 리본으로 느슨하게 묶인 채 쌓여 있는 정물 사진. 어느 봉투에도 받는 이의 주소는 적혀 있지 않고, 종이는 고르지 않은 미색으로 바랬으며 모서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 있다. 왼쪽 위에서 내려온 등불 하나가 편지 더미만을 비추고, 책상의 나머지 부분은 그림자에 잠겨 있다.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는 초대

    그리고 후렴에서 그 말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같이 침대로 가자고, 이 밤을 신나게 보내자고, 누가 너에게 그런 짓을 했느냐고. 지금 잠들 수 있는 기분이 아니라면 나와서 한잔하고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고.

    저는 이 초대가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는 점이 좋습니다.

    효율을 따진다면 이 시간에 자야 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일부러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정확히 그 비효율을 제안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여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유는 시간이 남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효율을 잠시 포기하기로 결정할 때 생깁니다.

    그리고 이 초대에는 원인 분석이 없습니다. 누가 그랬느냐고 묻기는 하지만 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와 함께 가자고, 내가 너의 것이 되어주겠다고 말할 뿐입니다.

    혼자 삼키는 마음에 대해서는 태연 ‘Fine’을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

    마지막 벌스에서 이 관계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너는 내 어제를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오늘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화자는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동사가 ‘보다’와 ‘알다’입니다. ‘해석하다’가 아닙니다.

    본다는 것은 판단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고, 안다는 것은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화자에게 그 사람이 특별한 이유는 자신을 잘 분석해서가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마지막으로 청합니다. 나를 위로해달라고, 내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달라고.

    주소 없이 부친 편지들

    이 곡이 실린 앨범도 같은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예린은 이 앨범을 두고 열아홉부터 스물셋까지의 생각과 고민, 추억이 담겨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확한 주소가 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마음을 곡에 담아 부치곤 했는데, 이제야 정말로 보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입니다.

    주소 없이 부친 편지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주소 없는 편지는 쓸 이유가 없습니다. 도착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써 모은 것이 결국 하나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빠르게 처리하고 즉시 답을 얻는 시대에, 몇 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모아 내놓는다는 것. 저는 이것이야말로 여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 건네는 마음에 대해서는 아이유 ‘밤편지’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백예린 Squar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이해하고, 생각하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습관을 사람에게까지 적용합니다. 빠를수록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뇌에는 한계가 있고, 과부하는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해석해서 만든 결론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오류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순서를 한번 바꿔보면 좋겠습니다. 이해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원인을 분석해주는 대신, 그냥 나와서 한잔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것. 이 곡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보다 멀리 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전곡은 벅스 백예린 Square (2017)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순서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이유 밤편지 가사 해석, 잠들지 못하는 2가지 이유

    아이유 밤편지 아이유 선공개 싱글 '밤편지' 커버. 흐린 유리창 너머로 인물의 옆모습이 부드럽게 번져 보이는 사진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흰 셔츠와 어깨에 닿는 머리, 창에 서린 습기가 몽환적인 인상을 만든다. 오른쪽 아래에는 세로쓰기로 '밤편지'와 '아이유'가 적혀 있고, 하단에는 정규 4집 첫 번째 선공개라는 문구가 작게 표기되어 있다.

    아이유 밤편지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모든 동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잠을 잡니다
    2. 자는 동안 우리는 생각을 할까요
    3. 아이유 밤편지 가사는 그 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4. 왜 숙면을 빌어주는 것이 고백인가
    5. 반딧불을 창가로 보낸다는 것
    6. 모래 위에 적힌 글씨
    7. 좋은 꿈이길 바라요
    8. 아이유 밤편지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불이 꺼진 침실을 침대 곁에서 담은 사진. 흐트러진 흰 침구와 눌린 자국이 남은 베개가 놓여 있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든 차가운 새벽빛이 천 위로 길게 떨어지며 주름의 결을 드러낸다. 협탁에는 덮어둔 책 한 권과 물이 담긴 유리잔이 놓여 있고, 그 너머의 공간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누웠다가 결국 일어난 사람의 밤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모든 동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잠을 잡니다

    모든 동물은 그 진화의 산물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잠을 잡니다.

    대부분은 해가 떨어진 밤에 자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동물이라고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밤에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으면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눕자마자 자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든 일과가 끝난 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눕습니다.

    눕자마자 5분도 채 안 되어 잠이 드는 사람이 있고, 10분에서 20분 동안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전적으로 후자입니다.

