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Next Level 가사 해석, 손자병법이 말한 5가지 중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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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 싱글 《Next Level》 앨범 커버. 붉고 노란 화염빛이 소용돌이치는 초현실적 공간을 배경으로, 네 명의 멤버가 나란히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뒤편에는 유기적으로 휘어진 검은 구조물과 커다란 원형 게이트가 자리하고 각기 다른 질감의 의상이 대비를 이룬다. 상단의 'NEXT LEVEL' 로고와 원 안의 'aespa' 서명이 배치되어, 광야로 떠나는 여정이라는 세계관을 시각화한다. 에스파 Next Level
에스파 《Next Level》 (2021) 앨범 커버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 Next Level 가사를 읽기 전에, 저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먼저 꺼내고 싶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한 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오사와 칠계, 그중 첫 번째 항목
  2. 이 구절을 개인에게 대입해 본다면
  3. 에스파가 말하는 SYNK
  4. 에스파 Next Level 가사는 끊어진 연결을 되찾으러 갑니다
  5. 손을 놓지 말라는 말의 무게
  6. 리메이크가 만들어낸 소리
  7. 에스파 Next Level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어두운 돌판 위에 펼쳐진 고대 죽간 두루마리. 한쪽은 노끈으로 감겨 말려 있고, 다른 한쪽은 펼쳐져 세로로 쓰인 한자가 드러나 있다. 옆에는 짐승 형상이 새겨진 청동 인장과 낮게 타오르는 기름 등잔이 놓여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나무의 결과 낡은 끈의 질감이 선명하게 살아 있어, 오래된 병법서가 놓인 서재의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사와 칠계, 그중 첫 번째 항목

손무의 『손자병법』에는 오사(五事)와 칠계(七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사는 전쟁의 기본 요소이고, 칠계는 승패를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그중 오사의 첫 번째 항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도(道), 백성과 지도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는가’라는 구절입니다.

병법서의 첫머리에 무기도, 지형도, 병력의 수도 아닌 ‘마음이 하나인가’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저는 늘 인상 깊었습니다.

왕과 백성이 서로 다른 곳을 볼 때

모든 고대 국가에는 왕이 있고 백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국가는 왕만 잘나서, 혹은 백성만 잘나서 부강해지고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아무리 어질더라도 여러 지역의 백성이 그를 따르지 않고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나라를 바로잡으려 왕에게 호소해도, 왕이 매일을 술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친다면 그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예시로 미루어 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왕과 백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지 않으면, 국가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집니다.

이 구절을 개인에게 대입해 본다면

그렇다면 이 구절을 지금 우리의 상황, 특히 개인의 삶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요.

백성을 우리의 신체로, 지도자인 왕을 우리의 정신이라고 놓아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곧 우리가 신체와 정신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머리로는 일어나야 한다고 아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아침. 몸은 이미 한계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정신이 계속 밀어붙이는 밤. 왕과 백성이 어긋난 나라처럼, 그런 날의 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것

그렇다면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것이 ‘나’를 알게 되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몸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짜고 단백질을 챙깁니다. 또한 정신을 키우기 위해 사유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명상합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아우르는 말이 바로 ‘자기 개발’ 혹은 ‘자기 관리’일 것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나’를 발견합니다. 몰랐던 나, 이미 알았지만 확실해진 나, 애매했지만 이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된 나. 그렇게 발견이 쌓일수록 우리는 저 구절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지평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르고 갈라진 흰 대지 위, 보랏빛으로 어두워진 하늘 아래 한가운데에 문 하나가 홀로 서 있다. 문 안쪽에서는 청록빛이 강하게 새어 나와 갈라진 땅 위로 길게 뻗은 빛의 자국을 남기고, 문 주변으로는 미세한 입자들이 흩날린다. 아무 표식도 경계도 없는 공간에 놓인 이 문이 여정의 시작점처럼 보인다.

에스파가 말하는 SYNK

흥미롭게도, 이 ‘하나 됨’을 세계관의 중심에 놓은 그룹이 있습니다. 에스파(aespa)입니다.

