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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 해석, 버렸다고 말하는 2개의 얼굴

    지드래곤 삐딱하게 지드래곤 정규 2집 《COUP D'ETAT》 앨범 커버. 강렬한 붉은 배경 위에 검은 물감으로 거칠게 그려진 원형 심벌이 화면 중앙을 채우고 있다. 평화의 상징인 피스마크에서 왼쪽 아래 획 하나가 빠진 형태로, 지드래곤의 상징인 PEACEMINUSONE을 나타낸다. 하단에는 굵은 검은 글씨로 'COUP D'ETAT'가 새겨져 있으며, 손으로 칠한 듯한 붓 자국이 전복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지드래곤 《COUP D’ETAT》 (2013) 앨범 커버 ⓒYG엔터테인먼트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오래 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2.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곡이 있습니다
    3.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는 그 덮개에 관한 곡입니다
    4. 정말 하고 싶었던 말
    5.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 ‘니가 뭔데’
    6.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기
    7.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어두운 방 안에 놓인 낡은 나무 선반을 담은 정물 사진. 엎어진 채 놓인 헌 문고본과 색이 바랜 작은 인형, 차곡히 쌓인 카세트테이프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로는 고운 먼지가 눈에 보일 만큼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선반 한쪽에는 무언가를 최근에 들어낸 듯 먼지가 없는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다.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오후 빛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를 비추며 오래 손대지 않은 시간을 드러낸다.

    오래 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들어도 좋고, 오랜만에 들어도 좋습니다. 오래 봐도 좋고, 오랜만에 봐도 좋습니다.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효율만 따진다면 하나에 그렇게 오래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더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이 계속 나오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다 아는 것을 굳이 다시 꺼냅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압니다

    그리고 그런 최애는 시간이 흘러도 머리가 아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압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잊힙니다. 시험 전날 외운 것들이 그렇고, 한때 열심히 검색해 알아낸 정보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었는데 첫 소절만으로 온몸이 반응하는 경험. 그건 기억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무엇입니다.

    책의 한 문장이나 노래 가사, 혹은 친구, 인형, 어떤 장소 같은 것들은 잊은 것처럼 보여도 전혀 잊은 게 아닙니다. 그냥 먼지가 쌓인 채로 방 속 어딘가에 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먼지는 사라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먼지’라는 상태가 흥미롭습니다.

    먼지가 쌓였다는 건 오래 손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방치이고 무관심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것은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필요 없었다면 진작 내다 버렸을 테니까요.

    그러니 먼지는 사라짐의 증거가 아니라 남겨둠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먼지를 덮개처럼 사용합니다. 아직 못 버렸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조차 감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곡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밝혀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두 곡은 저의 최애곡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던 노래이자, 지금까지도 최고로 꼽는 곡들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몇 번을 들었는지 세어본 적도 없고, 이제는 첫 소절이 나오기 전의 정적만으로도 무슨 곡인지 압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는 것’의 자리에, 저에게는 정확히 이 두 곡이 놓여 있습니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시기도 물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음악이 계속 나왔고, 취향도 조금씩 옮겨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년 만에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저는 이 곡들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사도, 박자도, 심지어 어느 지점에서 숨을 쉬는지까지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먼지가 쌓여 있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평론이면서 동시에 제 방을 한 번 열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는 그 먼지에 관한 곡입니다

    그중 첫 번째 곡인 ‘삐딱하게’는 정확히 그 먼지에 관한 곡입니다. 이 곡은 시작부터 단호합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결국 너는 변했다고, 이유도 진심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오늘 밤은 삐딱하게 있겠다고 선언합니다.

    곡의 구조도 그 태도를 그대로 옮깁니다. 테디와 지드래곤이 함께 만든 이 곡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직설적인 가사가 돋보이며, 마이너한 분위기로 시작해 밝고 경쾌한 머니코드의 후렴구로 바뀝니다.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신나는 코드로 노래하는 셈입니다.

    저는 이 전환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실제로 이렇습니다. 억지로 톤을 올리고, 일부러 밝게 웃습니다.

    침을 뱉는 사람의 속마음

    벌스로 들어가면 그 위장이 더 선명해집니다.

    화자는 버럭버럭 소리치고, 다른 연인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동네 양아치처럼 다리를 일부러 절며 걷습니다. 짙은 아이라인을 긋고 스프레이를 한 통 다 쓰고 가죽 재킷을 걸친 채 인상을 씁니다. 앞으로 더 비뚤어지겠다고, 네가 미안해지도록 하늘에다 침을 뱉겠다고 합니다.