    누워서 뭘 하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습니다. 별거 없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나 합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게 좀 길게 늘어져 더 오래 누워만 있거나, 아예 잠이 깨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생각을 할까요

    그러다 보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잠을 자는 건 하루 동안 쌓인 뇌 속의 쓰레기를 청소하며, 내일 다시 깨어나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진화의 산물입니다. 자는 동안에도 뇌는 일을 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뇌가 자기 자신을 청소하기 때문에 이 말은 맞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반은 틀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흔히 뇌가 일한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 우리는 정말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과학적으로는 참으로 증명된 명제일 수 있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느끼는 것도 결국 감정과 생각의 조합이고, 감정 역시 생각의 조합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고, 자는 동안 뇌가 일을 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언제 멈추는가

    다시 잠을 자려 누워 한참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잠이 들기 전에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생각은 멈춥니다.

    그럼 왜 그들은, 그리고 저는 생각을 쉽게 멈추지 못할까요.

    저는 무서움과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식하지 못한다는 공포감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도 탈진 상태에서 잠자리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 것입니다. 그런 공포감을 생각해낼 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크나큰 상심에 빠져 잠에 들지 못하고, 잠이 들어도 계속 누군가를 생각하는 잠을 자는 사람. 자는데도 할 수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 말입니다.

    밤중에 집 바깥에서 창을 향해 담은 사진. 검은 유리창 바로 옆에 작은 반딧불 하나가 떠 있고, 그 빛은 작지만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도드라진다. 창 안쪽은 얇은 커튼이 드리워진 채 어둡고 고요해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앞쪽에는 여름밤의 키 큰 풀들이 흐릿하게 번져 있다. 창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딱 그 곁까지만 다가간 빛의 거리가 인상적이다.

    아이유 밤편지 가사는 그 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곡은 정확히 그런 밤에서 태어났습니다.

    ‘밤편지’는 2017년 3월 24일 공개된 아이유 정규 4집의 첫 번째 선공개곡입니다.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목소리가 어우러진 어쿠스틱 사운드의 발라드로, 작사에는 아이유가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곡의 탄생 배경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곡을 작사할 때 불면증을 심하게 겪고 있었다고, 몸이 지쳐 가사도 잘 안 써지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입니다. 지금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라고 고백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의 숙면을 빌어주는 것이 가장 큰 고백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왜 숙면을 빌어주는 것이 고백인가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숙면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그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잠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잠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 밤 통과해야 하는 관문에 가깝습니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숙면을 빌어준다는 건, 자신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주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 화자 자신을 위한 말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을 전달해서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으니까요. 그런데 좋은 꿈을 꾸라는 말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상대가 잘 자는 동안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삼키는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태연 ‘Fine’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반딧불을 창가로 보낸다는 것

    이 곡의 첫 문장부터 그 태도가 드러납니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내겠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입니다. 그것이 사랑한다는 말이라고.

    저는 이 구조가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반딧불을 보내는 것은 조용한 행위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도, 전화를 거는 것도 아닙니다. 창 ‘가까이’까지만 보냅니다. 상대의 잠을 깨우지 않는 거리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하는 대신, 그 말을 빛 하나로 바꿔서 창밖에 두고 오는 셈입니다.

    모래 위에 적힌 글씨

    이 곡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이미지는 파도와 모래입니다.

    화자는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늘 그립고, 또 그립다고 합니다.

    모래 위의 글씨는 분명히 적혀 있지만 곧 지워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우는 것은 누구의 악의도 아닌 파도, 그러니까 시간입니다.

    앞서 저는 잠들기 전의 생각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멈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곡의 그리움도 비슷합니다. 붙잡을 수도, 지울 수도 없이 그냥 밀려왔다 밀려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마음속의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수는 없다고. 일기장 안의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수는 없다고.

    전할 수 있는 말과 전할 수 없는 말 사이에서, 화자는 결국 가장 짧은 한마디만 남깁니다.

    좋은 꿈이길 바라요

    이 곡의 마지막 문장이 그 결론입니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우겠다고, 그리고 좋은 꿈이기를 바란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처음에는 ‘보낼게요’였던 것이 마지막에는 ‘띄울게요’로 바뀝니다. 보내는 것은 목적지가 있는 행위이지만, 띄우는 것은 흘려보내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는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좋은 꿈을 꾸라는 말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잠든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잠든 동안 화자의 마음은 전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그 잠을 빌어줍니다. 자신의 마음이 닿지 않는 시간을, 상대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것입니다.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건네는 마음에 대해서는 지드래곤 ‘무제’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어쿠스틱이 지키는 거리

    이 곡의 사운드도 그 태도를 그대로 따릅니다.

    서정적인 기타 선율 위에 목소리가 얹히는 단순한 구성입니다.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에서도 소리를 크게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의도된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곡은 누군가를 재우기 위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커지면 잠을 깨우게 됩니다.

    노래 자체가 자장가의 역할을 하려면 끝까지 조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곡은 마지막까지 목소리를 낮춘 채로 끝납니다.

    아이유 밤편지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쯤 될 것입니다. 하나는 의식이 꺼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향한 생각이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두 번째 이유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첫 번째 이유로 잠들지 못할 누군가를 위해 부르는 노래처럼 들립니다.

