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gladhouse

  •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 해석, 조롱과 풍자를 가르는 1가지

    에픽하이 Born Hater 에픽하이 정규 8집 《신발장》 앨범 커버. 연한 민트빛 배경 위에 수채화 느낌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화면 상단에 한 사람이 앉아 발레 토슈즈의 리본을 묶고 있는 다리와 손만이 담겨 있다. 분홍빛 슈즈와 늘어진 리본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은 프레임 밖으로 잘려 보이지 않는다. 아래쪽에는 손글씨체 흰 글씨로 '에픽하이 신발장'이 적혀 있다.
    에픽하이 《신발장》 (2014) 앨범 커버 ⓒYG엔터테인먼트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풍자와 조롱의 차이부터 짚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풍자와 조롱은 한 끗 차이입니다
    2.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는 조롱을 조롱으로 돌려줍니다
    3. 각자의 방식으로 되돌려주다
    4. 그렇다면 이건 풍자인가 조롱인가
    5. 휴지통에서 살아난 비트
    6.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불이 꺼진 방 안, 화면 밖 모니터에서 새어 나온 차가운 푸른빛만이 컴퓨터 키보드 위로 떨어지는 장면. 오래 사용해 자판의 글자가 닳고 표면이 희미하게 반들거린다. 화면도, 손도, 사람도 보이지 않고 오직 키보드와 그 위에 내려앉은 빛만 남아 있으며, 그 너머의 공간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얼굴 없이 말이 던져지는 자리를 서늘하게 담아낸 이미지다.

    풍자와 조롱은 한 끗 차이입니다

    풍자는 사회의 문제를 웃음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반면 조롱은 사회의 문제를 웃음으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비판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라면, 비난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풍자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조롱은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을 때립니다.

    겉보기에 둘은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웃음을 동반하고, 둘 다 누군가를 겨냥합니다. 그러나 향하는 곳이 다릅니다. 풍자는 구조를 향하고, 조롱은 사람을 향합니다.

    감정은 이성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훨씬 먼저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 그런 조롱을 마주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기 파괴로 이어집니다. 나중에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도, 이미 감정이 먼저 무너진 뒤이기 때문입니다.

    악플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감능력이라는 문제

    악플러들은 대체로 공감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적는 글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키보드 앞에서는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표정도, 목소리도, 그 말을 읽고 난 뒤의 침묵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던진 돌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무지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몰랐다고 해서 맞은 사람의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는 조롱을 조롱으로 돌려줍니다

    2014년 10월 21일 발매된 정규 8집 《신발장》의 수록곡인 이 곡은, 타블로와 빈지노, 버벌진트, 미쓰라진, 송민호, 바비가 벌스를 나눠 맡고 비아이가 훅과 아웃트로를 채웁니다. 여섯 명의 래퍼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향한 악의에 응수하는 구조입니다.

    제목부터가 선언입니다. ‘타고난 혐오자’. 어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미워하는 게 아니라, 미워하기 위해 이유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버벌진트의 벌스가 그 지점을 가장 정확히 짚습니다. 그는 헤이터들이 남녀노소 각계각층에 분포되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든 타고난 천박함으로 반응한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라고.

    유형별로 분류한다는 것

    특히 인상적인 건 버벌진트가 헤이터를 유형별로 나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는 업계 내부 사정에 밝은 척하며 지루하게 긴 글을 쓰는 부류입니다. 두 번째는 잘 풀리지 않는 자신의 삶을 잊기 위해 분노를 날릴 대상을 찾다가, 마침 그 대상이 자신이 된 경우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기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분류 자체가 하나의 반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롱은 상대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뚱그립니다. 이름도 맥락도 지운 채 그저 ‘까야 할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이 곡은 정반대로 합니다. 헤이터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왜 그러는지 분석하고, 유형을 나눕니다. 뭉뚱그리는 자에게 세밀하게 되돌려주는 셈입니다.

    두 번째 유형을 두고 귀엽고 딱하다고 말하는 대목은 특히 서늘합니다. 화를 내는 대신 연민을 표현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강한 응수가 됩니다.

    어두운 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 작은 돌 하나가 물에 닿기 직전의 순간에 멈춰 있는 장면. 그런데 그 아래로는 이미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넓게 퍼져나가고 있어, 앞서 던져진 무언가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건너편 기슭은 낮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수면에는 흐린 하늘이 옅게 비친다. 던진 사람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되돌려주다

    여섯 명의 응수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도 이 곡의 재미입니다.

    타블로는 자신을 향한 공격이 오히려 자신의 역설적인 삶과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학력 논란이라는 지독한 시기를 통과한 사람의 문장이라 무게가 다릅니다. 상대의 무익한 열등감이 아무리 붙어봤자 손해는 그쪽이라는 대목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집니다.

    빈지노는 조금 더 직설적입니다. 자신의 성공이 외모 덕이었다는 말에 어이없어하고, 피드백은 필요 없다고 못 박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보탠 것이라곤 마우스로 삿대질뿐이라는 표현은 온라인 악플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미쓰라진은 자기 자신을 먼저 깎아내립니다. 친구들은 이미 랩 거물인데 자신은 그 사이에 떠 있는 기름이라고 말이죠. 그러고는 덧붙입니다. 비아냥이 다 들리지만 내성만 늘어 치사량이 높아졌다고. 스스로를 낮추면서 오히려 단단해진 태도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송민호는 자신의 이력을 정면으로 꺼냅니다. 회사 덕이라는 말에 맞서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티브이에 자신이 나오면 끄든가 하라고 응수합니다. 바비는 힙합 신 전체를 겨냥하며, 자신의 말이 자극적이라면 그건 맞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받아칩니다.

    그렇다면 이건 풍자인가 조롱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이 곡은 풍자일까요, 조롱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 곡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헤이터라는 현상을 분석하고 그 심리를 해부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풍자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모기 같은 존재라 부르거나 노골적인 욕설을 쏟아내는 대목은 조롱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혼재가 이 곡을 정직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실제로 매일 악의를 받아내는 사람이 완벽하게 이성적인 비판만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곡의 화살은 먼저 던진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것을 되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되돌림에는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익명 뒤에 숨어 던지는 말과, 자기 이름을 걸고 마이크 앞에서 하는 말은 무게가 다릅니다.

    악의를 받아내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블랙핑크 ‘STAY’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휴지통에서 살아난 비트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비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투컷이 작곡하고 편곡한 이 비트는 그의 첫 대중적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에픽하이의 히트곡은 대부분 타블로가 만들었고, 투컷은 힙합 색이 진한 마니아 곡들을 주로 작곡해왔습니다.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이 비트는 원래 휴지통에서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타블로에게 처음 들려줬을 때는 별로라며 쳐내진 비트였는데, 나중에 다시 꺼내 들려주니 너무 좋다며 이게 왜 휴지통에 있느냐고 따졌다는 것입니다.

    버려질 뻔한 비트가 신에서 손꼽히는 명곡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 곡의 주제와 묘하게 겹칩니다. 남이 내린 평가가 그 대상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이 곡은 8집 트랙 중 가장 오래 음원 차트에 머물렀고, 이후 이 비트로 열린 콘테스트에는 수많은 래퍼들이 참여했습니다. 여러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반복해 쓰였고요.

    남이 버린 것이 나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일곱 개의 죄악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이 곡의 설계입니다. 타블로에 따르면 이 곡은 일곱 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참여자마다 하나씩의 죄악이 배정된 구조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헤이터를 비난하는 곡을 만들면서, 정작 자기 자신들에게 죄악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백하고 너희는 죄인이라는 구도가 아닙니다. 우리도 각자의 죄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겠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조롱하는 자와 조롱받는 자를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곡은 단순한 반격 이상의 자리에 섭니다.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이 곡은 통쾌합니다. 여섯 명의 래퍼가 각자의 방식으로 응수하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듣는 사람도 함께 후련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곡을 들으며 한 가지를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받아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에픽하이는 마이크가 있었습니다. 실력이 있었고, 함께 설 동료가 있었고, 무엇보다 말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조롱을 받아도 되돌려줄 방법이 없고, 그저 혼자 삼킬 뿐입니다.

    그래서 이 곡의 통쾌함은 동시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풍자와 조롱을 가르는 것은 대상이 사람인가 문제인가, 그리고 내가 그 말의 무게를 지고 있는가입니다.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문제를 겨냥하고 있는가,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말을 얼굴을 마주한 채로도 할 수 있는가.

    그 질문 하나를 통과한 말은 풍자가 되고, 통과하지 못한 말은 조롱이 됩니다. 에픽하이는 이 곡에서 조롱을 조롱으로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더 필요한 건 되돌려주는 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던지지 않는 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곡은 벅스 에픽하이 BORN HATER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픽하이 Born Hater 가사를 풍자와 조롱의 차이로 읽습니다. 악플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이유, 그리고 이 곡이 되돌려주는 방식의 의미까지 함께 짚었습니다.

  •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 해석, 답은 2개가 아니다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wave to earth의 앨범 《bad paces》 커버. 화면 왼쪽에는 흰 구름이 번진 푸른 하늘이, 오른쪽에는 완만한 곡선으로 나뉜 짙은 검정 영역이 자리해 밝음과 어둠이 정확히 절반씩 맞붙어 있다. 필름 특유의 거친 입자감이 전체에 깔려 있으며, 오른쪽 위에는 둥근 서체의 흰 글씨로 'bad paces'가 적혀 있다. 하늘과 어둠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wave to earth 《bad paces》 앨범 커버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한때’라는 시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하늘이 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2. 모두에게는 ‘한때’가 있습니다
    3.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는 그 재판정을 봅니다
    4. 그게 전부는 아니야
    5. 답을 이미 쥐고 있는 사람
    6. 소리가 판단을 내려놓게 합니다
    7.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하늘이 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파란 하늘을 우러러만 보다가, 문득 그 하늘이 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닙니다. 숨을 삼키지 말고 얇고 길게 뱉어내는, 순간의 본능적인 작은 힘 하나면 충분합니다.

    저는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대개 그런 작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통째로 뒤바꾸는 결단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숨을 한 번 더 내쉬는 정도의 힘 말입니다.