    이 모든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말로 상대를 잊었다면 굳이 상대가 미안해지도록 애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곧 화자는 스스로 실토합니다. 투박해진 말투와 거칠어진 눈빛이 무섭냐고 묻고는, 실은 자기가 두렵다고 말합니다. 돌아가고 싶은데 갈 데가 없고, 사랑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고. 그러니 뭘 어쩌라는 거냐고 말입니다.

    여기서 삐딱함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태도가 아니라 먼지였습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 위에 급하게 덮어둔 것 말입니다.

    가면과 진짜 얼굴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이전에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

    곡의 마지막에 이르면 덮개가 완전히 벗겨집니다.

    오늘 밤은 나를 위해 아무 말도 말아 달라고, 혼자인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오늘 밤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화자는 청합니다. 이 좋은 날, 아름다운 날에 네가 그립다고 말입니다.

    앞서 그렇게 집어치우라고 외치던 사람이 결국 도착한 자리가 이곳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구절 때문에 이 곡이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삐딱함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그저 센 척하는 노래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마지막에 스스로 무너집니다.

    곁에 있어 달라는 청이 늘 작아지는 이유는 블랙핑크 ‘STAY’를 다룬 글에서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금이 간 거울을 마주하고 선 한 사람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 거울에 난 균열이 비친 얼굴을 두 조각으로 어긋나게 갈라놓아, 왼쪽은 차갑고 날카로운 푸른빛에, 오른쪽은 어스름한 주황빛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얼굴이 마치 서로 다른 두 사람처럼 보인다. 인물의 실제 얼굴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텅 빈 벽과 가구 없는 공간이 긴장감을 더한다.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 ‘니가 뭔데’

    같은 앨범에 실린 ‘니가 뭔데’는 그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하는 곡처럼 들립니다.

    이 곡의 화자는 처음부터 위장을 포기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하나도 좋지 않다고, 왜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해놓고는, 곧바로 자꾸 화가 난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렇게 인정합니다. 구차하고 찌질하다고. 나 원래 찌질하다고 말입니다.

    ‘삐딱하게’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인상을 썼다면, 이 곡은 그 재킷을 벗어던지고 맨얼굴을 보여줍니다. 사줄 수 없었던 비싼 가방과 구두 대신 눈물 젖은 베개를 샀다는 대목이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 커플이 요즘 안 좋다더라고 일러바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서글픕니다.

    어쿠스틱이 벗겨낸 것

    두 곡의 사운드 차이도 그 대비를 뒷받침합니다.

    ‘삐딱하게’가 밴드의 힘으로 감정을 위로 밀어 올렸다면, ‘니가 뭔데’는 어쿠스틱한 스타일로 힘을 뺍니다. 펑키한 보컬의 음색과 탄탄한 밴드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미학적 미덕까지 충실히 갖추었지만, 그 안의 화자는 훨씬 무방비합니다.

    후렴의 ‘두 두 두’ 하는 흥얼거림도 그렇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그냥 소리로 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났다가 그리워했다가 다시 미워하는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얹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곡을 나란히 들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전모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먼지를 덮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그 먼지를 털어낸 얼굴입니다.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기

    두 곡이 실린 정규 2집 《COUP D’ETAT》는 2013년 9월에 발매되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정규 앨범이었고, 앨범을 둘로 나누어 파트별로 순차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미시 엘리엇과 디플로를 비롯한 해외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의 소개글입니다. 지향하는 바가 정확한 아티스트는 진화를 거듭해도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이어집니다.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고 지키면서 진화하기.

    저는 이 문장이 앞선 이야기와 정확히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라는 제목은 전복을 뜻하지만, 정작 이 앨범이 말하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앨범 아트로 쓰인 PEACEMINUSONE이라는 상징도 그렇습니다. 하나가 빠진 평화. 무언가가 결여된 채로도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 말입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결국 두 곡의 화자는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잊겠다고 선언했지만 잊지 못했고, 괜찮은 척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실패가 이 곡들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봅니다. 정말로 잊을 수 있었다면 이런 노래는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봐도 좋고 오랜만에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아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버렸다고 선언해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먼지가 쌓인 채로, 방 속 어딘가에 고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문득 오래된 무언가가 떠올랐다면, 그건 당신이 아직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삐딱하게 굴어봐도 소용없습니다. 마음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이 두 곡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전곡은 벅스 COUP D’ETAT 앨범 페이지 지드래곤 삐딱하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방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를 제 인생곡으로 다시 읽습니다. 잊은 줄 알았지만 먼지만 쌓여 있었던 것, 니가 뭔데와 나란히 본 두 개의 얼굴까지 짚었습니다.