    판단 없이 곁에 있어 주는 일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누군가가 떠올라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좋은 꿈을 빌어주는 것으로 하루를 맺어도 좋겠습니다. 그 마음은 닿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순수한 고백일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밤편지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밤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유 밤편지 가사를 잠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우리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숙면을 빌어주는 일이 왜 가장 큰 고백인지까지 함께 짚었습니다.

  • 태연 Fine 가사 해석,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2가지 이유

    태연 Fine 태연 정규 1집 《My Voice》 앨범 커버. 채도가 높은 노란 배경 앞에서 인물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있는 클로즈업 사진이다. 밝은 금발 머리는 느슨하게 묶여 있고, 붉은 립이 노란 톤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붉은 꽃잎과 초록 잎사귀가 흐릿하게 걸쳐 있다. 전체적으로 필름 특유의 부드러운 빛 번짐이 감돌아 나른한 인상을 준다.

    태연 Fin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시간’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2. 태연 Fine 가사는 멈춰 선 시계의 노래입니다
    3. 아직은 아니라는 말
    4. 사람들 틈에서 무딘 척하는 일
    5.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던 이별
    6. 폭발하지 않고 눌러 담는 소리
    7. 태연 Fin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옅은 회벽에 낡은 아날로그 벽시계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 정물 사진. 두 시계는 확연히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데, 하나는 오후 한때를 지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훨씬 이른 시각에서 초침이 멈춰 있다. 멈춘 쪽의 유리에는 옅은 먼지가 앉아 있다. 왼편 창에서 들어온 빛이 두 시계 아래로 나란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같은 벽에 걸려 있어도 시간은 같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내일이 중요한 시험이거나 중요한 발표, 혹은 면접이라면 어떨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해서 잠을 설치거나, 더 완벽하게 하려고 밤늦게까지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냥 내일이라는 것이 오지 않아서 그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를, 내 앞에 닥쳐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를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를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결국에는 내일이 오고, 그 일들은 내 앞에서 벌어집니다.

    그런데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릅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고 말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과 그냥 걷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면 앞서 이야기한 두 부류의 사람들도 다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 그러니까 빨리 준비하고 해치우려는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게 움직이는 쪽입니다. 후자,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느리게 움직이는 쪽입니다.

    전자는 빨리 그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그렇고, 후자는 그냥 그 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럴 것입니다.

    물론 물리학적으로 엄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사람마다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물리학의 그 발견과 어딘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연 Fine 가사는 멈춰 선 시계의 노래입니다

    태연의 ‘Fine’은 정확히 그 시간의 어긋남을 다룬 곡입니다.

    이 곡은 2017년 2월 28일 발매된 태연의 첫 정규 앨범 《My Voice》의 타이틀곡입니다. 감성적이면서도 폭발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얼터너티브 팝 곡으로, 이별 후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가사가 특징입니다.

    이 곡에서 시간은 두 갈래로 흐릅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쯤 되면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그쯤이면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곧바로 답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남들의 시계와 나의 시계

    저는 이 대비가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세상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합니다.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단위를 제시하면서 그때쯤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화자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달력의 날짜도 똑같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화자의 체감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의 시간처럼 말입니다.

    아침 햇빛이 드는 창턱 위에 부치지 않은 편지 한 통이 놓여 있는 장면. 봉투는 봉해져 있고 받는 이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글씨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읽히지 않는다. 모서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 오래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옆에는 식어버린 찻잔 하나가 함께 있고, 창밖으로는 흐릿하게 번진 거리가 여느 때처럼 흘러간다.

    아직은 아니라는 말

    이 곡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말은 ‘아직은 아니야’입니다.

    화자는 그 말을 바보처럼 되뇐다고 스스로 표현합니다.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다고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화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미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감정은 시간표를 따르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그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있는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괜히 움직이곤 하는 사람

    2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본다고 합니다. 가끔 감당할 수 없는 기분에,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괜히 움직이곤 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곡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멈춘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바쁘게 움직입니다. 방을 치우고, 새로운 취미를 찾고, 계획을 세웁니다. 시간을 억지로라도 흐르게 만들어 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에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괜히’라는 부사가 붙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무딘 척하는 일

    브릿지에서 이 곡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사람들 틈에 있으면 자신이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무딘 척 웃음을 지어 보이며 ‘너’라는 그늘을 애써 외면해 본다고 말이죠.

    이것이 바로 ‘Fine’이라는 제목의 정체입니다.

    우리는 안부를 물으면 대부분 괜찮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직도 힘들다고 말하면 미련해 보일까 봐 걱정하게 됩니다.

    이 곡은 그 가면을 벗깁니다. 후렴에서 반복되는 말은 결국 하나입니다. 괜찮지 않다고.