    모두에게는 ‘한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저마다 ‘한때’라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는 눈부시게 행복했던 순간을, 또 어떤 이는 숨조차 쉬기 버거웠던 순간을 ‘한때’라는 상자 속에 담아 오랫동안 간직합니다. 그 상자는 좀처럼 열리지 않다가도, 어떤 날에는 아무 예고 없이 저 혼자 열립니다.

    전인권은 ‘걱정 말아요 그대’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한때’의 행복은 우리를 지탱하는 추억이 되고, 지독했던 절망은 성장을 위한 단단한 거름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때의 아픔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 정리가 모두에게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상처와 현실의 무게에 눌린 채, 스스로를 점점 더 좁은 자리로 몰아세웁니다. 삶이 바닥을 칠 때 자기 자신을 가혹한 심판대 위에 세우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안타깝습니다. 바깥에서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줘도, 정작 본인이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있으면 그 말은 닿지 않습니다. 가장 엄격한 재판관이 자기 안에 앉아 있는 셈입니다.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는 그 재판정을 봅니다

    이 곡은 정확히 그 재판정을 들여다보는 곡입니다.

    천국과 지옥. 존재의 유무를 떠나, 우리는 이 둘을 아주 단순하게 해석합니다. 천국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가는 곳, 지옥은 나쁜 죄를 지어서 가는 곳이라고 말입니다.

    이 곡은 우리가 사후 세계를 이해하는 그 이분법적 사고를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이 사후 세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짚습니다.

    벼랑 끝에 선 이들은 삶의 결과 역시 두 가지뿐이라고 착각합니다. 성공과 행복이 아니면 실패와 좌절. 그 사이의 무수한 상태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두 개의 칸만 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 칸에 속하는지 판정하려 합니다.

    판단해야만 하는가

    곡은 아주 조용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당신은 판단해야만 하느냐고.

    삶이 무너져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신념이라 부른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그러고는 되묻습니다. 그게 정말 당신의 솔직한 대답이냐고.

    저는 이 질문이 이 곡의 첫 번째 열쇠라고 봅니다.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가혹한 판결을 우리는 종종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신념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그건 신념이 아니라, 지쳐서 내려놓은 자기 진단일 뿐입니다.

    이어지는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하려고 애쓰는데도 삶이 자꾸 가라앉을 때, 사람들은 더 강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화자는 솔직하게 덧붙입니다. 왜 그것이 답처럼 느껴지지 않느냐고.

    더 노력하라는 조언이 답이 되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곡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서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야

    후렴에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말이 나른하게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 메아리 사이로 이 곡은 단호하면서도 다정한 어조로 덧붙입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그것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고.

    저는 이 한마디가 이 곡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답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다양한 답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이유는 대개 답이 하나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아니면 끝이라고, 지금 실패하면 전부 무너진다고.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선택지가 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라면 말입니다.

    답을 이미 쥐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 곡은 그 답이 어디 있는지도 알려줍니다.

    살아 있으라고, 당신이 이미 답을 쥐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처럼 순수한 것이 곧 길이라고. 그리고 천국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결국 가장 완벽한 해답을 쥐고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행운도,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도 아닌 ‘당신 자신’입니다. 밖에서 정답을 찾으려 헤매는 동안, 정작 그것은 계속 자기 손안에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이 말이 모든 상황에 만능은 아닐 것입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이 곡이 말하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 자신을 심판하는 일만은 멈춰도 된다는 것. 그 판결권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답의 개수가 늘어난다는 것 말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특히 ‘아이처럼 순수하게’라는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채점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정하지 않고, 그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잡니다. 어제의 실수를 오늘까지 끌고 오지도 않습니다.

    정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이 힘든 ‘한때’가 지나가기를 묵묵히 버텨내는 것. 복잡한 세상을 향한 심판을 잠시 거둔 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지금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곧 나를 살게 하는 답이자 인생의 교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룬 글에서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소리가 판단을 내려놓게 합니다

    이 곡의 사운드도 그 태도를 그대로 옮깁니다.

    같은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는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서 나직이 되풀이할 뿐입니다. 설득하려 들지 않고, 몰아붙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든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판단하지 않고 함께 있어 주는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곡의 나른한 반복은 정확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곁에 있어 주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파란 하늘을 우러러만 보다가 문득 그 하늘이 되고 싶어지는 순간. 그때 필요한 건 숨을 얇고 길게 뱉는 작은 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곡이 말하는 것도 결국 그만큼의 힘인 것 같습니다. 인생을 통째로 바꾸라는 게 아니라, 나에게 내리려던 판결을 잠시 미뤄두라는 것.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 속하는지 판정하는 대신, 그냥 오늘을 살아보라는 것 말입니다.

    ‘한때’는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정리할 시간은 나중에 와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천국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시기를. 그것이 이 곡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답입니다.

    전곡은 벅스 heaven and hell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wave to earth heaven and hell 가사를 ‘한때’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답을 이미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짚었습니다.

  •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 해석, 버렸다고 말하는 2개의 얼굴

    지드래곤 삐딱하게 지드래곤 정규 2집 《COUP D'ETAT》 앨범 커버. 강렬한 붉은 배경 위에 검은 물감으로 거칠게 그려진 원형 심벌이 화면 중앙을 채우고 있다. 평화의 상징인 피스마크에서 왼쪽 아래 획 하나가 빠진 형태로, 지드래곤의 상징인 PEACEMINUSONE을 나타낸다. 하단에는 굵은 검은 글씨로 'COUP D'ETAT'가 새겨져 있으며, 손으로 칠한 듯한 붓 자국이 전복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지드래곤 《COUP D’ETAT》 (2013) 앨범 커버 ⓒYG엔터테인먼트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오래 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2.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곡이 있습니다
    3.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는 그 덮개에 관한 곡입니다
    4. 정말 하고 싶었던 말
    5.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 ‘니가 뭔데’
    6.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기
    7.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어두운 방 안에 놓인 낡은 나무 선반을 담은 정물 사진. 엎어진 채 놓인 헌 문고본과 색이 바랜 작은 인형, 차곡히 쌓인 카세트테이프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로는 고운 먼지가 눈에 보일 만큼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선반 한쪽에는 무언가를 최근에 들어낸 듯 먼지가 없는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다.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오후 빛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를 비추며 오래 손대지 않은 시간을 드러낸다.

    오래 봐도 좋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들어도 좋고, 오랜만에 들어도 좋습니다. 오래 봐도 좋고, 오랜만에 봐도 좋습니다.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효율만 따진다면 하나에 그렇게 오래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더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이 계속 나오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다 아는 것을 굳이 다시 꺼냅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압니다

    그리고 그런 최애는 시간이 흘러도 머리가 아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압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잊힙니다. 시험 전날 외운 것들이 그렇고, 한때 열심히 검색해 알아낸 정보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었는데 첫 소절만으로 온몸이 반응하는 경험. 그건 기억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무엇입니다.

    책의 한 문장이나 노래 가사, 혹은 친구, 인형, 어떤 장소 같은 것들은 잊은 것처럼 보여도 전혀 잊은 게 아닙니다. 그냥 먼지가 쌓인 채로 방 속 어딘가에 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먼지는 사라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먼지’라는 상태가 흥미롭습니다.

    먼지가 쌓였다는 건 오래 손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방치이고 무관심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것은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필요 없었다면 진작 내다 버렸을 테니까요.

    그러니 먼지는 사라짐의 증거가 아니라 남겨둠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먼지를 덮개처럼 사용합니다. 아직 못 버렸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조차 감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곡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밝혀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두 곡은 저의 최애곡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던 노래이자, 지금까지도 최고로 꼽는 곡들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몇 번을 들었는지 세어본 적도 없고, 이제는 첫 소절이 나오기 전의 정적만으로도 무슨 곡인지 압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는 것’의 자리에, 저에게는 정확히 이 두 곡이 놓여 있습니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시기도 물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음악이 계속 나왔고, 취향도 조금씩 옮겨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년 만에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저는 이 곡들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사도, 박자도, 심지어 어느 지점에서 숨을 쉬는지까지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먼지가 쌓여 있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평론이면서 동시에 제 방을 한 번 열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는 그 먼지에 관한 곡입니다

    그중 첫 번째 곡인 ‘삐딱하게’는 정확히 그 먼지에 관한 곡입니다. 이 곡은 시작부터 단호합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결국 너는 변했다고, 이유도 진심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오늘 밤은 삐딱하게 있겠다고 선언합니다.

    곡의 구조도 그 태도를 그대로 옮깁니다. 테디와 지드래곤이 함께 만든 이 곡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직설적인 가사가 돋보이며, 마이너한 분위기로 시작해 밝고 경쾌한 머니코드의 후렴구로 바뀝니다.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신나는 코드로 노래하는 셈입니다.

    저는 이 전환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실제로 이렇습니다. 억지로 톤을 올리고, 일부러 밝게 웃습니다.

    침을 뱉는 사람의 속마음

    벌스로 들어가면 그 위장이 더 선명해집니다.

    화자는 버럭버럭 소리치고, 다른 연인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동네 양아치처럼 다리를 일부러 절며 걷습니다. 짙은 아이라인을 긋고 스프레이를 한 통 다 쓰고 가죽 재킷을 걸친 채 인상을 씁니다. 앞으로 더 비뚤어지겠다고, 네가 미안해지도록 하늘에다 침을 뱉겠다고 합니다.

    이 모든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말로 상대를 잊었다면 굳이 상대가 미안해지도록 애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곧 화자는 스스로 실토합니다. 투박해진 말투와 거칠어진 눈빛이 무섭냐고 묻고는, 실은 자기가 두렵다고 말합니다. 돌아가고 싶은데 갈 데가 없고, 사랑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고. 그러니 뭘 어쩌라는 거냐고 말입니다.

    여기서 삐딱함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태도가 아니라 먼지였습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 위에 급하게 덮어둔 것 말입니다.

    가면과 진짜 얼굴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이전에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

    곡의 마지막에 이르면 덮개가 완전히 벗겨집니다.

    오늘 밤은 나를 위해 아무 말도 말아 달라고, 혼자인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오늘 밤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화자는 청합니다. 이 좋은 날, 아름다운 날에 네가 그립다고 말입니다.

