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연 Fine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시간’이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 태연 Fine 가사는 멈춰 선 시계의 노래입니다
- 아직은 아니라는 말
- 사람들 틈에서 무딘 척하는 일
-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던 이별
- 폭발하지 않고 눌러 담는 소리
- 태연 Fin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내일이 중요한 시험이거나 중요한 발표, 혹은 면접이라면 어떨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해서 잠을 설치거나, 더 완벽하게 하려고 밤늦게까지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냥 내일이라는 것이 오지 않아서 그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를, 내 앞에 닥쳐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를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를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결국에는 내일이 오고, 그 일들은 내 앞에서 벌어집니다.
그런데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릅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고 말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과 그냥 걷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면 앞서 이야기한 두 부류의 사람들도 다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 그러니까 빨리 준비하고 해치우려는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게 움직이는 쪽입니다. 후자,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느리게 움직이는 쪽입니다.
전자는 빨리 그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그렇고, 후자는 그냥 그 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럴 것입니다.
물론 물리학적으로 엄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사람마다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물리학의 그 발견과 어딘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연 Fine 가사는 멈춰 선 시계의 노래입니다
태연의 ‘Fine’은 정확히 그 시간의 어긋남을 다룬 곡입니다.
이 곡은 2017년 2월 28일 발매된 태연의 첫 정규 앨범 《My Voice》의 타이틀곡입니다. 감성적이면서도 폭발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얼터너티브 팝 곡으로, 이별 후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가사가 특징입니다.
이 곡에서 시간은 두 갈래로 흐릅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쯤 되면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그쯤이면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곧바로 답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남들의 시계와 나의 시계
저는 이 대비가 이 곡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세상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합니다.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단위를 제시하면서 그때쯤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화자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달력의 날짜도 똑같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화자의 체감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의 시간처럼 말입니다.

아직은 아니라는 말
이 곡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말은 ‘아직은 아니야’입니다.
화자는 그 말을 바보처럼 되뇐다고 스스로 표현합니다.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다고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화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미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감정은 시간표를 따르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그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있는 마음에 대해서는, 이전에 넬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루며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괜히 움직이곤 하는 사람
2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본다고 합니다. 가끔 감당할 수 없는 기분에,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괜히 움직이곤 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곡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멈춘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바쁘게 움직입니다. 방을 치우고, 새로운 취미를 찾고, 계획을 세웁니다. 시간을 억지로라도 흐르게 만들어 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에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괜히’라는 부사가 붙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무딘 척하는 일
브릿지에서 이 곡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사람들 틈에 있으면 자신이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무딘 척 웃음을 지어 보이며 ‘너’라는 그늘을 애써 외면해 본다고 말이죠.
이것이 바로 ‘Fine’이라는 제목의 정체입니다.
우리는 안부를 물으면 대부분 괜찮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직도 힘들다고 말하면 미련해 보일까 봐 걱정하게 됩니다.
이 곡은 그 가면을 벗깁니다. 후렴에서 반복되는 말은 결국 하나입니다. 괜찮지 않다고.
가면을 쓴 얼굴과 진짜 얼굴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다룬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던 이별
마지막 벌스에서 화자는 그 순간을 떠올립니다.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였던 담담한 이별. 이 짧은 묘사가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
담담했다는 건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는 뜻입니다. 싸움도, 눈물도, 극적인 장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미 잘 정리된 관계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담담하게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남습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다는 후렴이 여기서 다시 이해됩니다.
폭발하지 않고 눌러 담는 소리
이 곡의 사운드도 그 상태를 그대로 옮깁니다.
얼터너티브 팝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 곡은 감성적이면서도 폭발적인 멜로디를 오갑니다. 태연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그 두 결을 모두 소화합니다.
특히 후렴의 처리가 인상적입니다.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에서 이 곡은 완결된 문장을 부르지 않습니다. 대신 짧은 감탄사만 길게 늘어놓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그냥 소리로 새어 나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입가에 맴돌지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 말의 상태가 소리로 구현된 셈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앨범은 팝 발라드와 팝 R&B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열세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곡이 타이틀로 선택된 이유가, 목소리 하나로 감정의 진폭을 가장 넓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태연 Fine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도 내일은 옵니다. 시간은 우리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다음 계절에 도착해 있는데, 누군가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게으르거나 미련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의 시계가 아직 그만큼밖에 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아직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세어 주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일 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아야 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니까요.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일에 대해서는 이하이 ‘한숨’을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곡이 끝까지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가끔은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시계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까요.
전곡은 벅스 태연 Fine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속도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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