    가면을 쓴 얼굴과 진짜 얼굴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던 이별

    마지막 벌스에서 화자는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던 담담한 이별. 이 짧은 묘사가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

    담담했다는 건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는 뜻입니다. 싸움도, 눈물도, 극적인 장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미 잘 정리된 관계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담담하게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남습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다는 후렴이 여기서 다시 이해됩니다.

    폭발하지 않고 눌러 담는 소리

    이 곡의 사운드도 그 상태를 그대로 옮깁니다.

    얼터너티브 팝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 곡은 감성적이면서도 폭발적인 멜로디를 오갑니다. 태연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그 두 결을 모두 소화합니다.

    특히 후렴의 처리가 인상적입니다.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에서 이 곡은 완결된 문장을 부르지 않습니다. 대신 짧은 감탄사만 길게 늘어놓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그냥 소리로 새어 나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입가에 맴돌지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 말의 상태가 소리로 구현된 셈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앨범은 팝 발라드와 팝 R&B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열세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곡이 타이틀로 선택된 이유가, 목소리 하나로 감정의 진폭을 가장 넓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태연 Fin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도 내일은 옵니다. 시간은 우리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다음 계절에 도착해 있는데, 누군가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게으르거나 미련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의 시계가 아직 그만큼밖에 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아직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세어 주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일 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아야 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니까요.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일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곡이 끝까지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가끔은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시계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태연 Fin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속도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 해석, 인생이라는 1대의 롤러코스터

    엔믹스 Blue Valentine 엔믹스 정규 1집 《Blue Valentine》 앨범 커버. 짙푸른 배경 앞에 흰 케이크 스탠드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유리와 얼음처럼 투명한 오브제들이 꽃과 잎사귀와 뒤엉켜 탑처럼 쌓여 있다. 중앙에는 푸른빛 결정 덩어리가 자리한다. 왼편에는 흰 초 하나가 홀로 타오르고, 오른쪽 아래 접시에는 푸른 구슬들이 담겨 있다. 차가운 푸른색과 작은 불꽃이 한 화면에서 마주 선다.
    엔믹스 《Blue Valentine》 (2025) 앨범 커버 ⓒJYP엔터테인먼트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롤러코스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롤러코스터는 놀이동산의 꽃입니다
    2. 그래서 ‘인생은 롤러코스터’라고 합니다
    3. 예상이 빗나갈 때는 직접 만들면 됩니다
    4.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에도 롤러코스터가 나옵니다
    5. 얼음 속에서 불을 피우는 일
    6. 소리 자체가 롤러코스터입니다
    7.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에서 촬영한 시점의 사진으로, 열차가 최고점을 막 넘어서는 순간을 담고 있다. 앞쪽 레일은 가파르게 꺾여 시야에서 사라지고, 화면 위쪽은 흐린 하늘로만 채워져 있다. 앞자리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으며 낡은 안전바만 보인다. 흰 철제 레일은 새벽 습기에 젖어 번들거린다. 낙하 직전의 정지된 긴장감이 그대로 담긴 이미지다.

    롤러코스터는 놀이동산의 꽃입니다

    롤러코스터는 놀이동산의 꽃이라고 할 만큼 상징적인 놀이기구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국은 물론 해외까지 투어를 다니며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즐깁니다.

    저는 이 놀이기구에도 심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타기 전에 우리는 이미 예상합니다

    놀이기구를 타기 전, 모든 사람은 긴장하거나 기대하거나 즐거워합니다. 즉 그것을 탔을 때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미리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들어맞으면 도파민이 터져 나옵니다. 놀이기구가 끝나면 아쉬워하거나 통쾌해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간의 뇌가 보상 심리를 통해 작동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비싼 돈과 긴 대기 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몇 분을 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상하고, 겪고, 그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쾌감. 그것이 롤러코스터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롤러코스터’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생은 롤러코스터’라는 비유가 널리 쓰입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과정을 놀이기구에 빗댄 친숙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비유를 그저 그런 말로 흘려 넘깁니다.

    그러고는 실패를 하면 우울해하고 슬퍼하며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저 롤러코스터의 하이라이트를 지나고 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하이라이트에서 우리는 소리를 지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롤러코스터의 하이라이트,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빠르게 떨어지는 그 구간에서 소리를 지르며 환호 비슷한 것을 합니다. 무섭다고 외치면서도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는 전혀 그러지 않습니다. 그저 롤러코스터의 한 부분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같은 낙하인데 놀이기구에서는 즐거움이 되고 삶에서는 절망이 됩니다. 저는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놀이기구에서는 이 낙하가 곧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일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기분이 좋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 롤러코스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기분이 좋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끝났을 때는 깊은 여운과 조금의 아쉬움이 남고 통쾌하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그 말이 알려주니 말입니다.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사람의 표정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방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던 사람이 안전바를 풀고 내려오면서 하는 말은 대개 하나입니다. 한 번 더 타자.