    앞서 그렇게 집어치우라고 외치던 사람이 결국 도착한 자리가 이곳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구절 때문에 이 곡이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삐딱함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그저 센 척하는 노래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마지막에 스스로 무너집니다.

    곁에 있어 달라는 청이 늘 작아지는 이유는 블랙핑크 ‘STAY’를 다룬 글에서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금이 간 거울을 마주하고 선 한 사람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 거울에 난 균열이 비친 얼굴을 두 조각으로 어긋나게 갈라놓아, 왼쪽은 차갑고 날카로운 푸른빛에, 오른쪽은 어스름한 주황빛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얼굴이 마치 서로 다른 두 사람처럼 보인다. 인물의 실제 얼굴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텅 빈 벽과 가구 없는 공간이 긴장감을 더한다.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 ‘니가 뭔데’

    같은 앨범에 실린 ‘니가 뭔데’는 그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하는 곡처럼 들립니다.

    이 곡의 화자는 처음부터 위장을 포기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하나도 좋지 않다고, 왜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해놓고는, 곧바로 자꾸 화가 난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렇게 인정합니다. 구차하고 찌질하다고. 나 원래 찌질하다고 말입니다.

    ‘삐딱하게’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인상을 썼다면, 이 곡은 그 재킷을 벗어던지고 맨얼굴을 보여줍니다. 사줄 수 없었던 비싼 가방과 구두 대신 눈물 젖은 베개를 샀다는 대목이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 커플이 요즘 안 좋다더라고 일러바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서글픕니다.

    어쿠스틱이 벗겨낸 것

    두 곡의 사운드 차이도 그 대비를 뒷받침합니다.

    ‘삐딱하게’가 밴드의 힘으로 감정을 위로 밀어 올렸다면, ‘니가 뭔데’는 어쿠스틱한 스타일로 힘을 뺍니다. 펑키한 보컬의 음색과 탄탄한 밴드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미학적 미덕까지 충실히 갖추었지만, 그 안의 화자는 훨씬 무방비합니다.

    후렴의 ‘두 두 두’ 하는 흥얼거림도 그렇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그냥 소리로 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났다가 그리워했다가 다시 미워하는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얹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곡을 나란히 들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전모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먼지를 덮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그 먼지를 털어낸 얼굴입니다.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기

    두 곡이 실린 정규 2집 《COUP D’ETAT》는 2013년 9월에 발매되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정규 앨범이었고, 앨범을 둘로 나누어 파트별로 순차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미시 엘리엇과 디플로를 비롯한 해외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의 소개글입니다. 지향하는 바가 정확한 아티스트는 진화를 거듭해도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이어집니다. 소중한 것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고 지키면서 진화하기.

    저는 이 문장이 앞선 이야기와 정확히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라는 제목은 전복을 뜻하지만, 정작 이 앨범이 말하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앨범 아트로 쓰인 PEACEMINUSONE이라는 상징도 그렇습니다. 하나가 빠진 평화. 무언가가 결여된 채로도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 말입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결국 두 곡의 화자는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잊겠다고 선언했지만 잊지 못했고, 괜찮은 척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실패가 이 곡들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봅니다. 정말로 잊을 수 있었다면 이런 노래는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래 봐도 좋고 오랜만에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아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버렸다고 선언해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먼지가 쌓인 채로, 방 속 어딘가에 고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문득 오래된 무언가가 떠올랐다면, 그건 당신이 아직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삐딱하게 굴어봐도 소용없습니다. 마음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이 두 곡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전곡은 벅스 COUP D’ETAT 앨범 페이지 지드래곤 삐딱하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방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드래곤 삐딱하게 가사를 제 인생곡으로 다시 읽습니다. 잊은 줄 알았지만 먼지만 쌓여 있었던 것, 니가 뭔데와 나란히 본 두 개의 얼굴까지 짚었습니다.

  • 자이언티 노래 가사 해석, 철학 한 스푼이 만든 7개 차트 1위

    자이언티 노래 자이언티 앨범 《OO》 커버. 연한 청록빛 배경 앞에서 한 인물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서 있고, 손으로 둥근 두 알의 안경을 들어 얼굴에 걸치고 있다. 안경알은 초록빛으로 반사되어 눈을 가리며, 짧게 흩날리는 오렌지빛 머리와 붉은 상의가 배경과 강한 보색 대비를 이룬다. 앨범명 'OO'를 그대로 형상화한 두 개의 원이 이 인물의 시각과 시야를 상징한다.
    자이언티 《OO》 (2017) 앨범 커버 ⓒ더블랙레이블

    자이언티 노래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철학’이라는 말부터 짚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철학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2. 자이언티 노래 가사는 욕조에서 시작합니다
    3.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4. 가방도 반지도 아닌 것
    5. 두 개의 원이 겹치는 자리
    6. 자이언티 노래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철학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철학이란 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하면 철학자들이 쓴 책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반대로 아 이런 뜻이구나 하고 무릎을 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그 철학자를, 혹은 그가 제시한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묘하고 복잡한 세계

    철학은 미묘하고 복잡한 세계입니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가져갑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말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실이 철학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철학은 소위 고지식한 사람들만 다루는 학문이 아닙니다. 개인이 가진 가치관이나 생각들의 조합으로도 충분히 발견하고 이론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모든 사람이 약간의 생각과 에너지와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나를 만들어가는 것들

    그런 철학은 무수히 많습니다. 한 번 정립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에 따라 수정되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철학이 무수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저를 만들어갑니다.

    인간의 완성은 철학 한 스푼입니다. 그리고 저라는 사람의 완성도 철학 한 스푼입니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살면서 조금씩 덜어 넣은 그 한 스푼들이 결국 한 사람의 형태를 만듭니다.

    따뜻한 조명이 켜진 작은 욕실 내부를 담은 사진. 흰 욕조 안에는 물이 얕게 고여 있고 몇 개의 거품만이 남아 천천히 사라져간다. 수면 위로는 옅은 김이 피어오르고, 물 표면은 위쪽 전구의 노란빛을 부드럽게 되받아 반짝인다. 뒤편으로는 크림빛 타일 벽이 이어지고 화면 가장자리의 거울에는 습기가 옅게 서려 있다. 아무도 없는 이 공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머무는 자리를 보여준다.

    자이언티 노래 가사는 욕조에서 시작합니다

    자이언티의 ‘노래’는 정확히 그 한 스푼에 대한 곡입니다.

    이 곡은 2017년 2월 1일 발매된 앨범 《OO》의 타이틀곡입니다. 프로듀서 테디가 설립한 더 블랙 레이블로 옮긴 뒤 처음 내놓은 앨범이었고, 발매 당일 멜론과 지니, 벅스 등 주요 음원 사이트 7곳에서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곡의 시작은 지극히 사소합니다. 일주일 전 욕조에서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라고 화자는 말합니다. 피아노 하나로는 심심해서 베이스를 넣었고, 하루 종일 상대를 생각하다가 썼다고. 별 내용은 없지만 그냥 자기 마음이라 생각하고 들어달라고 합니다.

    이보다 정직한 창작 고백이 있을까요. 대단한 영감도, 거창한 기획도 없습니다. 그저 혼자 있는 시간에 떠오른 것을 붙잡아 형태를 준 것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철학과 같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이미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은 그것을 붙잡아 형태로 만들지 않을 뿐입니다.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이 곡의 후렴은 아주 이상한 소원을 빕니다. 이 노래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이 가사를 못 외웠으면 좋겠다고.

    이 곡은 혼자만의 일기를 모든 사람이 알게 됐을 때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며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아이러니를 담아낸 것입니다.

    저는 이 아이러니가 이 곡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이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것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도 함께 압니다.

    지켜지지 않은 소원

    흥미로운 건 이 소원이 정확히 반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이 곡은 발매 당일 차트를 석권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사를 못 외웠으면 좋겠다던 후렴은, 오히려 그 후렴 때문에 온 나라가 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 곡이 더 깊어집니다. 화자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소원의 진심이 오히려 증명된 것입니다. 정말로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랐다면 발표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 그 모순을 인정합니다. 다른 자기 노래들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유명한 어떤 곡들처럼 금방 잊히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이건 결국 널리 퍼지는 것보다 오래 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시선과 인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블랙핑크 ‘STAY’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방도 반지도 아닌 것

    2절에서 화자는 자신의 선물을 다른 것들과 비교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가방이나 귀걸이, 목걸이, 반지를 주는 건 뻔해서 이 노래를 선물하겠다고 합니다. 길고양이들처럼 하루 종일 붙어 다니자고, 매일 처음 만난 것처럼 설레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건은 닳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은 닳지 않아 계속 새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왜 굳이 노래여야 했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이것 역시 철학 한 스푼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자기만의 결론입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책에서 읽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오며 정립한 하나의 관점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그 노래를 하루를 마치고 자기 전에 자장가 대신 틀어달라고 청합니다. 성급해 보일까 걱정되어 주머니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마음이라는 고백과 함께 말입니다.

    어두운 무광 바닥 위에 둥근 안경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정물 사진. 두 알의 가장자리가 살짝 겹쳐 있으며, 그 겹치는 부분에서만 빛이 모여 렌즈 모양의 밝은 영역이 만들어진다. 얇은 금속 테두리가 은은한 하이라이트를 받아 빛나고, 그 바깥의 바닥은 깊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각자의 시야가 만나 하나의 교집합을 이루는 순간을 조용히 담아낸 이미지다.

    두 개의 원이 겹치는 자리

    이 곡의 만듦새도 그 태도를 그대로 따릅니다.

    앨범명 《OO》는 자이언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안경을 연상시키면서, 그의 시각과 시야를 표현합니다. 동시에 대중과 자이언티의 교집합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두 개의 원이 겹치는 그 자리, 내 것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이 되는 지점 말입니다.

    새로운 레이블로 옮겼지만 그의 음악적 동료들 역시 함께 자리를 옮겨 이번 앨범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은 더 끈끈해지고 노래는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실제로 이 곡은 정돈된 완성품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피아노 하나로 시작해 베이스를 얹었다는 가사 그대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곡 안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후렴의 옹알이 같은 소리와 후반부의 박수 소리는 특히 그렇습니다. 잘 다듬어진 팝의 문법이라기보다, 방 안에서 장난치듯 붙인 흔적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미완성의 질감이 이 곡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다듬으면 사적인 온기가 사라집니다. 이 곡은 그 온기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덜 다듬은 쪽을 택했습니다.

