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마술과 마법의 차이부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 마술은 일어나고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에도 그런 마술이 있습니다
- 이 곡이 겪은 실제 마술
- 카논이라는 오래된 코드 위에서
- 세대를 건너간 노래
-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마술은 일어나고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술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마법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눈속임이라는 게 마술이라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것,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마법입니다.
그래서 최현우는 마술사고 해리 포터는 마법사입니다.
저는 마법 같은 마술을 하고 싶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겠지만, 저는 마법 같은 마술을 하고 싶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걸 단순한 눈속임으로 만들어내는 것. 말이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도록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흔히 부정 탄다는 말이 있듯,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하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충분히 존재합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것을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말이 씨가 된다고 합니다.
모든 일이 다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만, 또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런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한번 해보려고는 합니다. 마법 같은 마술을 말이죠.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이유 ‘Love poem’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에도 그런 마술이 있습니다
이 곡의 후렴은 하나의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처럼,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는 일. 저 혼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일. 저는 이것이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따지면 모든 것은 닳고 흩어집니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가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를 묻습니다.
기다림이라는 눈속임
그리고 이 질문은 아주 사소한 장면 위에 놓여 있습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이 이 곡에서 화자가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처럼 저 멀리 가는 걸 바라봅니다. 그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이 저물도록 몰랐다고 합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시간 동안 하루가 통째로 지나갑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에 잡히는 트릭도 없고 특별한 장치도 없는데, 시간이 사라져버리니까요.
이 곡이 겪은 실제 마술
그런데 이 곡의 이력을 보면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곡은 1994년 12월 발표된 윤도현 1집에 실렸습니다. 원곡은 그가 솔로 데뷔 전 몸담았던 파주의 포크록 밴드 종이연의 동명 곡으로, 멤버 김현성이 작사하고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곡 버전은 지금 음원으로 들을 수 없습니다. 음반을 따로 구해야만 들을 수 있는 곡이 되었습니다.
한 밴드가 사라지고 그들의 음반도 구하기 어려워졌는데, 그중 한 곡만이 살아남아 30년 넘게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저는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이 곡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곡 자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김광석이 일주일 늦었던 일
또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김현성이 이 곡을 윤도현에게 준 일주일 뒤, 김광석이 이 곡을 부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기가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광석은 아끼던 후배에게 이미 곡이 갔다는 걸 모르고 물어봤다가,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듬해 한 신문 인터뷰에서 신인 가수 윤도현의 이 곡을 추천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차이로 이 곡의 주인이 갈렸다는 것. 그리고 곡을 놓친 사람이 오히려 그 곡을 세상에 추천했다는 것.
저는 이런 일이 말이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카논이라는 오래된 코드 위에서
이 곡의 만듦새에도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 곡은 파헬벨이 작곡한 카논의 반복되는 코드를 바탕으로 멜로디가 변주되는 오스티나토 양식의 곡입니다. 그리고 멜로디가 단순하지만 중첩되어, 돌림노래를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코드 진행 위에, 1990년대의 한국어 가사가 얹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 한 번 놀라운 일을 만듭니다. 카논의 코드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곡의 토대가 되어 계속 살아 있으니까요.
오래된 것 위에 새로운 것을 얹으면, 그 새로운 것도 오래 남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는 일에도 나름의 방법이 있는 셈입니다. 마법이 아니라 마술인 것이죠.
세대를 건너간 노래
이 곡은 발매 당시에도 아는 사람은 아는 곡이었고, 2002년에 역주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방탄소년단의 진이 이 곡을 커버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면서, 해외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오에스티로 배우 김대명이 리메이크했습니다.
심지어 수능특강 현대문학 지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노래가 2018년에 아이돌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고, 2021년에 드라마에 실리고, 교재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하고 물었던 노래가, 실제로 30년을 살아남은 것입니다. 멈춰 선 시간의 감각에 대해서는 태연 ‘Fine’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는 이 곡이 던지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실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이 곡도 혼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니까요. 곡을 쓴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불러준 사람이 있었고, 놓쳤지만 추천해준 사람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 다시 부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여름 소나기를 버틴 꽃도 뿌리를 내릴 흙이 있었기에 버텼고, 눈보라에 우뚝 선 나무도 곁의 다른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 홀로 선다는 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조건인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으려면 그것을 계속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노래로 이어지며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를 다룬 글에서 다뤘습니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저절로 영원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술은 일어납니다. 누군가 곡을 쓰고, 누군가 그것을 부르고, 세월이 흘러 또 누군가 그것을 다시 꺼내는 일. 그렇게 이어 붙이다 보면 3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생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그래서 맞는 말일 것입니다. 씨앗은 저절로 자라지 않지만, 심어두면 언젠가 싹이 트니까요.
그러니 저는 계속 마법 같은 마술을 해보려 합니다. 말이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일 말입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 서서 하루가 저물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어쩌면 그런 마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전곡은 벅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마술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를 마술과 마법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오래 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곡이 30년을 살아남은 이유까지 함께 짚었습니다.
(*본 내용은 나무위키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