    마지막이 다가올 때의 감정에 대해서는, 이전에 빅뱅 ‘LAST DANCE’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예상이 빗나갈 때는 직접 만들면 됩니다

    물론 예상이 늘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탔는데 생각보다 밋밋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시시함으로 넘기고, 더 큰 감동을 주는 롤러코스터의 부분을 직접 만들면 됩니다.

    저는 인생이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 하더라도, 조금의 노력과 실천으로 전체는 못 바꿀지언정 부분은 내가 직접 조정하거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일 전체를 새로 깔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나갈 구간에 작은 오르막 하나쯤은 설치할 수 있습니다.

    떨어지는 순간에 대하여

    그러니 인생이 힘들고 막막해 보여도 롤러코스터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인생이 롤러코스터라면, 지금 떨어지는 이 순간은 분명 최고점에 도달하기 전의 준비 운동일 테니까요. 롤러코스터는 원래 아래로 내려가면서 속도를 얻고, 그 속도로 다음 언덕을 넘습니다.

    그 조금의 노력과 실천으로 내가 가는 경로에 오르막을 설치해봅시다.

    그렇다고 최고점이 지나면 무조건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맙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조정과 만듦이 있으니까요.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에도 롤러코스터가 나옵니다

    엔믹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들의 첫 정규 앨범 《Blue Valentine》은 2025년 10월 13일, 데뷔로부터 3년 8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아이돌 그룹에게 3년 8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 여러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주요 차트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긴 준비 구간을 지나 마침내 속도를 얻은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의 세계관 자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N번째 실패를 알게 된 소녀들

    앨범 소개에 따르면, 엔믹스는 믹스토피아에 도착하기 직전 블루 밸런타인 스테이지에 진입합니다. 그리고 이 모험이 사실은 N번째 모험이며, 이 스테이지에서 매번 실패했었다는 과거를 알게 됩니다.

    위험을 각오하고 끝까지 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소녀들의 감정이 과열되면서 각자의 임페투스가 서로 상충하며 이리 튀고 저리 튀고, 결국 엔진이 터지고 맙니다.

    저는 이 설정이 앞서 말씀드린 롤러코스터와 정확히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 번 실패한 구간을 다시 지나가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되돌아가지 않기로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한 번은 무너진다는 것 말입니다.

    가사에 등장하는 롤러코스터

    그런데 이 곡은 아예 가사에서 롤러코스터를 직접 부릅니다.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흔들려도 결국 돌아갈 걸 안다고, 그러니 상관없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흔들림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흔들림이 결국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저는 놀이기구의 낙하와 삶의 낙하가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레일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말이죠. 이 곡의 화자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것을 믿기로 선택합니다.

    두꺼운 투명 얼음 덩어리 안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홀로 타오르고 있는 초근접 사진. 불꽃이 닿는 주변의 얼음은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들고, 바깥쪽 가장자리는 여전히 차갑고 서리 낀 푸른색으로 남아 있다. 불꽃을 중심으로 미세한 실금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빛을 받는다. 표면에는 녹은 물방울이 맺혀 있고, 그 너머는 완전한 어둠이다.

    얼음 속에서 불을 피우는 일

    이 곡이 그리는 사랑은 평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롤러코스터에 가깝습니다.

    붉게 타오르다 한순간에 식어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서로를 찾습니다. 파랗게 멍이 든 마음은 몇 번이고 덧이 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랑이 끝난다 해도 다시 뛰어들겠다고. 이 사랑이 차가워져도 내 안의 불은 꺼뜨리지 않겠다고.

    식어도 타오르는 얼음 속 불꽃이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그것이 이 곡이 말하는 사랑이고, 어쩌면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붉고 푸른 사랑이라는 멍이 낫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화자가 이미 선택을 끝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흔들림을 없애달라고 빌지 않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자기 몫의 불을 지키겠다고 말할 뿐입니다.

    채워질수록 오히려 목이 마른 사랑에 대해서는 에스파 ‘Thirsty’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소리 자체가 롤러코스터입니다

    이 곡의 사운드도 그 구조를 그대로 옮깁니다.

    멜랑콜리한 신스 사운드와 기타 리프가 곡을 이끌고, 느려졌다가 점점 빨라지는 붐뱁 리듬이 교차하며 입체감을 더합니다. 다이내믹한 BPM 변화와 중독성 있는 후렴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특히 코러스로 넘어가기 직전의 구간이 그렇습니다. 낮게 읊조리듯 눌려 있던 소리가 한순간에 반전되며 터져 나옵니다.

    저는 이 구조가 정확히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끌어올려지는 체인 구간이 있고, 정점에서의 짧은 정지가 있고, 그다음에 낙하가 옵니다. 이 곡은 그 리듬을 소리로 재현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들을 때 우리는 가사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몸으로 그 흔들림을 느끼게 됩니다.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생은 롤러코스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위로로만 쓰고, 정작 낙하 구간에서는 환호하지 못합니다. 놀이기구에서는 그렇게 잘 웃으면서 말입니다.

