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 해석, 복수의 2가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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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리한나 5집 《Loud》 앨범 커버. 화면 가득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인 모습이다. 강렬한 붉은 곱슬머리가 얼굴 양옆을 감싸고, 붉은 립과 짙은 속눈썹이 도드라진다. 전체가 붉고 푸른 색조로 강하게 보정되어 있으며, 목에는 작은 필기체 문신이 보인다. 하단에는 넓은 자간의 흰 대문자로 'LOUD'가 배치되어 있다.
리한나 《Loud》 (2010) 앨범 커버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복수’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복수는 마냥 통쾌하지 않습니다
  2.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3. 그런데 이것도 파멸입니다
  4. 두 개의 언어가 부딪히는 자리
  5.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갈라진 돌바닥 위에 오래된 나무 부메랑 하나가 놓여 있는 정물 사진. 낮게 깔린 측광이 굽은 팔 한쪽만을 선명하게 비추고, 나머지 부분은 깊은 어둠 속으로 잠긴다. 나뭇결을 따라 미세한 먼지와 실금 같은 흠집들이 드러나 오래 사용된 물건임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지평선조차 없이 평평한 어둠만이 이어진다. 던진 것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이미지다.

복수는 마냥 통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손해를 입혔거나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준 상황에서, 당한 사람의 힘이 약하다면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음에 두고 보자’라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힘을 갖게 되면, 그는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줍니다. 말 그대로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복수의 형태는 변했습니다

고대의 복수는 아마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습보다 훨씬 간접적인 방식이 많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1등인 친구가 자기 성적을 자랑하며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면, 2등은 다음엔 내가 꼭 1등을 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리를 빼앗았을 때, 예전에 1등이 했던 것처럼 사소한 복수를 합니다.

칼을 들지 않았을 뿐 구조는 같습니다.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복수가 복수를 낳고, 결국 자기 파멸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에 누군가를 죽여 복수했다면, 그 복수를 당한 사람의 동료나 친구, 자녀들이 다시 복수를 감행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한한 굴레가 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가지 않더라도, 집안 대를 이어 평생 앙숙으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에게 남는 것도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복수를 하는 순간에는 짧은 도파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것은 대개 후회와 자괴감입니다. 가해자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내가 당한 시간이 되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이 곡의 화자는 그 굴레 바깥에 서 있습니다.

이 곡은 2010년 발매된 리한나의 5집 《Loud》의 수록곡으로, 앞서 에미넴의 앨범 《Recovery》에 실려 빌보드 1위를 기록했던 원곡의 속편입니다. 스카일러 그레이와 에미넴, 알렉스 다 키드가 함께 썼고, 무엇보다 원곡에서 남자 쪽에 있던 서사의 초점을 여자의 시점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원곡에서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전면에 나옵니다. 상처를 받는 쪽의 목소리입니다.

되돌려주지 않는 사람

이 곡의 화자는 복수하지 않습니다.

우리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는 밝은 미래만 있을 줄 알았는데 순간 나쁜 것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화자는 상대를 여전히 자신의 영웅이라 부릅니다. 네가 정신이 나가버렸다 해도 말입니다.

싸움 속에서 유리가 깨지고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도, 이 줄다리기에서 언제나 이기는 쪽은 상대라고 화자는 인정합니다. 자신이 옳았을 때조차 그렇다고 말이죠. 그러고는 서 있기만 하라고, 내가 불타는 걸 지켜보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자신은 상처받는 걸 좋아하니까.

여기서 이 곡의 화자는 앞서 말씀드린 복수의 굴레와 정반대의 자리에 있습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대신, 전부 자기 안으로 삼킵니다.

어두운 방 안, 텅 빈 나무 탁자 위에 물이 담긴 유리잔 하나가 홀로 놓여 있는 장면. 수면은 미동도 없이 완전히 고요하지만, 잔의 한쪽 면에는 실금 하나가 위로 뻗어 있다. 아직 물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왼편 창에서 들어온 차가운 푸른빛이 유리를 통과하며 굴절되어 탁자 위에 가늘고 일그러진 그림자를 남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미 금이 간 상태를 담아낸 이미지다.

그런데 이것도 파멸입니다

문제는 그 삼킴이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자 스스로도 그것을 압니다. 어쩌면 자신이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도망치고 싶지만 영영 떠나고 싶지는 않다고. 벽이 우리의 모든 기억과 함께 연기 속으로 무너질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곡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저는 복수의 굴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면 그것이 다시 돌아오고, 결국 서로가 무너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반대편에도 똑같은 파멸이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되돌려주지 않고 전부 삼키면, 무너지는 사람이 하나로 줄어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복수하는 사람은 상대와 함께 망가지고, 삼키는 사람은 혼자 망가집니다. 굴레의 방향이 바깥이냐 안이냐의 차이일 뿐, 끝이 파멸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스스로를 가혹한 심판대에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두 개의 언어가 부딪히는 자리

이 곡의 구조도 그 충돌을 그대로 옮깁니다.

곡은 잔잔한 피아노 위에서 시작합니다. G단조에 83비피엠 정도의 중간 템포로, 원곡의 격렬한 록 사운드와는 결이 다릅니다. 리한나의 보컬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신 안으로 눌러 담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 에미넴의 랩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조용히 눌려 있던 것 위로 통제되지 않는 목소리가 쏟아집니다. 이 대비가 곧 이 관계의 구조입니다. 한쪽은 삼키고, 다른 한쪽은 쏟아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에 에미넴의 파트를 아예 뺀 피아노 버전도 따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 버전에서는 여자의 목소리만 남습니다. 상대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이 사람의 독백은 성립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Loud》라는 앨범에서 이 곡의 자리

앨범 《Loud》는 ‘시끄러운’과 ‘선정적인’이라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어둡고 하드했던 전작 이후, 다시 밝고 활기찬 대중적 이미지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진 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의 위치가 더 의미심장합니다. 화려하고 신나는 트랙들 사이에서 이 곡만은 유독 차갑고 어둡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한 평론가는 이 앨범이 잘 계산된 팝의 연속처럼 흘러가다가 바로 이 곡에 이르러 달라진다고 평했고, 명령하는 듯하면서 동시에 상처 입은 리한나의 보컬이 이 곡과 앨범 전체를 붙들어 준다고 적었습니다.

물론 이 곡을 두고 사회적 발언과 대중적 오락 사이의 경계를 흐린 불필요한 속편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지적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를 아름다운 무엇으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저는 이 곡을 사랑 노래로 읽지 않습니다. 파괴적인 관계 안에서 사람의 판단이 어떻게 흐려지는지를 기록한 곡으로 읽습니다.

네가 거짓말하는 게 좋다는 후렴은 고백이 아니라 증상에 가깝습니다. 정상적인 판단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곡이 무서운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만큼 또렷하다는 데 있습니다.

복수는 답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부 삼키는 것 역시 답이 아닙니다. 굴레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되돌려주는 것도, 참아내는 것도 아니라 그 자리에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관계를 놓아주는 일에 대해서는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룬 글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 곡의 화자는 끝내 걸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아름답다기보다 아픕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픔이 정확히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이 곡이 필요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사람도, 전부 자기 안에 쌓는 사람도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에게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반대로 혼자 다 삼키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 굴레의 바깥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요.

전곡은 벅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Part II)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한나 Love The Way You Lie 가사를 복수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되돌려주는 사람과 전부 삼키는 사람, 그 두 얼굴이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하는 이유를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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