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 – 분노로 뒤돌아보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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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Oasis)의 2집 정규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커버. 런던 소호의 버윅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두 인물이 엇갈려 지나가는 순간이 흐릿하게 포착되어 있다. 물기 어린 거리와 흐린 하늘, 그리고 초점이 나간 인물들은 어디론가 향하는 청춘의 불확실함과 몽롱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Don't Look Back in Anger'가 수록된, 브릿팝을 대표하는 명반의 상징적 이미지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산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독하게 신경 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무서울 만큼. 그래서 관계에 아주 작은 흠이라도 보이면 불안해지고, ‘저 사람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관계가 이어지는 매 순간마다 우리는 긴장하고,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내가 한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를 곱씹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혼자 집에 돌아오면,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들고 더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이트를 만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좋은 관계란 몇 명과의 깊고 오랜 관계면 충분하다.

돌아보니 나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말들을 고스란히 나의 의식에 담아 사람들의 시선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정작 힘들어하는 나의 내면은 조금도 돌보지 않은 채로. 그래서 이제는 나도 챙기려 한다. 남의 시선에 조금은 덜 신경 쓰기로 마음먹었다.

‘화내면서 뒤돌아보지 마’

흥미롭게도, 오아시스(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곡처럼 들린다.

노엘 갤러거가 쓴 이 곡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라는 나직한 권유로 문을 연다. 네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말했던 그곳에서, 지금껏 봐 왔던 것들이 조금씩 바래져 간다고. 그리고 화자는 선언한다. 나는 침대 위에서 혁명을 시작하겠다고. 누군가 나를 두고 잘난 척한다고 비웃었기에, 오히려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런 표정 좀 짓지 말라며 건네는 한마디다. 넌 결코 내 마음을 태워버릴 수 없을 거라고. 이것은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 나를 무너뜨리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단단한 다짐이다. 앞서 내가 ‘남의 시선에 덜 신경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이 곡의 태도는 정확히 맞닿아 있다.

침대에서 시작하는 혁명

거창한 무대나 광장이 아니라, 가장 사적이고 지친 몸을 누이는 침대에서. 세상의 시선에 하루 종일 시달리다 돌아와 무너지듯 눕는 바로 그 자리에서, 화자는 오히려 반란을 시작한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공격적인 혁명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조용한 혁명이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던 나를 놓아주고, 지친 내면을 먼저 돌보기로 하는 것. 그러니 이 곡이 반복해서 말하는 ‘화내며 뒤돌아보지 말라’는 후렴은, 지나간 관계와 상처를 원망하며 곱씹는 대신 그것을 담담히 흘려보내라는 다정한 처방처럼 들린다.

Sally라는 이름, 그리고 어떤 이별

이 곡의 후렴에는 ‘Sally’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샐리는 기다릴 수 있다고,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스쳐 지나갈 때 그녀의 영혼이 사라져가도 화내면서 돌아보지는 말라고.

나는 이 대목을 한 편의 이별 이야기로 읽었다. 그는 그녀를 마음속까지 이해했고, 그녀에게 완벽한 남자로 보이고 싶었으며, 무르익은 사랑 속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녀가 보인 무수한 표정들도 그에게는 단 하나의 흠집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별했다.

그런데 그는 절대 그리워하거나 외로워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그가 떠나는 그녀를 불렀을 때, 그녀는 화를 내며 끝이라고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분노로 관계를 끝맺지 않은 이별. 그래서 ‘Sally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를 원망으로 태워버리지 않았기에, 그 관계는 끝나고도 어딘가에 온전히 남는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운명

여기서 이 곡은 사랑에 대한 근사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당신에게도, 내가 기꺼이 ‘Sally’가 되어주어도 충분한 사람이 있었는가.

꼭 다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 설령 지금은 멀어졌더라도 분노가 아니라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 아니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운명이 아닐까. 분노로 돌아서지 않는 이별이 가능한 관계란, 애초에 서로를 깊이 존중했던 사이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사는 오묘한 구석이 가득해서, 샐리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이런 노래는 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정해진 정답이 없기에, 저마다 자신의 이별과 자신의 샐리를 이 노래 위에 겹쳐 볼 수 있다.

오늘만은, 뒤돌아보지 않기로

이 노래는 분노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선다. 곡은 상처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상처를 분노로 되새기며 과거에 갇히는 대신, 담담히 앞으로 걸어가자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에 지쳐 나를 잃어가던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사람에게도 이 곡의 처방은 같다. 지나간 것을 원망으로 붙들지 말 것. 나를 태워버리려는 것들로부터 내 마음을 지킬 것. 그리고 나를 먼저 챙길 것.

그 모든 다짐이 버거운 날에도, 이 노래는 마지막에 가장 인간적인 한 줄을 남긴다. 적어도 오늘만은, 분노로 뒤돌아보지 말자고. 완벽하게 초연해지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 하루만 그렇게 살아내면, 그 하루가 쌓여 언젠가 우리는 정말로 뒤돌아보지 않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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