    물론 삶의 레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부분은 만들 수 있습니다. 조금의 노력과 실천으로 내가 지나갈 구간에 오르막 하나를 설치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기 길을 정한다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이브 ‘I AM’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엔믹스가 N번째 실패를 알고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처럼, 이 곡의 화자가 식어버린 사랑 앞에서도 자기 안의 불을 지키기로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떨어지고 있다면, 그건 다음 언덕을 넘기 위한 속도를 얻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한번 소리를 질러봐도 좋겠습니다. 놀이기구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전곡은 벅스 엔믹스 Blue Valentin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구간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엔믹스 Blue Valentine 가사를 롤러코스터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낙하 구간에서 우리가 환호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부분은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담았습니다.

  •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 해석, 문맥을 벗어난 1편의 시

    부활 Never Ending Story 부활 8집 《새,벽》 앨범 커버.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바위 능선 위에 다섯 명의 멤버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다. 가운데 인물은 긴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고, 나머지는 각자 다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다. 상단에는 '부활'과 함께 '새,벽'이라는 제목이 발음 기호와 나란히 적혀 있으며, 우측 하단에는 푸른빛 로고가 배치되어 있다.
    부활 《새,벽》 (2002) 앨범 커버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문맥’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문맥이 어긋나면 뜻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2.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는 문장이 끝나지 않습니다
    3. 꿈에서 왔다는 문장
    4. 비단 같은 선율
    5.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문맥이 어긋나면 뜻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문맥이 정확하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주제로 발표를 합니다. 그러다 소주제로 플라스틱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동물에 대한 정보와 사진, 영상을 잔뜩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발표를 듣는 사람들은 결국 이 발표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한 채, 발표가 끝나니 그저 박수를 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람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4차원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딱 맞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마다 삶의 문법이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정확히 호응하고, 어떤 사람의 문장은 자꾸 옆길로 새며 끝을 맺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후자의 삶이 틀린 문장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문맥에 맞지 않아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자체로 그 삶이기 때문에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속에는 어떠한 고통이나 충격 같은 것이 들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말이 자꾸 흐트러지는 이유가 게으름이나 무성의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무엇이 안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이 오히려 더 깊이 가닿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는 문장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 곡의 후렴을 문장으로만 뜯어보면 사실 말이 잘 안 됩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여기까지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집니다.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앞은 바람을 담은 문장인데 뒤는 이유를 대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앞의 소망과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문장은 끝내 닫히지 않습니다. ‘그대이기에’ 다음에 와야 할 말이 없는 채로 끝납니다.

    주어도 계속 흔들립니다. 그리워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지키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지, 시절 속에 머문 사람은 또 누구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울리는가

    그럼에도 이 후렴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말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이 후렴이 논리가 아니라 정서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무언가를 그리워할 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딱 이렇습니다. 만나고 싶다는 바람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 사람이 여전히 그 시절에 멈춰 있다는 감각이 순서 없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그것들을 정확한 문장으로 정리하려 들면 오히려 감정이 빠져나갑니다.

    이 후렴은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뒤엉킨 채로 그냥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각자 다르게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발표자의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문맥이 흐트러진 말 뒤에는 정리되지 않은 무엇이 있습니다. 이 곡은 그 정리되지 않음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문법에 대해서는, 이전에 숀 ‘Way Back Home’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꿈에서 왔다는 문장

    흥미로운 건 이 후렴의 탄생 배경입니다.

    김태원은 이 곡이 만들어진 과정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이승철과 다시 함께하기로 하고 곡을 만들기로 했는데, 마감 시한이 지나도록 악상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계약 파기와 위약금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예민함은 극에 달했고, 결국 가족이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될 만큼 힘든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깊은 우울을 지나던 어느 밤, 그는 꿈에서 시 같은 한 문장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바로 이 곡의 후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김태원이 방송에서 재미를 위해 이야기를 부풀리는 편이라는 점은 감안하고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이야기가 이 후렴의 성질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에는 문맥이 없습니다. 인과도 순서도 없이 이미지와 감정만 이어집니다. 이 후렴이 문법적으로 어긋나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정확한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논리가 만든 문장이 아니라 그리움이 만든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같은 선율

    이 곡을 이야기하며 멜로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매번 감탄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이런 멜로디를 만들 수 있을까.

    인트로부터 끝까지 어색한 곳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도, 비단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쓸 만한 멜로디는 이미 다 바닥났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석 같은 음표들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가사는 문맥이 어긋나 있는데, 멜로디는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매끄럽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비가 이 곡의 비밀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말을, 완벽하게 정돈된 선율이 안아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가사의 어긋남을 문제로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에 자기 감정을 얹게 됩니다.

    이승철의 목소리 역시 이 곡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립니다.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마지막 음까지 놓지 않는 창법이, 끝나지 않는 문장을 끝까지 데리고 갑니다.

