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 해석, 조롱과 풍자를 가르는 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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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Born Hater 에픽하이 정규 8집 《신발장》 앨범 커버. 연한 민트빛 배경 위에 수채화 느낌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화면 상단에 한 사람이 앉아 발레 토슈즈의 리본을 묶고 있는 다리와 손만이 담겨 있다. 분홍빛 슈즈와 늘어진 리본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은 프레임 밖으로 잘려 보이지 않는다. 아래쪽에는 손글씨체 흰 글씨로 '에픽하이 신발장'이 적혀 있다.
에픽하이 《신발장》 (2014) 앨범 커버 ⓒYG엔터테인먼트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풍자와 조롱의 차이부터 짚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풍자와 조롱은 한 끗 차이입니다
  2.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는 조롱을 조롱으로 돌려줍니다
  3. 각자의 방식으로 되돌려주다
  4. 그렇다면 이건 풍자인가 조롱인가
  5. 휴지통에서 살아난 비트
  6.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불이 꺼진 방 안, 화면 밖 모니터에서 새어 나온 차가운 푸른빛만이 컴퓨터 키보드 위로 떨어지는 장면. 오래 사용해 자판의 글자가 닳고 표면이 희미하게 반들거린다. 화면도, 손도, 사람도 보이지 않고 오직 키보드와 그 위에 내려앉은 빛만 남아 있으며, 그 너머의 공간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얼굴 없이 말이 던져지는 자리를 서늘하게 담아낸 이미지다.

풍자와 조롱은 한 끗 차이입니다

풍자는 사회의 문제를 웃음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반면 조롱은 사회의 문제를 웃음으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비판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라면, 비난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풍자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조롱은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을 때립니다.

겉보기에 둘은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웃음을 동반하고, 둘 다 누군가를 겨냥합니다. 그러나 향하는 곳이 다릅니다. 풍자는 구조를 향하고, 조롱은 사람을 향합니다.

감정은 이성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훨씬 먼저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 그런 조롱을 마주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기 파괴로 이어집니다. 나중에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도, 이미 감정이 먼저 무너진 뒤이기 때문입니다.

악플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감능력이라는 문제

악플러들은 대체로 공감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적는 글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키보드 앞에서는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표정도, 목소리도, 그 말을 읽고 난 뒤의 침묵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던진 돌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무지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몰랐다고 해서 맞은 사람의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는 조롱을 조롱으로 돌려줍니다

2014년 10월 21일 발매된 정규 8집 《신발장》의 수록곡인 이 곡은, 타블로와 빈지노, 버벌진트, 미쓰라진, 송민호, 바비가 벌스를 나눠 맡고 비아이가 훅과 아웃트로를 채웁니다. 여섯 명의 래퍼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향한 악의에 응수하는 구조입니다.

제목부터가 선언입니다. ‘타고난 혐오자’. 어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미워하는 게 아니라, 미워하기 위해 이유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버벌진트의 벌스가 그 지점을 가장 정확히 짚습니다. 그는 헤이터들이 남녀노소 각계각층에 분포되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든 타고난 천박함으로 반응한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라고.

유형별로 분류한다는 것

특히 인상적인 건 버벌진트가 헤이터를 유형별로 나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는 업계 내부 사정에 밝은 척하며 지루하게 긴 글을 쓰는 부류입니다. 두 번째는 잘 풀리지 않는 자신의 삶을 잊기 위해 분노를 날릴 대상을 찾다가, 마침 그 대상이 자신이 된 경우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기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분류 자체가 하나의 반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롱은 상대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뚱그립니다. 이름도 맥락도 지운 채 그저 ‘까야 할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이 곡은 정반대로 합니다. 헤이터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왜 그러는지 분석하고, 유형을 나눕니다. 뭉뚱그리는 자에게 세밀하게 되돌려주는 셈입니다.

두 번째 유형을 두고 귀엽고 딱하다고 말하는 대목은 특히 서늘합니다. 화를 내는 대신 연민을 표현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강한 응수가 됩니다.

어두운 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 작은 돌 하나가 물에 닿기 직전의 순간에 멈춰 있는 장면. 그런데 그 아래로는 이미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넓게 퍼져나가고 있어, 앞서 던져진 무언가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건너편 기슭은 낮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수면에는 흐린 하늘이 옅게 비친다. 던진 사람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되돌려주다

여섯 명의 응수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도 이 곡의 재미입니다.