에스파의 세계관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멤버들과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æ’가 SYNK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이야기입니다. æ는 인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로,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앞서 말씀드린 정신과 몸의 관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은 또 하나의 ‘나’. 그것과 어떻게 연결을 유지하느냐가 이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을 끊는 존재가 있습니다. 블랙맘바입니다. 이 검은 뱀은 현실과 광야 사이의 신호를 차단해 멤버들을 SYNK OUT 상태에 빠뜨리는데, 인간의 욕망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연결을 끊는 것은 바깥의 적이 아니라 내 안의 욕망인 셈입니다.

에스파 Next Level 가사는 끊어진 연결을 되찾으러 갑니다

2021년 5월 17일 발매된 이 곡은, 그 끊어진 SYNK를 되찾기 위해 광야(KWANGYA)로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곳입니다. 무규칙, 무정형, 무경계가 그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설정이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사람의 내면과 겹친다고 느꼈습니다. 정해진 답도, 지도도 없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자기 관리라는 것도 결국 그런 미지의 영역을 스스로 걸어보는 일이 아닐까요.

그 길에는 안내자가 있습니다. 나이비스(nævis)는 에스파와 가상 세계 속 아바타를 서포트해 주는 조력자이자 안내자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곡에서 화자가 그를 향해 네가 이끌면 우리가 따르겠다고 말하는 대목은, 혼자서는 자기 자신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고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손을 놓지 말라는 말의 무게

이 곡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이미지는 ‘맞잡은 손’입니다.

화자는 내 손을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결속이 곧 나의 무기라고 선언합니다. 유혹이 깊고 진해 결국 맞잡은 손을 놓치는 순간이 오지만,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더 아픈 시련이 와도 잡은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반복이 곧 ‘도(道)’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왕과 백성이 손을 놓지 않는 것. 정신과 몸이 서로를 놓아버리지 않는 것.

블랙맘바가 만들어낸 환각 속에서 화자는 중심을 잃고, 목소리를 잃고, 사람들과 멀어지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것은 판타지 설정이지만, 동시에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겪는 상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우리도 딱 그렇게 됩니다. 중심이 흔들리고, 내 말에 확신이 없어지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집니다.

이렇게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공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소재로 쓴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리메이크가 만들어낸 소리

이 곡의 출발점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Next Level’은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OST를 에스파만의 색깔로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그루비한 랩과 에너지 넘치는 베이스 리프가 돋보이는 힙합 댄스곡으로 재탄생했고, 멤버들의 파워풀한 보이스와 버라이어티한 곡 진행이 그 위에 얹힙니다.

특히 곡 중반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여러 곡을 섞은 듯한 편곡과 고음 분출 구간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트랙 안에서 여러 개의 장면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 구조가 SYNK가 끊겼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소리로 옮긴 것이라고 읽었습니다.

원곡이 있는 곡을 가져와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점도 이 곡의 주제와 맞닿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재료로 새로운 자아를 빚어내는 일. æ가 인간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라는 설정과 정확히 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감각에 대해서는 전소미 ‘BIRTHDAY’를 다룬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에스파 Next Level 가사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곡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이제 더 강해졌다고, 자유로워졌다고 말합니다. 광야에 있던 내가 아니라고, 야수 같은 나를 느껴 보라고 합니다.

끊어졌던 연결을 회복한 사람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선언이 자기 관리를 오래 이어온 사람의 얼굴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움직이고, 책을 읽고, 스스로를 관찰하며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하나입니다. 나의 왕과 나의 백성이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드는 것. 손자가 전쟁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던 그 ‘도’를, 우리는 매일 자기 안에서 다시 세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오늘 몸과 마음이 자꾸 어긋난다면,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SYNK가 잠시 흐트러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손을 놓지 않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곡은 벅스 Next Level 페이지 에스파 Next Leve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파 Next Level 가사를 손자병법의 도(道)라는 화두로 읽습니다. 정신과 몸의 합일, 그리고 광야로 떠나 끊어진 연결을 되찾는 여정의 의미까지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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