    정돈된 소리가 정돈되지 않은 감정을 떠받치는 방식은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부활

    이 곡은 2002년 발매된 부활 8집 《새,벽》의 타이틀곡입니다.

    ‘사랑할수록’과 ‘Lonely Night’ 이후 침체기를 겪던 부활이, 말 그대로 두 번째로 ‘부활’하는 계기가 된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앨범은 약 25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당시가 MP3로 인한 음반 시장 침체기에 월드컵까지 겹친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입니다.

    지상파에서는 9년 만에 SBS 인기가요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고, 2002년 노래방 애창곡 1위에도 올랐습니다. 지금은 국내 발라드 역사상 손꼽히는 곡으로 평가됩니다.

    곡이 나오지 않아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가, 밴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이 묘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문장 하나가 결국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닿은 셈입니다.

    새벽빛이 부드럽게 번지는 들판에 작고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홀로 놓여 있는 장면. 앉는 자리는 오래 사용한 탓에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고, 의자 다리 주위로는 키 큰 풀들이 옅은 바람에 흔들린다. 화면 어디에도 탁자나 집, 뚜렷한 지평선은 보이지 않고 옅은 하늘과 흐르는 안개만이 뒤를 채운다. 누군가 오래 앉아 있다가 떠난 자리처럼 보이는 이미지다.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결국 이 곡이 알려주는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문맥이 맞아야 뜻이 전달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뜻이 전달되는 것과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종종 답답해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묻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 어긋남 자체가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말해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정리된 말은 이미 소화된 감정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말은 아직 소화되지 않은 감정입니다. 그러니 문맥이 흐트러진 말을 들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장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잠시 기다려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일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기를. 지키지 못했던 그대이기에. 이 두 문장은 끝내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정확히 느낍니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의 말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게 들린다면, 그 사람의 문법으로 다시 한번 들어보아도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 어긋남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일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부활 Never Ending Story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문장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 Never Ending Story 가사를 문맥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문장이 끝내 닫히지 않는 후렴이 왜 그토록 오래 울리는지, 그 이유를 함께 짚었습니다.

  •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 해석, 복수의 2가지 얼굴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리한나 5집 《Loud》 앨범 커버. 화면 가득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인 모습이다. 강렬한 붉은 곱슬머리가 얼굴 양옆을 감싸고, 붉은 립과 짙은 속눈썹이 도드라진다. 전체가 붉고 푸른 색조로 강하게 보정되어 있으며, 목에는 작은 필기체 문신이 보인다. 하단에는 넓은 자간의 흰 대문자로 'LOUD'가 배치되어 있다.
    리한나 《Loud》 (2010) 앨범 커버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복수’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복수는 마냥 통쾌하지 않습니다
    2.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3. 그런데 이것도 파멸입니다
    4. 두 개의 언어가 부딪히는 자리
    5.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갈라진 돌바닥 위에 오래된 나무 부메랑 하나가 놓여 있는 정물 사진. 낮게 깔린 측광이 굽은 팔 한쪽만을 선명하게 비추고, 나머지 부분은 깊은 어둠 속으로 잠긴다. 나뭇결을 따라 미세한 먼지와 실금 같은 흠집들이 드러나 오래 사용된 물건임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지평선조차 없이 평평한 어둠만이 이어진다. 던진 것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이미지다.

    복수는 마냥 통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손해를 입혔거나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준 상황에서, 당한 사람의 힘이 약하다면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음에 두고 보자’라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힘을 갖게 되면, 그는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줍니다. 말 그대로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복수의 형태는 변했습니다

    고대의 복수는 아마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습보다 훨씬 간접적인 방식이 많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1등인 친구가 자기 성적을 자랑하며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면, 2등은 다음엔 내가 꼭 1등을 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리를 빼앗았을 때, 예전에 1등이 했던 것처럼 사소한 복수를 합니다.

    칼을 들지 않았을 뿐 구조는 같습니다.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복수가 복수를 낳고, 결국 자기 파멸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에 누군가를 죽여 복수했다면, 그 복수를 당한 사람의 동료나 친구, 자녀들이 다시 복수를 감행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한한 굴레가 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가지 않더라도, 집안 대를 이어 평생 앙숙으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에게 남는 것도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복수를 하는 순간에는 짧은 도파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것은 대개 후회와 자괴감입니다. 가해자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내가 당한 시간이 되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이 곡의 화자는 그 굴레 바깥에 서 있습니다.

    이 곡은 2010년 발매된 리한나의 5집 《Loud》의 수록곡으로, 앞서 에미넴의 앨범 《Recovery》에 실려 빌보드 1위를 기록했던 원곡의 속편입니다. 스카일러 그레이와 에미넴, 알렉스 다 키드가 함께 썼고, 무엇보다 원곡에서 남자 쪽에 있던 서사의 초점을 여자의 시점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원곡에서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전면에 나옵니다. 상처를 받는 쪽의 목소리입니다.

