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 착각의 방이라는 이름
- 자격조차 없었다는 고백
-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일상
- 같은 방에 서 있어도 다르게 보입니다
- 그럴 땐 누가 날 안아줄지
- 그럼에도 우리를 지탱하는 것
-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나와 너가 서로의 전부라고 느껴질 때 이런 말이 나온다면, 아마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거나 서로를 채워주는 동료 혹은 친구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는 자신들의 관계가 평생, 평생까지는 아니어도 기약 없는 시간이 흐르도록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계도 결국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결국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그저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한마디 말과 조금의 행동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의 말은 튕겨 나가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은 그대로 꽂히니까요.
그러니 저는 그런 관계를 너무 맹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언젠가는 죽는 사람이고, 하나의 실수로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 있는 것이 관계입니다. 그러니 오래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저 지금 이 관계가 좋다면 좋은 것입니다.

착각의 방이라는 이름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를 앨범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 있습니다.
슈프림팀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영준, 작곡가 김건우가 함께 만든 합작 앨범 《Ames Room》입니다. 2010년 10월 발매되었고, 타이틀곡이 ‘그땐 그땐 그땐’입니다.
에임스 방은 착시를 일으키는 방의 이름입니다. 실제로는 비뚤어진 사다리꼴인데 정면에서 보면 평범한 직사각형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왼쪽에 서면 거인처럼, 오른쪽에 서면 난쟁이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앨범 소개는 그 이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의 영속성을 믿는 착각의 방에 갇혀, 끝없는 행복과 고통의 연결 고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앞서 제가 관계를 맹신하지 말자고 했던 이야기가, 이 앨범에서는 ‘착각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리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영원히로 시작해 왜로 끝나는 사랑
앨범 소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영원히라는 말로 시작해 왜로 허무하게 끝나기만 하는 우리의 사랑이라고, 어느덧 그땐 그땐으로 기억되지만 아직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사랑의 추억과 후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원히로 시작해서 왜로 끝나고, 결국 그땐으로 기억되는 것. 저는 이 세 단어의 배열이 관계의 생애를 정확히 압축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앨범에는 ‘왜’와 ‘그땐 그땐 그땐’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앨범의 수록 순서와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서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배치한 셈인데, 그것이 이별한 사람의 시간 감각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끝난 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회상하지 않으니까요.
자격조차 없었다는 고백
1절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그 지겨운 말로 억지로 상대를 붙잡았다고, 그런 순간을 모면하는 법까지 연기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오히려 차분하게 떠났다고 합니다.
저는 이 ‘차분하게’라는 부사가 이 곡에서 가장 아픈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화를 낸다는 건 아직 기대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차분하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났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고백은 더 정직합니다. 그때는 지쳐 있었고, 상대를 안아줄 자격조차 없었다고. 사랑보다 안정감이 더 커서 마음만 아슬하게 걸쳐 있었을 뿐이라고.
여기서 착각의 방이 드러납니다. 관계가 이미 사랑이 아니라 안정감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화자는 그것을 관계가 계속될 근거로 여겼던 것입니다.
상처가 되기 싫었다는 말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아름다운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 싫었고, 나쁜 놈으로 남기 싫었다고.
이 말은 다정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자기 보호에 가깝습니다.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앨범 소개에도 비슷한 지적이 있습니다. 누구의 탓도 아닌 이기적인 내 욕심에 의한 결말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오늘도 스스로를 마치 피해자인 양 자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결국 되돌릴 방법 하나 생각해내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는 마지막 문장이 뼈아프게 남습니다.
관계에서 가면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일상
2절은 이별 이후의 시간을 다룹니다.
깨끗이 잊는 법과 상처가 다 아문 척하는 법을 배우고, 이제는 새로운 만남을 시작해도 되는 때라고 말은 하지만 마음이 같지 않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어차피 사랑이란 게 애들 장난 같은 거라 말하며 자신을 억지로 위로한다고, 그리고 이 꼴에는 그런 구차함도 필요하다고 인정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다음입니다. 똑같은 곳에서 일하고 똑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지내지만, 딱 한 가지가 다르다고 합니다.
일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 안이 텅 비어버린 상태. 그래서 화자는 그 빈자리를 채울 변명거리나 몰두할 일을 찾습니다.
앨범 소개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과거의 일시적 어려움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같은 방에 서 있어도 다르게 보입니다
여기서 착각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에임스 방의 착시가 무서운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착시 속에 있다는 걸 절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보는 각도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니까요.
한 사람은 그 관계를 영원이라고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끝났다고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사랑이라 불렀고, 다른 한 사람은 안정감이라 불렀습니다. 같은 관계인데 서 있는 자리가 달랐던 것입니다.
앞서 저는 관계를 맹신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맹신이란 결국 자기가 보고 있는 각도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는 일이니까요.
그럴 땐 누가 날 안아줄지
브리지에서 이 곡은 가장 솔직해집니다.
내가 똑바로 서 있지 못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 그럴 땐 누가 날 안아줄지 모르겠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이 문장이 반복될 때, 이 곡이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화자가 아쉬워하는 건 사랑 그 자체라기보다, 무너져도 받아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합니다. 견뎌내는 것도, 지우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변한 게 하나 없다고. 이 문장이 계속 반복되며 곡이 끝납니다.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 앞에 선 사람의 결론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의 마음에 대해서는 빅뱅 ‘IF YOU’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지탱하는 것
그런데 앨범 소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붙여둡니다.
혼란과 슬픔이 가득한 공간 안에서 결국 우리를 지탱해 주는 희망은 역시 사랑일 것이라고.
저는 이 문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의 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 방을 나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관계를 맹신하지 말자는 말은 사랑하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할 거라는 전제 없이도 지금을 충분히 아낄 수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이 곡은 발매 후 각종 시상식의 힙합 부문을 휩쓸며 이들의 전성기를 알렸습니다. 연간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올랐고, 지금까지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곡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뒤 이 팀은 해체했습니다. 각자의 길을 걸으며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함께였던 시기는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굳이 안타깝게만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곡의 메시지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나가던 시기에 만든 곡의 제목이 ‘그땐’이었다는 사실.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이미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맹신하는 대신, 지금 이 관계가 좋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려는 마음에 대해서는 빅뱅 ‘LAST DANCE’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언젠가 ‘그땐’이 되어버릴 시간이라면, 지금 한마디를 조금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다정한 편이 낫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되돌릴 방법을 생각하면 이미 늦으니까요.
전곡은 벅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그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가사를 관계의 유한함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사이가 무너지는 이유, 그리고 앨범이 말하는 착각의 방이 무엇인지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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