    담담한 어투가 오히려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는 빈지노 ‘Always Awake’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자이언티 노래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손뼉을 치라고 말합니다. 그녀를 위해 손뼉을 치라고. 그리고 이건 너의 노래라고 반복합니다.

    처음에 이 곡은 욕조에서 혼자 흥얼거리던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너 혼자 듣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함께 손뼉을 치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장 사적인 것에서 시작해 가장 공적인 것에 도착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마디는 여전히 ‘너의 노래’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듣게 되어도, 이건 결국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만은 지키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두 사람만의 세계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이야기는 제니 ‘twin’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별 내용 없다고 흘려보내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욕조에서 흥얼거리던 멜로디 하나가 모두의 노래가 되었듯, 그 한 스푼이 언젠가 당신을 완성할지도 모르니까요.

    전곡은 벅스 자이언티 노래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한 스푼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이언티 노래 가사를 철학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욕조에서 흥얼거리던 것이 모두의 노래가 되기까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역설의 의미까지 짚었습니다.

  •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 해석, 2개의 깨어있음에 대하여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 빈지노 첫 EP 《2 4 : 2 6》 앨범 커버. 거친 붓질로 그려진 회화 스타일의 그림으로, 화면 한가운데 낙타 한 마리가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황토빛 사막이 두터운 물감의 결로 표현되어 있고, 낙타의 얼굴에는 분홍과 노랑의 붓 자국이 자유롭게 얹혀 있다.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흰 숫자 '24'와 '26'이 배치되어 있다.
    빈지노 《2 4 : 2 6》 (2012) 앨범 커버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순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머릿속이 백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2.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겼다는 소식
    3.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4. 두 개의 깨어있음
    5. 담담한 어투로 그려낸 청춘
    6.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나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는 정물 사진. 한쪽 모서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 있고, 그 옆에는 뚜껑이 닫힌 펜 하나가 손대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왼편 창에서 들어온 부드러운 아침 빛이 텅 빈 지면 위로 길고 완만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종이의 결이 세밀하게 드러나며, 그 위에는 단 하나의 글자도 자국도 없다.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서두르지 않고 그저 비워둔 채 머무는 시간을 담아낸 이미지다.

    머릿속이 백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머릿속이 백지 같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인 것 같습니다. 뭔가를 그려놓고 싶기도 하고 적어놓고 싶기도 하고 채워놓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지 상태에서는 그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굳이 그 백지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있어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백지는 사라집니다

    그렇게 두면 어느 순간 백지는 사라지고, 다시금 저의 생각들이 돌아옵니다.

    저는 그런 시간들이 마냥 좋습니다. 뭔가 깨어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멈추고 다시 시작되고 또다시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그 시간 속에서, 제가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 저는 현대인도 그 상태를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채우기만 해왔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겼다는 소식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 바둑계에서 또 한 번의 신화가 쓰였습니다.

    인공지능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이겼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 카타고를 상대로 최종 2승 1패를 거둔 것입니다. 1국에서 패한 뒤 2국과 3국을 연달아 따내며 뒤집은 결과였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인공지능을 모르는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빠르게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인공지능을 두 번 이겼다는 것은,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시대가 오리라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완벽한 것이 오히려 약점이라는 말

    흥미로운 것은 승자의 말이었습니다. 신진서 9단은 대국을 마친 뒤 인공지능은 완벽한 것이 오히려 약점 같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승부수와 묘수를 던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완벽함이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즉 대중이 파고들어야 할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백지 상태가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인공지능은 무한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명령을 넣어주는 대로 끝없이 연산합니다. 그런 인공지능은 백지 상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비움의 삶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얻을 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멈춰본 적이 없는 존재는 무엇을 멈춰야 할지도 모릅니다.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문득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빈지노의 ‘Always Awake’입니다.

    이 곡은 잠들지 말라고 말합니다. 서울시가 잠든 시간에 오히려 심장이 긴박해진다고, 살아 있음을 느낄 때면 산송장처럼 눕기 싫다고 합니다. 취침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눈이 푹 패이고 몰골이 초췌해져도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멈추라는 제 이야기와 정반대입니다. 이 곡의 화자는 백지가 될 시간을 한사코 거부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곡이 제 생각과 충돌한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은 것을 다른 방향에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이 꺼진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본 사진. 창 너머로는 아직 어둠에 잠긴 도시가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불이 켜진 창들만이 흩어져 있다. 하늘은 새벽 특유의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으며, 창턱에는 반쯤 비운 커피잔이 놓여 옅은 김을 피워 올린다. 방 안의 가구들은 형체만 남은 실루엣으로 물러나 있고, 멀리 가로등 불빛 하나가 따뜻한 색으로 번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의 자리를 보여준다.

    두 개의 깨어있음

    앞서 저는 백지 상태에서 깨어 있는 느낌이 든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의 제목은 ‘언제나 깨어 있다’입니다.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이 곡의 깨어있음은 채움이고, 저의 깨어있음은 비움입니다.

    그러나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둘 다 자동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이 곡의 화자는 잠든 자에게는 내일이 오지만 자신은 내일을 먼저 본다고 말합니다. 시간에 뒤처지거나 같이 뛰거나 둘 중 하나라면 신발을 신겠다고 합니다. 커피 한 잔을 비우고 심박수를 올린 뒤, 한숨을 쉼표처럼 찍고 다시 한밤중에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건 시간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제가 백지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 역시, 억지로 무언가를 채워 넣으라는 세상의 요구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은 잠들지도 않지만, 스스로 깨어 있기로 선택하지도 않습니다. 명령이 오면 연산하고 없으면 멈출 뿐입니다. 반면 인간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새벽까지 깨어 있기를 택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있기를 택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궤도를 정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아이브 ‘I AM’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담담한 어투로 그려낸 청춘

    이 곡의 만듦새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Always Awake’는 2011년 재지팩트 시절 싱글로 처음 나왔고, 일리네어 레코즈 결성 이후 2012년 7월 3일 발매된 첫 EP 《2 4 : 2 6》에 보너스 트랙으로 실렸습니다. 앨범명은 그가 래퍼로 활동하기 시작한 스물넷에서 스물여섯 사이를 뜻합니다.

    빈지노는 이 곡을 쓸 때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책의 문체처럼 담담한 어투로도 상황이 잘 그려지는 가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곡의 화법이 그렇습니다. 거창하게 외치지 않습니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며 몰골이 초췌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태도는 자랑에 가깝지 않고 오히려 무심합니다. 자신의 청춘을 14캐럿 금에 비유하면서도, 단지 조금 더 어리다는 게 억울하긴 하다고 슬쩍 덧붙입니다.

    그 담담함이 이 곡을 오래 살아남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주어 외친 청춘 예찬은 금방 촌스러워지지만, 담담하게 적어둔 새벽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습니다.

    낙타 한 마리

    앨범 재킷에는 낙타가 그려져 있습니다. 빈지노 본인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낙타는 사막을 건너는 동물입니다. 물이 없는 곳을 오래 걷기 위해 미리 채워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씁니다.

    저는 이 상징이 앞선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봅니다. 무한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운 것을 아껴 쓰며 건너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비워지는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

    인공지능에게는 사막이 없습니다. 건너야 할 거리도, 아껴 써야 할 물도 없습니다. 그래서 낙타가 될 수도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시간을 다 쓴 사람의 이야기는 빅뱅 ‘LAST DANCE’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빈지노 Always Awak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 벌스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꿈속에서 헤맬 바에는 어서 잠에서 깨기를 바란다고. 인생은 딱 한 번이고,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자신이 기억할 만한 것은 잠에서 깬 자신일 것 같다고.

    그림쟁이는 그림자까지 그리고, 음악을 한다면 끝까지 들으라는 대목에서 이 곡의 태도가 분명해집니다. 어중간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비우는 일도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백지가 되었을 때 서둘러 무언가를 채워 넣는 대신, 그 텅 빈 상태를 끝까지 견뎌보는 것 말입니다.

    생각이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그 반복 속에서 저는 제가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인공지능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시간입니다.

    시선과 소음에서 잠시 물러나는 일에 대해서는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머릿속이 백지 같다면,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텅 빈 시간 역시 당신이 깨어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빈지노 Always Awak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깨어있음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숀 Way Back Home 가사 해석, 꿈이 데려간 2개의 문

    한 인물이 물속에 반쯤 잠긴 채 옆으로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는 콘셉트 사진. 화면이 90도 회전된 구도로, 젖은 검은 머리가 수면 위로 퍼져 있고 이마와 목에는 은빛 장식이 물기와 함께 반짝인다. 푸른 조명이 물 전체를 감싸며 아래쪽에는 흔들리는 반영이 번져 있다. 현실과 물속 사이 경계에 놓인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숀 Way Back Home
    숀 《Take》 (2018) 앨범 커버

    숀 Way Back Hom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오늘 새벽에 꾼 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상징입니다
    2. 코스모스 열 겹, 그리고 역피라미드
    3. 사라진 얼굴 앞에서
    4. 제 나름의 해석
    5. 숀 Way Back Home 가사가 말하는 ‘너라는 집’
    6. 아무리 닫아도 다시 열리는 서랍
    7. 밝은 소리 위에 얹힌 그리움
    8. 숀 Way Back Hom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상징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을 두고 무의식에서 발현된 상징이 난무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낮 동안 우리가 눌러 두었던 것들이, 잠든 사이 검열을 피해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꿈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대신 그 어긋남 속에 우리가 미처 인정하지 못한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꾼 꿈이 그랬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코스모스 밭. 연분홍과 흰 꽃들이 열 겹의 동심원을 그리며 촘촘히 둘러싸고 있고, 그 정중앙에는 땅이 사각으로 열려 계단식 역피라미드가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바닥에서는 희미한 황금빛이 올라오고, 바깥쪽 원에는 옅은 안개가 걸려 있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 놓인 듯한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코스모스 열 겹, 그리고 역피라미드

    꿈속에서 저는 어떤 장소에 서 있었습니다.