  • 지드래곤 무제 가사 해석, 2014라는 숫자만 남은 노래

    지드래곤 미니앨범 《권지용》의 USB 앨범 이미지. 밝은 회백색 배경 한가운데에 짙은 붉은색 USB 메모리 하나가 놓여 있고, 표면에는 손으로 급하게 갈겨쓴 듯한 붉은 필기체로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져 있다. 은색 단자가 그대로 드러난 낡고 긁힌 몸체는, 화려한 무대 위의 이름이 아닌 한 사람의 신상 정보만을 남겨둔 앨범의 콘셉트를 그대로 드러낸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
    지드래곤 《권지용》 (2017) USB 앨범 ⓒYG엔터테인먼트

    지드래곤 무제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전봇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스쳐 지나가는 시멘트 기둥에 대하여

    가장 큰 피해는 빛이 꺼지는 것입니다

    피아노 한 대만 남은 노래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제목을 붙이지 못한 이유

    뒤돌아 서고 나서야 오는 후회

    꿈에서라도, 다음 생에라도

    과거의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라는 해석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본 시점의 사진. 텅 빈 2차선 도로가 지평선까지 곧게 뻗어 있고, 그 옆으로 콘크리트 전봇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전깃줄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기둥과 기둥을 잇고, 가까운 기둥은 흐릿하게 번져 있다. 마른 겨울 들판과 옅은 노을빛 하늘이 배경을 채우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다.

    스쳐 지나가는 시멘트 기둥에 대하여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나무나 건물이 아닌 시멘트 기둥 같은 것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갑니다. 흔히 말하는 전봇대입니다.

    전봇대는 전기를 가정 곳곳에 보급하는 전깃줄의 역할과 통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여러 개의 선에, 받침대와 지지대 노릇을 합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그 기둥을 우리는 좀처럼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너무 흔하고, 너무 당연하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쓰러지면 무엇이 무너지는가

    그런 전봇대가 하나라도 쓰러져서 전깃줄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나 통신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 일대는 순식간에 멈춰 섭니다.

    더 크게 보자면 송전탑이, 아니면 발전소 하나가 파괴된다면 어떨까요. 전봇대보다 훨씬 넓고 깊은 피해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일수록 사라졌을 때의 공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있을 때는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크기가 드러납니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불이 꺼진 실내를 담은 사진. 천장에 매달린 유리 펜던트 조명은 켜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잠겨 있고, 커튼 사이로 스며든 푸른 달빛만이 마룻바닥 위에 가느다란 띠를 그리며 떨어진다. 소파와 탁자는 형체만 겨우 남은 실루엣으로 물러나 있고, 방의 모서리는 완전한 검정 속으로 사라진다. 방향을 잃은 어둠의 감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미지다.

    가장 큰 피해는 빛이 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어떤 피해가 일어날까요.

    모든 전자기기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피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등을 켜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라고 봅니다. 빛이 꺼진다는 것 말입니다.

    기기는 못 쓰면 불편할 뿐입니다. 그러나 빛이 사라지면 사람은 방향을 잃습니다. 방 안의 사물이 어디 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심지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그 순간의 감각을 소리로 옮긴다면 어떤 소리일까요. 저는 피아노의 높은 음이 끊이지 않고 연속해서 울리는 듯한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낮고 두꺼운 소리가 아니라, 가늘고 높고 서늘한 소리.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떨리는 그런 소리 말입니다.

    어둡고 텅 빈 공간 한가운데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홀로 놓여 있는 사진. 천장에서 내려온 가느다란 빛줄기가 열린 건반 위로만 떨어지고, 나머지 몸체는 그림자 속으로 물러난다. 빛 사이로 미세한 먼지가 천천히 떠다니고, 세월에 긁힌 나무 표면이 드러난다. 연주자도 악보도 없는 이 장면은 모든 것이 꺼진 뒤 마지막까지 남은 소리를 상징한다.

    피아노 한 대만 남은 노래

    지드래곤의 ‘무제(無題)’가 정확히 그런 곡입니다.