타블로는 자신을 향한 공격이 오히려 자신의 역설적인 삶과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학력 논란이라는 지독한 시기를 통과한 사람의 문장이라 무게가 다릅니다. 상대의 무익한 열등감이 아무리 붙어봤자 손해는 그쪽이라는 대목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집니다.

빈지노는 조금 더 직설적입니다. 자신의 성공이 외모 덕이었다는 말에 어이없어하고, 피드백은 필요 없다고 못 박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보탠 것이라곤 마우스로 삿대질뿐이라는 표현은 온라인 악플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미쓰라진은 자기 자신을 먼저 깎아내립니다. 친구들은 이미 랩 거물인데 자신은 그 사이에 떠 있는 기름이라고 말이죠. 그러고는 덧붙입니다. 비아냥이 다 들리지만 내성만 늘어 치사량이 높아졌다고. 스스로를 낮추면서 오히려 단단해진 태도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송민호는 자신의 이력을 정면으로 꺼냅니다. 회사 덕이라는 말에 맞서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티브이에 자신이 나오면 끄든가 하라고 응수합니다. 바비는 힙합 신 전체를 겨냥하며, 자신의 말이 자극적이라면 그건 맞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받아칩니다.

그렇다면 이건 풍자인가 조롱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이 곡은 풍자일까요, 조롱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 곡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헤이터라는 현상을 분석하고 그 심리를 해부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풍자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모기 같은 존재라 부르거나 노골적인 욕설을 쏟아내는 대목은 조롱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혼재가 이 곡을 정직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실제로 매일 악의를 받아내는 사람이 완벽하게 이성적인 비판만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곡의 화살은 먼저 던진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것을 되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되돌림에는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익명 뒤에 숨어 던지는 말과, 자기 이름을 걸고 마이크 앞에서 하는 말은 무게가 다릅니다.

악의를 받아내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블랙핑크 ‘STAY’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휴지통에서 살아난 비트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비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투컷이 작곡하고 편곡한 이 비트는 그의 첫 대중적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에픽하이의 히트곡은 대부분 타블로가 만들었고, 투컷은 힙합 색이 진한 마니아 곡들을 주로 작곡해왔습니다.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이 비트는 원래 휴지통에서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타블로에게 처음 들려줬을 때는 별로라며 쳐내진 비트였는데, 나중에 다시 꺼내 들려주니 너무 좋다며 이게 왜 휴지통에 있느냐고 따졌다는 것입니다.

버려질 뻔한 비트가 신에서 손꼽히는 명곡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 곡의 주제와 묘하게 겹칩니다. 남이 내린 평가가 그 대상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이 곡은 8집 트랙 중 가장 오래 음원 차트에 머물렀고, 이후 이 비트로 열린 콘테스트에는 수많은 래퍼들이 참여했습니다. 여러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반복해 쓰였고요.

남이 버린 것이 나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일곱 개의 죄악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이 곡의 설계입니다. 타블로에 따르면 이 곡은 일곱 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참여자마다 하나씩의 죄악이 배정된 구조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헤이터를 비난하는 곡을 만들면서, 정작 자기 자신들에게 죄악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백하고 너희는 죄인이라는 구도가 아닙니다. 우리도 각자의 죄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겠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조롱하는 자와 조롱받는 자를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곡은 단순한 반격 이상의 자리에 섭니다.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이 곡은 통쾌합니다. 여섯 명의 래퍼가 각자의 방식으로 응수하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듣는 사람도 함께 후련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곡을 들으며 한 가지를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받아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에픽하이는 마이크가 있었습니다. 실력이 있었고, 함께 설 동료가 있었고, 무엇보다 말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조롱을 받아도 되돌려줄 방법이 없고, 그저 혼자 삼킬 뿐입니다.

그래서 이 곡의 통쾌함은 동시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풍자와 조롱을 가르는 것은 대상이 사람인가 문제인가, 그리고 내가 그 말의 무게를 지고 있는가입니다.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문제를 겨냥하고 있는가,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말을 얼굴을 마주한 채로도 할 수 있는가.

그 질문 하나를 통과한 말은 풍자가 되고, 통과하지 못한 말은 조롱이 됩니다. 에픽하이는 이 곡에서 조롱을 조롱으로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더 필요한 건 되돌려주는 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던지지 않는 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곡은 벅스 에픽하이 BORN HATER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를 풍자와 조롱의 차이로 읽습니다. 악플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이유, 그리고 이 곡이 되돌려주는 방식의 의미까지 함께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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