    코스모스가 원을 그리며 열 겹쯤 둘러싸인 곳이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아래로 역피라미드를 그리며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그 밑에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보물과 책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곳을 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물창고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는 꿈속에서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두 분의 것이라는 사실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복도에 나란히 선 두 개의 나무 문이 동시에 열려 있는 장면. 오른쪽 문에서는 따뜻한 황금빛이 마룻바닥 위로 길게 쏟아지고, 왼쪽 문 안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만 채워져 있다. 낡은 벽지와 닳은 마루, 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가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만든다. 어느 쪽을 택하든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상징한다.

    두 개의 문, 그중 오른쪽

    주위를 둘러보니 두 개의 방문이 나타났습니다.

    두 문은 동시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저는 왜 오른쪽을 골랐을까요. 아니, 골랐다기보다는 그냥 그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꿈에서 선택은 늘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이유 없이,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이.

    사라진 얼굴 앞에서

    문 안으로 들어가니 침구 위에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동시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그분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오열하며 침구 위에 누웠습니다.

    꿈에서 우는 일은 이상합니다.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정직하게 울게 됩니다. 참을 이유도, 참을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이동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는 상태로 다시 눈을 떴을 때, 할아버지는 거울 앞에서 양복을 보고 계셨고 할머니는 머리를 빗고 계셨습니다. 두 분 다 젊으셨습니다. 그러고 꿈에서 깼습니다.

    제 나름의 해석

    추측해 보건대 제 무의식에는 그런 그리움이 남아 있고, 그것이 지금의 지침과 피곤을 타고 밖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의 방어도 함께 느슨해집니다. 평소에는 잘 눌러 두었던 것이 그럴 때 슬며시 올라옵니다.

    보물들과 코스모스는 저의 욕망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꽃과 보물처럼 좋은 것들에 둘러싸인 채로 두 분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렇다면 이 꿈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것들에 둘러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마지막 장면이 젊은 두 분이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그 모습을, 제 무의식은 굳이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본 적 없는 얼굴을 그리워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리움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직 저에게만 보였던 것

    그런데 이 꿈에는 제가 뒤늦게 알아차린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꿈속에는 저 말고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도 그곳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공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곳을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흥분한 사람은 오직 저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뒤따라오기만 했고,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도 저 혼자였습니다.

    이제 와 다시 짚어보니, 그런 형상들이 보였던 것은 제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덥다고 하면 더운 것이고 춥다고 하면 추운 것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는 그곳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물창고라고 여겼기에 흥분했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기에 그저 텅 빈 방이었을 뿐입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서 있어도,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봅니다.

    숀 Way Back Home 가사가 말하는 ‘너라는 집’

    이 꿈에서 깬 뒤 떠오른 노래가 있었습니다. 숀의 ‘Way Back Home’입니다.

    2018년 6월 27일 발표된 이 곡은 그의 EP 앨범 《Take》의 첫 번째 트랙으로, 2010년대 후반 유행하던 트로피컬 하우스를 차용한 일렉트로닉 트랙입니다. 발매 직후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하며 국내 주요 음원 차트를 석권했고, 이후 해외 프로듀서와 협업한 글로벌 버전과 일본어 버전까지 나올 만큼 오래 사랑받았습니다.

    이 곡의 후렴은 이렇게 말합니다. 멈춘 시간 속에 잠든 너를 찾아가겠다고. 아무리 막아도 결국 너의 곁이라고.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는 돌아가겠다고. 너라는 집으로.

    그래서 이 곡이 말하는 ‘너라는 집’도 제 꿈의 그 공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들 눈에는 그저 한 사람일 뿐인 대상이, 화자에게만은 돌아가야 할 유일한 장소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텅 빈 방이고, 저에게만 보물창고인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닫아도 다시 열리는 서랍

    이 곡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는 서랍입니다.

    화자는 아무리 힘껏 닫아도 다시 열리는 서랍 같다고 말합니다. 하늘로 높이 날려 보냈는데도 자꾸 되돌아온다고. 힘들게 삼킨 이별도 다 그대로라고.

    수없이 떠난 길 위에서 결국 너를 발견하고, 비우려 했던 마음이 또 너로 차오르고, 발걸음의 끝마다 네가 부딪힌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곡이 그리는 그리움의 성질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붙잡아 두는 감정이 아니라, 밀어내도 자꾸 돌아오는 감정입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작동 방식이 딱 이렇지 않을까요. 눌러 둘수록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는 것. 제가 그 꿈을 꾸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듯, 이 곡의 화자도 그리워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서랍이 다시 열린 것입니다.

    떠난 사람의 흔적 안에서 하루를 반복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조용히 잠든 방을 열어

    2절의 한 대목은 특히 이 꿈과 겹쳐 읽힙니다. 조용히 잠든 방을 열어 기억을 꺼내 든다는 구절입니다.

    방을 엽니다. 그 안에는 잠든 기억이 있습니다. 부서진 시간 위에서 그 사람은 선명히 떠오릅니다.

    꿈속에서 제가 두 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갔던 장면과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다가가자 사라졌던 것처럼, 이 곡의 화자도 결국 그 사람을 붙잡지는 못합니다. 길 잃은 마음속에 그를 가둔 채 살아간다고 고백할 뿐입니다.

    여기서도 방을 여는 것은 화자 혼자입니다. 옆에서 누가 같이 열어줄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빛이 다 꺼진 이곳에서 나를 안아 달라는 브리지의 문장이 부탁이라기보다 혼잣말처럼 들리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 사라진 세계를 잠시 되살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니 ‘twin’을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밝은 소리 위에 얹힌 그리움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사운드와 정서의 간극에 있습니다.

    트로피컬 하우스는 본래 여름과 휴양지의 장르입니다. 밝고 가볍고 몸을 흔들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얹힌 가사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어긋남이 오히려 이 곡을 오래 살아남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슬픈 소리로 부르면 슬픔은 거기서 끝납니다. 그러나 밝은 소리 위에 얹으면, 듣는 사람이 그 간극을 자기 것으로 채워 넣게 됩니다.

    이것 역시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와 같은 원리입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누군가는 신나는 여름 노래로, 누군가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이 곡은 발표 이후 수억 회의 재생을 기록했고 각종 챌린지와 매시업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는데, 그 밝은 소비 방식과 뭉클함이 공존한다는 점이 이 곡의 진짜 힘입니다.

    덧붙이자면, 한때 이 곡이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위한 추모곡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아티스트 본인이 방송에 나와 사실무근이라고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오해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을 이 곡에 얹어 들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숀 Way Back Hom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눈을 감으면 소리 없이 밀려와 이 마음 위로 또 한 겹 쌓여간다고.

    한 겹씩 쌓여가는 마음. 제 꿈속에서 코스모스가 열 겹으로 둘러싸고 있던 그 원과 겹쳐 보이는 표현입니다.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겹겹이 쌓여 하나의 원을 만들고, 그 한가운데에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무언가가 놓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압니다.

    세상을 뒤집어서라도 찾겠다는 말, 모든 걸 잃어도 너 하나면 된다는 말. 남이 들으면 과장으로 들릴 이 문장들이 화자에게는 사실 그대로일 것입니다. 저 역시 새벽의 꿈속에서 아무도 따라 들어오지 않은 그 계단을 혼자 내려갔습니다.

    빛이 모두 꺼진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는 지드래곤 ‘무제’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빈 방으로 보이는 곳이 저에게만은 보물창고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그곳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새벽의 그 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전곡은 벅스 숀 Way Back Hom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공간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한로로 화해 가사 해석, 유난스러움을 끌어안은 2가지 태도

    한로로 첫 EP 《이상비행》 앨범 커버. 검은 배경 한가운데 강렬한 코발트블루 원이 자리하고, 그 안에 한 사람의 검은 실루엣이 팔을 뻗은 채 떠 있다. 원의 위쪽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선들이 화살표를 이루며 인물을 향해 내리꽂히고, 아래쪽에는 흩어진 잉크 자국 같은 형상이 번져 있다. 추락과 비행의 경계에 놓인 듯한 구도가 앨범 제목의 이중적 의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로로 화해
    한로로 《이상비행》 (2023) 앨범 커버

    한로로 화해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유난스럽다’는 말의 원뜻부터 짚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유난스럽다는 말의 진짜 뜻
    2. 유난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아티스트
    3. 한로로 화해 가사는 곪은 마음을 향한 고백입니다
    4. 동정은 사양합니다
    5. 차가운 세상을 녹여내고 싶다는 꿈
    6. 한로로 화해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매끈한 회색 조약돌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가운데, 모나고 검은 돌 하나가 홀로 섞여 있는 장면. 낮게 깔린 측광이 모든 돌에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유독 이 모난 돌만이 훨씬 길고 기이한 형태의 그림자를 남긴다. 같아지기를 거부한 존재가 오히려 가장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유난스러움이라는 말의 원뜻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유난스럽다는 말의 진짜 뜻

    유난스럽다.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주로 비난의 용도로 쓰이는 이 말은, 사실 국어사전에 실린 원뜻으로 보면 꽤나 근사한 말입니다. ‘유난스럽게 굴지 않음’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못마땅하다는 어느 작가의 생각에, 저는 깊은 이해와 공감을 느낍니다.

    보통과 특별함의 관계는 묘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보통이라 여기지만, 그 ‘보통’이라는 것은 사실 오직 나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보통입니다. 보통의 특별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유난스럽다고 말할 때, 그 안에는 미묘한 불편함이 섞여 있습니다. 저 사람은 왜 나처럼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가 하는 불편함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상대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나의 기준이 흔들렸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내가 참고 넘긴 것을 누군가는 참지 않았을 때, 내가 포기한 것을 누군가는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유난스럽다고 부르며 나의 평범함을 지켜냅니다. 저는 이 구조를 알아차린 뒤로,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덜 아프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특별함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삶에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쟤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너무 튀는 거 아냐?”, “걔는 그 점이 참 이상하더라.” 이런 말들에 자아가 푹 절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런 말들을 흘려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홀로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요.