    2017년 6월 8일 발매된 미니앨범 《권지용》의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오직 피아노로만 연주된 선율과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곡입니다. 드럼도, 베이스도, 화려한 편곡도 없습니다. 곡 전체에 남은 것은 건반과 사람의 목소리뿐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강렬한 힙합 비트의 다른 곡으로 발표되어 있었는데, 발매를 앞두고 ‘무제’로 변경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조용한 곡이 앨범의 얼굴이 된 셈입니다.

    앨범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앨범은 G-DRAGON의 화려한 모습을 잠시 접어두고, 인간 권지용으로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입니다. 무대 위에서 늘 가장 화려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건반 앞에 앉았다는 것. 그 대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제목을 붙이지 못한 이유

    제목부터가 이 곡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무제’, 즉 제목이 없다는 뜻입니다.

    뒤에 붙은 2014라는 숫자는 이 곡이 2014년에 녹음되었기 때문에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곡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삼 년이 걸린 셈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인상 깊습니다. 제목을 붙인다는 것은 그 감정에 이름을 부여하고 정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끝내 이름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미안함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그리움이라고 하기엔 넘치고,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이미 자격을 잃어버린 감정.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은 그것이 만들어진 연도뿐입니다.

    감정의 이름 대신 날짜만 붙여둔 노래. 그것만으로도 이 곡이 어떤 상태에서 나왔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뒤돌아 서고 나서야 오는 후회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헤어진 뒤, 그를 그리워하는 남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상대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그 마음도 압니다. 알면서도 붙잡는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처음부터 이기적인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는 인정합니다. 상대가 떠나던 날에도 모진 말로 그를 울렸고, 등을 돌리고 나서야 후회했다고. 저는 이 순서가 이 곡에서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회는 늘 한 박자 늦게 옵니다. 전봇대가 쓰러지고 나서야 전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용서받는 것보다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쉬울지 모른다는 대목에서는, 죄책감의 크기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 흔한 거짓말조차 하지 못하면서, 돌아오기만을 기도한다고 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곡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온 사람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한 곡의 길이만큼이라도 되살려보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빅뱅 ‘LAST DANCE’를 다루며 쓴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곡이 마지막 춤을 청했다면, 이 곡은 그마저도 청하지 못합니다. 상대는 이미 떠났고, 화자에게는 노래를 부르는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꿈에서라도, 다음 생에라도

    후렴에서 화자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딱 한 번만 그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

    그러나 그 소망은 현실에 놓이지 못합니다. 꿈에서라도 만나 다시 사랑하기를, 하고 조건을 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음 생에라도 다시 만나 예전 그대로 사랑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꿈과 다음 생. 둘 다 이 세계에는 없는 시간입니다. 이미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화자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 불가능한 시간에 소망을 걸어둡니다.

    저는 이것이 빛이 완전히 꺼진 방에서 사람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은 스위치를 계속 눌러봅니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손이 그리로 갑니다. 이 곡의 후렴이 꼭 그 손짓 같습니다.

    떠난 사람의 흔적 안에서 하루를 반복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라는 해석

    이 곡을 두고, 서른이 된 그가 과거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을 가사로 옮긴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곡은 또 다르게 들립니다.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상대가 연인이 아니라 예전의 나 자신이라면, 모진 말로 울린 것도, 상처를 남긴 것도 결국 스스로에게 한 일이 됩니다.

    무대 위의 페르소나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지난 사랑을 회상한다는 점에서, 이런 독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의 영역이므로 하나의 감상 방식으로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핵심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이미 지나왔다는 자각, 그리고 그 자각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일로 사라진 세계를 잠시 되살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니 ‘twin’을 다룬 글에서 쓴 적이 있습니다. 세 곡 모두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그래서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창밖으로 스쳐 가던 전봇대를 떠올립니다.

    너무 흔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것. 그러나 하나가 쓰러지면 온 동네의 불이 꺼지는 것.

    우리 곁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있을 때는 그 크기가 보이지 않다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사람을 통해 흐르고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무제’는 그 늦음에 대한 노래입니다. 빛이 모두 꺼진 방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피아노의 높은 음 하나로 부르는 노래.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러니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불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쯤 올려다보아도 좋겠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저 기둥들처럼, 지금 나를 밝히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무제 페이지 지드래곤 무제 가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불빛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를 정전과 꺼진 빛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피아노 한 대만 남은 편곡과 제목을 붙이지 못한 이유, 꿈과 다음 생에 건 소망까지 함께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