    되돌려주지 않는 사람

    이 곡의 화자는 복수하지 않습니다.

    우리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는 밝은 미래만 있을 줄 알았는데 순간 나쁜 것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화자는 상대를 여전히 자신의 영웅이라 부릅니다. 네가 정신이 나가버렸다 해도 말입니다.

    싸움 속에서 유리가 깨지고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도, 이 줄다리기에서 언제나 이기는 쪽은 상대라고 화자는 인정합니다. 자신이 옳았을 때조차 그렇다고 말이죠. 그러고는 서 있기만 하라고, 내가 불타는 걸 지켜보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자신은 상처받는 걸 좋아하니까.

    여기서 이 곡의 화자는 앞서 말씀드린 복수의 굴레와 정반대의 자리에 있습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대신, 전부 자기 안으로 삼킵니다.

    어두운 방 안, 텅 빈 나무 탁자 위에 물이 담긴 유리잔 하나가 홀로 놓여 있는 장면. 수면은 미동도 없이 완전히 고요하지만, 잔의 한쪽 면에는 실금 하나가 위로 뻗어 있다. 아직 물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왼편 창에서 들어온 차가운 푸른빛이 유리를 통과하며 굴절되어 탁자 위에 가늘고 일그러진 그림자를 남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미 금이 간 상태를 담아낸 이미지다.

    그런데 이것도 파멸입니다

    문제는 그 삼킴이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자 스스로도 그것을 압니다. 어쩌면 자신이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도망치고 싶지만 영영 떠나고 싶지는 않다고. 벽이 우리의 모든 기억과 함께 연기 속으로 무너질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곡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저는 복수의 굴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면 그것이 다시 돌아오고, 결국 서로가 무너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반대편에도 똑같은 파멸이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되돌려주지 않고 전부 삼키면, 무너지는 사람이 하나로 줄어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복수하는 사람은 상대와 함께 망가지고, 삼키는 사람은 혼자 망가집니다. 굴레의 방향이 바깥이냐 안이냐의 차이일 뿐, 끝이 파멸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스스로를 가혹한 심판대에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두 개의 언어가 부딪히는 자리

    이 곡의 구조도 그 충돌을 그대로 옮깁니다.

    곡은 잔잔한 피아노 위에서 시작합니다. G단조에 83비피엠 정도의 중간 템포로, 원곡의 격렬한 록 사운드와는 결이 다릅니다. 리한나의 보컬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신 안으로 눌러 담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 에미넴의 랩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조용히 눌려 있던 것 위로 통제되지 않는 목소리가 쏟아집니다. 이 대비가 곧 이 관계의 구조입니다. 한쪽은 삼키고, 다른 한쪽은 쏟아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에 에미넴의 파트를 아예 뺀 피아노 버전도 따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 버전에서는 여자의 목소리만 남습니다. 상대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이 사람의 독백은 성립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Loud》라는 앨범에서 이 곡의 자리

    앨범 《Loud》는 ‘시끄러운’과 ‘선정적인’이라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어둡고 하드했던 전작 이후, 다시 밝고 활기찬 대중적 이미지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진 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의 위치가 더 의미심장합니다. 화려하고 신나는 트랙들 사이에서 이 곡만은 유독 차갑고 어둡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한 평론가는 이 앨범이 잘 계산된 팝의 연속처럼 흘러가다가 바로 이 곡에 이르러 달라진다고 평했고, 명령하는 듯하면서 동시에 상처 입은 리한나의 보컬이 이 곡과 앨범 전체를 붙들어 준다고 적었습니다.

    물론 이 곡을 두고 사회적 발언과 대중적 오락 사이의 경계를 흐린 불필요한 속편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지적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를 아름다운 무엇으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저는 이 곡을 사랑 노래로 읽지 않습니다. 파괴적인 관계 안에서 사람의 판단이 어떻게 흐려지는지를 기록한 곡으로 읽습니다.

    네가 거짓말하는 게 좋다는 후렴은 고백이 아니라 증상에 가깝습니다. 정상적인 판단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곡이 무서운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만큼 또렷하다는 데 있습니다.

    복수는 답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부 삼키는 것 역시 답이 아닙니다. 굴레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되돌려주는 것도, 참아내는 것도 아니라 그 자리에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관계를 놓아주는 일에 대해서는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룬 글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 곡의 화자는 끝내 걸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아름답다기보다 아픕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픔이 정확히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이 곡이 필요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사람도, 전부 자기 안에 쌓는 사람도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에게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반대로 혼자 다 삼키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 굴레의 바깥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요.

    전곡은 벅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Part II)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를 복수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되돌려주는 사람과 전부 삼키는 사람, 그 두 얼굴이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하는 이유를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