    만약 흘려보내기가 힘들다면, 생각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아, 나는 이런 점이 남들 눈에는 특별해 보이는구나. 그리고 그 특별함을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쓸 수 있도록. 오직 ‘나’를 위해서.

    타인의 시선에 지쳐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유난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아티스트

    우리나라 인디 씬에서 싱어송라이터나 밴드는 대중적인 팬덤보다 마니아층 사이의 바이럴을 통해 공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역주행의 기류를 타고 대중에게 발굴되곤 합니다.

    한로로 역시 그런 아티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특별함을 이상함이나 튀는 행동으로 치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모난 마음과 습한 이상을 끝내 끌어안고 날아오르는 유난스러운 싱어송라이터. 그녀야말로 ‘유난스럽다’라는 말을 기어이 꺼내게 만드는 아티스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화해’는 원래 타이틀곡으로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른 곡 하나만 타이틀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더블 타이틀로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난스러움을 노래한 곡이 정작 스스로는 앞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한로로 화해 가사는 곪은 마음을 향한 고백입니다

    2023년 8월 29일 발매된 EP 《이상비행》에 실린 이 곡은,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려 억눌러 왔던 곪은 마음들을 향한 덤덤한 고백입니다. 동시에 차가운 세상을 향해 건네는 주체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온전히 사랑만 하기에도 벅찬 삶에, 세상은 무책임한 것들을 자꾸만 떠넘깁니다. 그 속에서 상처받으면서도, 그녀는 결국 노래로써 앞으로 일어날 사고들에 묵묵히 맞서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둥근 척하기 바빴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다가도 안쓰러워하며, 그때의 자신이 겨우 지금의 자신이 되어 펜을 잡았다고 고백하는 이 태도에는 묘한 단단함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정은 사양합니다

    한로로 특유의 호소력 짙은 보컬은 시니컬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뜨거운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소음을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녀의 요란하고 습한 이상을 두고 ‘이상(異常)한 이상(理想)’이라며 비웃을지언정, 그녀는 타인의 동정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동정하지 말라는 그녀의 단호함은, 차가운 바람에 부서질지언정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선언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까지만 스스로를 머금은 구름이 되어 빗물에 다 털어내고, 붉어진 눈가에 새 살을 돋게 하겠다는 것. 그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채비입니다.

    이 곡에서 반복되는 물의 이미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습한 이상, 머금은 구름, 털어내는 빗물, 그리고 붉어진 눈가.

    물은 이 곡에서 두 가지 얼굴을 가집니다. 하나는 나를 무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은 낮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비워냄으로써 가벼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다 쏟아낸 구름은 다시 높이 떠오릅니다. 저는 곡이 말하는 ‘화해’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젖은 채로 버티는 것도, 마른 척하는 것도 아니라, 한 번 제대로 쏟아내고 나서 다시 떠오르는 것 말입니다.

    위로와 동정은 다릅니다

    저는 이 곡이 위로와 동정을 명확히 구분한다는 점에서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정은 상대를 나보다 낮은 자리에 두는 감정입니다. 반면 위로는 같은 높이에서 건네는 것입니다. 이 곡의 화자가 거부하는 것은 도움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입니다.

    누군가를 진짜로 위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룬 적이 있습니다.

    창백한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먹구름 하나가 아래로 얇은 빗줄기를 흘려보내며 가장자리부터 흩어지고 있는 장면. 벌어진 틈 사이로 맑고 서늘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고, 그중 한 틈을 통해 작고 검은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솟아오른다. 머금었던 것을 다 털어낸 뒤에야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다는, 곡의 마지막 정서를 담아낸 이미지다.

    차가운 세상을 녹여내고 싶다는 꿈

    아이돌 노래가 차트를 장악하고,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안한 그 차가운 세상을 기어이 녹여내고 싶다는 그녀의 다부진 꿈은, 어느 순간부터 대중의 마음에서 도란도란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 앨범에 함께 실린 다른 수록곡은 발매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주요 음악 차트에서 역주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만들어 둔 노래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사람들에게 가닿은 셈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화해’라는 곡의 메시지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난스러움은 당장 인정받지 못할 수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늦게 도착할 뿐입니다.

    한로로 화해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거대한 ‘한로로 붐’이 일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모두가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숨죽일 때, 그녀는 오직 자신만의 노래를 노래했으니까요.

    한로로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내면의 ‘유난스러움’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대변해 주는, 진정 ‘유난스럽다’라는 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아티스트입니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에게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으셨다면, 그것을 비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좋겠습니다. 사전에 적힌 그 말의 원뜻은,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로 서는 일에 대해서는 저스틴 비버 ‘Love Yourself’를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전곡은 벅스 화해 페이지 한로로 화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유난스러움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로로 화해 가사를 유난스러움이라는 말의 원뜻으로 읽습니다. 곪은 마음을 향한 고백과 동정을 거부하는 단단함, 그리고 다시 날아오르는 채비까지 짚었습니다.

    한로로 화해 가사를 유난스러움이라는 말의 원뜻으로 읽습니다. 곪은 마음을 향한 고백과 동정을 거부하는 단단함, 그리고 다시 날아오르는 채비까지 짚었습니다.

  • 에스파 Next Level 가사 해석, 손자병법이 말한 5가지 중 첫째

    에스파 싱글 《Next Level》 앨범 커버. 붉고 노란 화염빛이 소용돌이치는 초현실적 공간을 배경으로, 네 명의 멤버가 나란히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뒤편에는 유기적으로 휘어진 검은 구조물과 커다란 원형 게이트가 자리하고 각기 다른 질감의 의상이 대비를 이룬다. 상단의 'NEXT LEVEL' 로고와 원 안의 'aespa' 서명이 배치되어, 광야로 떠나는 여정이라는 세계관을 시각화한다. 에스파 Next Level
    에스파 《Next Level》 (2021) 앨범 커버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 Next Level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먼저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오사와 칠계, 그중 첫 번째 항목
    2. 이 구절을 개인에게 대입해 본다면
    3. 에스파가 말하는 SYNK
    4. 에스파 Next Level 가사는 끊어진 연결을 되찾으러 갑니다
    5. 손을 놓지 말라는 말의 무게
    6. 리메이크가 만들어낸 소리
    7. 에스파 Next Level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어두운 돌판 위에 펼쳐진 고대 죽간 두루마리. 한쪽은 노끈으로 감겨 말려 있고, 다른 한쪽은 펼쳐져 세로로 쓰인 한자가 드러나 있다. 옆에는 짐승 형상이 새겨진 청동 인장과 낮게 타오르는 기름 등잔이 놓여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나무의 결과 낡은 끈의 질감이 선명하게 살아 있어, 오래된 병법서가 놓인 서재의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사와 칠계, 그중 첫 번째 항목

    손무의 『손자병법』에는 오사(五事)와 칠계(七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사는 전쟁의 기본 요소이고, 칠계는 승패를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그중 오사의 첫 번째 항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도(道), 백성과 지도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는가’라는 구절입니다.

    병법서의 첫머리에 무기도, 지형도, 병력의 수도 아닌 ‘마음이 하나인가’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저는 늘 인상 깊었습니다.

    왕과 백성이 서로 다른 곳을 볼 때

    모든 고대 국가에는 왕이 있고 백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국가는 왕만 잘나서, 혹은 백성만 잘나서 부강해지고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아무리 어질더라도 여러 지역의 백성이 그를 따르지 않고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나라를 바로잡으려 왕에게 호소해도, 왕이 매일을 술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친다면 그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예시로 미루어 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왕과 백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지 않으면, 국가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집니다.

    이 구절을 개인에게 대입해 본다면

    그렇다면 이 구절을 지금 우리의 상황, 특히 개인의 삶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요.

    백성을 우리의 신체로, 지도자인 왕을 우리의 정신이라고 놓아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곧 우리가 신체와 정신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머리로는 일어나야 한다고 아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아침. 몸은 이미 한계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정신이 계속 밀어붙이는 밤. 왕과 백성이 어긋난 나라처럼, 그런 날의 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것

    그렇다면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것이 ‘나’를 알게 되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몸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짜고 단백질을 챙깁니다. 또한 정신을 키우기 위해 사유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명상합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아우르는 말이 바로 ‘자기 개발’ 혹은 ‘자기 관리’일 것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나’를 발견합니다. 몰랐던 나, 이미 알았지만 확실해진 나, 애매했지만 이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된 나. 그렇게 발견이 쌓일수록 우리는 저 구절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지평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르고 갈라진 흰 대지 위, 보랏빛으로 어두워진 하늘 아래 한가운데에 문 하나가 홀로 서 있다. 문 안쪽에서는 청록빛이 강하게 새어 나와 갈라진 땅 위로 길게 뻗은 빛의 자국을 남기고, 문 주변으로는 미세한 입자들이 흩날린다. 아무 표식도 경계도 없는 공간에 놓인 이 문이 여정의 시작점처럼 보인다.

    에스파가 말하는 SYNK

    흥미롭게도, 이 ‘하나 됨’을 세계관의 중심에 놓은 그룹이 있습니다. 에스파(aespa)입니다.

    에스파의 세계관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멤버들과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æ’가 SYNK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이야기입니다. æ는 인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로,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앞서 말씀드린 정신과 몸의 관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은 또 하나의 ‘나’. 그것과 어떻게 연결을 유지하느냐가 이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을 끊는 존재가 있습니다. 블랙맘바입니다. 이 검은 뱀은 현실과 광야 사이의 신호를 차단해 멤버들을 SYNK OUT 상태에 빠뜨리는데, 인간의 욕망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연결을 끊는 것은 바깥의 적이 아니라 내 안의 욕망인 셈입니다.

    에스파 Next Level 가사는 끊어진 연결을 되찾으러 갑니다

    2021년 5월 17일 발매된 이 곡은, 그 끊어진 SYNK를 되찾기 위해 광야(KWANGYA)로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곳입니다. 무규칙, 무정형, 무경계가 그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설정이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사람의 내면과 겹친다고 느꼈습니다. 정해진 답도, 지도도 없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자기 관리라는 것도 결국 그런 미지의 영역을 스스로 걸어보는 일이 아닐까요.

    그 길에는 안내자가 있습니다. 나이비스(nævis)는 에스파와 가상 세계 속 아바타를 서포트해 주는 조력자이자 안내자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곡에서 화자가 그를 향해 네가 이끌면 우리가 따르겠다고 말하는 대목은, 혼자서는 자기 자신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고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손을 놓지 말라는 말의 무게

    이 곡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이미지는 ‘맞잡은 손’입니다.

    화자는 내 손을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결속이 곧 나의 무기라고 선언합니다. 유혹이 깊고 진해 결국 맞잡은 손을 놓치는 순간이 오지만,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더 아픈 시련이 와도 잡은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반복이 곧 ‘도(道)’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왕과 백성이 손을 놓지 않는 것. 정신과 몸이 서로를 놓아버리지 않는 것.

    블랙맘바가 만들어낸 환각 속에서 화자는 중심을 잃고, 목소리를 잃고, 사람들과 멀어지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것은 판타지 설정이지만, 동시에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겪는 상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우리도 딱 그렇게 됩니다. 중심이 흔들리고, 내 말에 확신이 없어지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집니다.

    이렇게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공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소재로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리메이크가 만들어낸 소리

    이 곡의 출발점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Next Level’은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OST를 에스파만의 색깔로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그루비한 랩과 에너지 넘치는 베이스 리프가 돋보이는 힙합 댄스곡으로 재탄생했고, 멤버들의 파워풀한 보이스와 버라이어티한 곡 진행이 그 위에 얹힙니다.

    특히 곡 중반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여러 곡을 섞은 듯한 편곡과 고음 분출 구간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트랙 안에서 여러 개의 장면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 구조가 SYNK가 끊겼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소리로 옮긴 것이라고 읽었습니다.

    원곡이 있는 곡을 가져와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점도 이 곡의 주제와 맞닿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재료로 새로운 자아를 빚어내는 일. æ가 인간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라는 설정과 정확히 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감각에 대해서는 전소미 ‘BIRTHDAY’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에스파 Next Level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이제 더 강해졌다고, 자유로워졌다고 말합니다. 광야에 있던 내가 아니라고, 야수 같은 나를 느껴 보라고 합니다.

    끊어졌던 연결을 회복한 사람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선언이 자기 관리를 오래 이어온 사람의 얼굴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움직이고, 책을 읽고, 스스로를 관찰하며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하나입니다. 나의 왕과 나의 백성이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드는 것. 손자가 전쟁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던 그 ‘도’를, 우리는 매일 자기 안에서 다시 세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오늘 몸과 마음이 자꾸 어긋난다면,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SYNK가 잠시 흐트러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손을 놓지 않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곡은 벅스 Next Level 페이지 에스파 Next Leve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파 Next Level 가사를 손자병법의 도(道)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정신과 몸의 합일, 그리고 광야로 떠나 끊어진 연결을 되찾는 여정의 의미까지 짚었습니다.

  • 전소미 BIRTHDAY 가사 해석, 365일이 생일인 사람의 선언

    전소미 데뷔 싱글 《BIRTHDAY》 앨범 커버. 강렬한 핫핑크 배경 앞에서 아티스트가 한 손을 머리로 올린 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흰 티셔츠와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웨이브 헤어, 그리고 아래쪽에 살짝 걸친 그물 스타킹이 대비를 이룬다. 상단에는 노란 선으로 그려진 'SOMI' 로고가 배치되어, 새로 태어난 솔로 아티스트의 자신감과 발랄한 에너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전소미 BIRTHDAY 가사
    전소미 《BIRTHDAY》 (2019) 앨범 커버 ⓒTHE BLACK LABEL

    전소미 BIRTHDAY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천공’이라는 현상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전소미 BIRTHDAY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하늘에 구멍이 난다는 말에 대하여

    그 구멍에서 쏟아지는 빛은 스포트라이트입니다

    빛 아래 선 사람의 첫마디

    전소미 BIRTHDAY 가사의 핵심은 시선의 방향입니다

    예전의 나를 찾지 말라는 말

    빛을 소리로 옮긴 편곡

    후 하고 불겠다는 말

    짙은 먹구름이 하늘 전체를 덮은 가운데, 구름 한가운데에 둥근 구멍이 뚫려 그 사이로 태양이 정확히 들어맞은 장면. 구멍 가장자리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그 아래로 여러 갈래의 빛기둥이 부챗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광활한 회색 들판 중 오직 빛이 닿은 한 지점만 따뜻한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다. 하늘의 구멍이라 불리는 천공 현상이자,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하늘에 구멍이 난다는 말에 대하여

    천공. 하늘의 구멍이라 불리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신화에서 신이 강림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 있습니다. 천공 사이로 무언가가 내려왔다는 식의 문장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공을 볼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볼 수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답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주 확률은 낮겠지만, 이럴 수는 있지 않을까요.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있을 때, 어쩌다 구멍 하나가 뚫렸는데 그 구멍으로 둥근 태양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면. 그것을 천공이라 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과학적으로 푸른 하늘에 검은 구멍이 뚫리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구름 사이 틈에 태양이 들어맞는 것 말입니다. 어쨌든 구름도 하늘에 있고, 태양도 하늘에 있으니까요.

    기상학을 모르던 옛사람들이라면 그 광경을 보고 하늘에 구멍이 났다고, 좋지 않은 징조라고, 신이 내려온다고 말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어두운 객석에서 바라본 텅 빈 무대. 천장의 조명 하나가 곧게 내려와 검은 무대 바닥 위에 둥근 빛의 원을 만들고, 그 안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다. 빛기둥 사이로 미세한 먼지가 떠다니고, 원 바깥에는 흩어진 금색 반짝이와 바람이 빠진 은박 풍선이 놓여 있다. 무대 양옆의 구조물과 스피커는 어둠에 잠겨 있어, 곧 시작되거나 막 끝난 축제의 순간을 짐작하게 한다.

    그 구멍에서 쏟아지는 빛은 스포트라이트입니다

    그런 천공에서 쏟아져 나오는 태양빛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두꺼운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는데, 오직 한 지점에서만 빛이 내려옵니다. 그 아래에 선 사람은 온통 밝고, 나머지 세상은 회색으로 남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와 정확히 같다고 생각합니다. 객석은 어둡고, 오직 한 사람만 밝게 빛나는 그 상황 말입니다.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사람은 다른 존재가 됩니다. 조금 전까지 무대 뒤에 있던 사람과, 빛 아래 선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빛 아래 선 사람의 첫마디

    전소미의 ‘BIRTHDAY’는 정확히 그 순간의 노래입니다.

    이 곡은 2019년 6월 13일 발매된 그녀의 첫 번째 싱글이자 솔로 데뷔 음반입니다. 노래도 춤도 랩도 모두 해내는 사람이, 마침내 혼자 빛 아래 서게 된 순간에 나온 곡입니다.

    한 음원 사이트의 소개는 이 곡을 두고 길었던 연습생 생활을 거쳐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게 된, 생일 같은 곡이라고 설명합니다. 무대 뒤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던 사람일수록 그 빛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곡의 첫마디가 흥미롭습니다. 뻔한 인사는 하지 않겠다며, 딱 잘라 말하겠다고 합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다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말입니다.

    데뷔곡의 도입부치고는 놀랍도록 무례합니다. 저는 이 무례함이 이 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소미 BIRTHDAY 가사의 핵심은 시선의 방향입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이 곡 전체를 요약합니다. 나를 원하는 너보다, 내가 원하는 걸 원한다는 선언입니다.

    빛 아래 선 사람은 늘 시선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받는 사람은 대개 그 시선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얼굴, 기대하는 태도, 예상 가능한 대답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곡의 화자는 정반대로 갑니다. 나를 향한 기대보다 내 욕망이 먼저라고 못 박습니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해 버립니다.

    저는 이 태도가 천공의 빛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질 때, 그 빛은 누구의 허락을 구하지 않습니다. 구멍이 뚫렸으니 그저 내려올 뿐입니다.

    시선에 지쳐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곡이 조용한 혁명이었다면, 이 곡은 훨씬 시끄러운 쪽을 택했습니다.

    예전의 나를 찾지 말라는 말

    후렴에 이르러 화자는 더 분명해집니다. 이제 내 멋대로 하겠다고, 지루할 틈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예전에 알던 나를 찾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네가 알던 나는 여기 없으니까,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생일이라는 제목이 여기서 온전한 의미를 갖습니다. 생일은 세상에 태어난 날, 또는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해마다의 그날입니다. 그런데 이 곡에서 생일은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사건입니다.

    이미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다시 태어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매일이 내 생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시간과 분과 초마다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말입니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 곡에서 가장 통쾌한 대목은 초대장에 관한 부분입니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반복해 말합니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은 초대 명단을 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곡은 그 권리를 정확히 행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천공의 비유를 다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구름에 뚫린 구멍은 아주 좁습니다. 그 아래 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이 곡은 그 좁은 자리에 누구를 들일지는 내가 정하겠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화자 스스로도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오랫동안 시선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몫의 자리를 주장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빛을 소리로 옮긴 편곡

    이 곡의 사운드는 그 선언을 그대로 받쳐줍니다.

    앨범 소개에 따르면 이 곡은 타격감 넘치는 드럼 사운드로 시작해, 통통 튀는 리드 신스로 채워진 드랍 파트를 지나, 강렬한 브라스 사운드로 풍성해진 아웃트로로 끝납니다. 더 블랙 레이블의 대표 프로듀서 테디의 손을 거쳐 완성된 트랙입니다.

    특히 아웃트로의 브라스가 인상적입니다. 브라스는 원래 축하와 행진의 악기입니다. 개선하는 군대 앞에서, 축제의 한복판에서 울리는 소리입니다. 곡의 끝에 브라스를 배치했다는 것은, 이 노래가 시작이 아니라 도착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빠른 템포 위에 리드미컬한 랩과 파워풀한 보컬이 번갈아 얹히는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랩이면 랩. 이 곡은 한 사람이 가진 모든 무기를 짧은 러닝타임 안에 전부 꺼내 보입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게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자기소개입니다.

    후 하고 불겠다는 말

    제가 이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촛불을 부는 대목입니다.

    화자는 후 하고 불겠다며, 내 마음을 흔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부는 그 행위가 여기서는 소원을 비는 일이자 상대에게 건네는 도발이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늘처럼. 이 문장은 앞의 모든 화려한 선언들 사이에서 유독 담백합니다. 매일이 생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결국 오늘의 이 기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전소미 BIRTHDAY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그러나 천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구름은 계속 움직이고, 구멍은 이내 메워집니다. 빛이 정확히 들어맞는 그 순간은 아주 짧습니다.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도 그렇습니다. 조명이 켜져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언젠가 꺼집니다. 무대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빅뱅 ‘LAST DANCE’를 다룬 글에서, 그리고 빛이 완전히 꺼진 뒤의 자리에 대해서는 지드래곤 ‘무제’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빛 아래 서 있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집니다. ‘BIRTHDAY’는 그 짧은 순간에 자기 자신을 선택했습니다. 남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예전의 나가 아니라 지금 새로 태어나는 나를 말입니다.

    내가 잘 태어나서 잘난 걸 어떡하느냐는 마지막 한 줄은, 그래서 자만이 아니라 자기 긍정에 가깝게 들립니다. 어차피 구멍은 곧 닫힙니다. 그렇다면 그 아래 서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껏 빛나도 되지 않을까요.

    혹시 오늘 하늘이 온통 흐리다면, 한 번쯤 올려다보아도 좋겠습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 빛이 지금 나에게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곡은 벅스 BIRTHDAY 페이지 전소미 BIRTHDAY 가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빛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소미 BIRTHDAY 가사를 하늘의 구멍 천공과 스포트라이트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데뷔 싱글이 왜 생일을 제목으로 삼았는지, 그 선언의 의미까지 짚었습니다.

    http://m.melon.com/musicstory/detail.htm?mstorySeq=11832

  • 지드래곤 무제 가사 해석, 2014라는 숫자만 남은 노래

    지드래곤 미니앨범 《권지용》의 USB 앨범 이미지. 밝은 회백색 배경 한가운데에 짙은 붉은색 USB 메모리 하나가 놓여 있고, 표면에는 손으로 급하게 갈겨쓴 듯한 붉은 필기체로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져 있다. 은색 단자가 그대로 드러난 낡고 긁힌 몸체는, 화려한 무대 위의 이름이 아닌 한 사람의 신상 정보만을 남겨둔 앨범의 콘셉트를 그대로 드러낸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
    지드래곤 《권지용》 (2017) USB 앨범 ⓒYG엔터테인먼트

    지드래곤 무제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전봇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스쳐 지나가는 시멘트 기둥에 대하여

    가장 큰 피해는 빛이 꺼지는 것입니다

    피아노 한 대만 남은 노래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제목을 붙이지 못한 이유

    뒤돌아 서고 나서야 오는 후회

    꿈에서라도, 다음 생에라도

    과거의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라는 해석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본 시점의 사진. 텅 빈 2차선 도로가 지평선까지 곧게 뻗어 있고, 그 옆으로 콘크리트 전봇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전깃줄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기둥과 기둥을 잇고, 가까운 기둥은 흐릿하게 번져 있다. 마른 겨울 들판과 옅은 노을빛 하늘이 배경을 채우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다.

    스쳐 지나가는 시멘트 기둥에 대하여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나무나 건물이 아닌 시멘트 기둥 같은 것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갑니다. 흔히 말하는 전봇대입니다.

    전봇대는 전기를 가정 곳곳에 보급하는 전깃줄의 역할과 통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여러 개의 선에, 받침대와 지지대 노릇을 합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그 기둥을 우리는 좀처럼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너무 흔하고, 너무 당연하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쓰러지면 무엇이 무너지는가

    그런 전봇대가 하나라도 쓰러져서 전깃줄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나 통신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 일대는 순식간에 멈춰 섭니다.

    더 크게 보자면 송전탑이, 아니면 발전소 하나가 파괴된다면 어떨까요. 전봇대보다 훨씬 넓고 깊은 피해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일수록 사라졌을 때의 공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있을 때는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크기가 드러납니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불이 꺼진 실내를 담은 사진. 천장에 매달린 유리 펜던트 조명은 켜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잠겨 있고, 커튼 사이로 스며든 푸른 달빛만이 마룻바닥 위에 가느다란 띠를 그리며 떨어진다. 소파와 탁자는 형체만 겨우 남은 실루엣으로 물러나 있고, 방의 모서리는 완전한 검정 속으로 사라진다. 방향을 잃은 어둠의 감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미지다.

    가장 큰 피해는 빛이 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어떤 피해가 일어날까요.

    모든 전자기기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피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등을 켜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라고 봅니다. 빛이 꺼진다는 것 말입니다.

    기기는 못 쓰면 불편할 뿐입니다. 그러나 빛이 사라지면 사람은 방향을 잃습니다. 방 안의 사물이 어디 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심지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그 순간의 감각을 소리로 옮긴다면 어떤 소리일까요. 저는 피아노의 높은 음이 끊이지 않고 연속해서 울리는 듯한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낮고 두꺼운 소리가 아니라, 가늘고 높고 서늘한 소리.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떨리는 그런 소리 말입니다.

    어둡고 텅 빈 공간 한가운데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홀로 놓여 있는 사진. 천장에서 내려온 가느다란 빛줄기가 열린 건반 위로만 떨어지고, 나머지 몸체는 그림자 속으로 물러난다. 빛 사이로 미세한 먼지가 천천히 떠다니고, 세월에 긁힌 나무 표면이 드러난다. 연주자도 악보도 없는 이 장면은 모든 것이 꺼진 뒤 마지막까지 남은 소리를 상징한다.

    피아노 한 대만 남은 노래

    지드래곤의 ‘무제(無題)’가 정확히 그런 곡입니다.

    2017년 6월 8일 발매된 미니앨범 《권지용》의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오직 피아노로만 연주된 선율과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곡입니다. 드럼도, 베이스도, 화려한 편곡도 없습니다. 곡 전체에 남은 것은 건반과 사람의 목소리뿐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강렬한 힙합 비트의 다른 곡으로 발표되어 있었는데, 발매를 앞두고 ‘무제’로 변경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조용한 곡이 앨범의 얼굴이 된 셈입니다.

    앨범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앨범은 G-DRAGON의 화려한 모습을 잠시 접어두고, 인간 권지용으로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입니다. 무대 위에서 늘 가장 화려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건반 앞에 앉았다는 것. 그 대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제목을 붙이지 못한 이유

    제목부터가 이 곡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무제’, 즉 제목이 없다는 뜻입니다.

    뒤에 붙은 2014라는 숫자는 이 곡이 2014년에 녹음되었기 때문에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곡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삼 년이 걸린 셈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인상 깊습니다. 제목을 붙인다는 것은 그 감정에 이름을 부여하고 정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끝내 이름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미안함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그리움이라고 하기엔 넘치고,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이미 자격을 잃어버린 감정.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은 그것이 만들어진 연도뿐입니다.

    감정의 이름 대신 날짜만 붙여둔 노래. 그것만으로도 이 곡이 어떤 상태에서 나왔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뒤돌아 서고 나서야 오는 후회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헤어진 뒤, 그를 그리워하는 남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상대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그 마음도 압니다. 알면서도 붙잡는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처음부터 이기적인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는 인정합니다. 상대가 떠나던 날에도 모진 말로 그를 울렸고, 등을 돌리고 나서야 후회했다고. 저는 이 순서가 이 곡에서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회는 늘 한 박자 늦게 옵니다. 전봇대가 쓰러지고 나서야 전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용서받는 것보다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쉬울지 모른다는 대목에서는, 죄책감의 크기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 흔한 거짓말조차 하지 못하면서, 돌아오기만을 기도한다고 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곡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온 사람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한 곡의 길이만큼이라도 되살려보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빅뱅 ‘LAST DANCE’를 다루며 쓴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곡이 마지막 춤을 청했다면, 이 곡은 그마저도 청하지 못합니다. 상대는 이미 떠났고, 화자에게는 노래를 부르는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꿈에서라도, 다음 생에라도

    후렴에서 화자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딱 한 번만 그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

    그러나 그 소망은 현실에 놓이지 못합니다. 꿈에서라도 만나 다시 사랑하기를, 하고 조건을 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음 생에라도 다시 만나 예전 그대로 사랑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꿈과 다음 생. 둘 다 이 세계에는 없는 시간입니다. 이미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화자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 불가능한 시간에 소망을 걸어둡니다.

    저는 이것이 빛이 완전히 꺼진 방에서 사람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은 스위치를 계속 눌러봅니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손이 그리로 갑니다. 이 곡의 후렴이 꼭 그 손짓 같습니다.

    떠난 사람의 흔적 안에서 하루를 반복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라는 해석

    이 곡을 두고, 서른이 된 그가 과거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을 가사로 옮긴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곡은 또 다르게 들립니다.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상대가 연인이 아니라 예전의 나 자신이라면, 모진 말로 울린 것도, 상처를 남긴 것도 결국 스스로에게 한 일이 됩니다.

    무대 위의 페르소나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지난 사랑을 회상한다는 점에서, 이런 독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의 영역이므로 하나의 감상 방식으로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핵심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이미 지나왔다는 자각, 그리고 그 자각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일로 사라진 세계를 잠시 되살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니 ‘twin’을 다룬 글에서 쓴 적이 있습니다. 세 곡 모두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그래서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창밖으로 스쳐 가던 전봇대를 떠올립니다.

    너무 흔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것. 그러나 하나가 쓰러지면 온 동네의 불이 꺼지는 것.

    우리 곁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있을 때는 그 크기가 보이지 않다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사람을 통해 흐르고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무제’는 그 늦음에 대한 노래입니다. 빛이 모두 꺼진 방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피아노의 높은 음 하나로 부르는 노래.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러니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불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쯤 올려다보아도 좋겠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저 기둥들처럼, 지금 나를 밝히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무제 페이지 지드래곤 무제 가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불빛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드래곤 무제 가사를 정전과 꺼진 빛이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피아노 한 대만 남은 편곡과 제목을 붙이지 못한 이유, 꿈과 다음 생에 건 소망까지 함께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